장애인식 개선
사회복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의 기억이다. 한 기업에서 30여 명이 자원봉사를 온 날이었다. 당시 프로그램은 장애인식 개선교육을 한 후에 봉사활동을 하는 것으로 계획되었다. 나는 보조로 프로그램을 도왔다. 장애인식개선교육 중에 눈에 띄는 활동이 있었는데 바로 발달장애를 체험해 보는 활동이었다. 이름하여 장애 체험이었는데 작은 탁상용 거울과 미로가 그려진 그림을 나눠주고는 거울에 비친 그림을 보고 미로찾기를 하는 활동이었다. 반대로 비치는 미로를 따라 삐뚤빼뚤 선을 그려가며 출구를 찾아가는 참가자들에게서는 당황하며 내뱉는 한숨 소리와 실수에 터진 웃음소리가 곳곳에서 흘렀다. 그땐 이런 프로그램도 있구나 싶어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몇 년이 흘렀을까, 그 당시 기발해서 놀랐던 발달장애 체험이었던 그 프로그램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형편없는 활동이었는지 알게 됐다. 장애인식 개선 사업은 장애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고 편견과 차별을 해소하여 모든 사람이 동등한 조건에서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사업이다. 거리 캠페인, 문화행사, 교육 등 여러 사업이 있으며 그 중 장애 체험은 가장 많이 활용되는 사업이다. 주로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으로 휠체어 타기, 목발로 이동하기, 안대 착용하여 걷기, 점자 읽기 등 장애의 불편함을 직접 체험해 보는 프로그램이다. 활동 중에 넘어지거나 부딪히는 등 참여자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활기찬 분위기에서 진행되며 참여도도 높은 프로그램이다. 또 체험을 통해 장애인의 불편함을 직접 느낄 수 있어 교육의 효과도 높으니 이만한 프로그램도 없다. 괜히 인기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발달장애는 지체 장애나 시각, 청각장애와는 다르게 체험을 통해 장애의 불편함을 체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발달장애는 신체 및 정신이 해당하는 나이에 맞게 발달하지 않은 상태를 가리키는 장애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지적 기능이 낮고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으며 사회활동도 쉽지 않은 장애다. 그러니 어떻게 갑자기 알던 걸 모를 수가 있고, 할 수 있는 표현을 못하게 되며, 의사소통의 불편함을 느낄 수 있을까?
또 발달장애는 개인별 차이가 심한 장애다. 엘리베이터와 경사로, 점자 블록을 설치하면 대부분의 지체, 시각장애인은 이동에 도움이 되지만 발달장애인은 편의시설을 조성해도 각자 이해하고 인지하는 정도가 달라 전혀 편리함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개인차로 발달장애인을 위한 표준화 된 환경을 만들기가 어렵다. 그러니 어떻게 발달장애인은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라며 일관된 불편함을 체험할 수 있냐는 말이다. 거울에 비친 미로를 따라 그리는 활동으로 발달장애인의 불안함과 불편함을 알 수 있을까.
발달장애는 체험을 통한 이해보다는 인식을 통한 공감으로 알아가는 장애라고 생각한다. 내가 발달장애인이라는 일인칭 시점보다는 부모가, 자녀가, 친구가, 가게의 손님이 발달장애인이라면 이라는 삼인칭 시점으로 생각해야 다가갈 수 있는 장애다. 그래야 진짜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고, 한 사람, 한사람에게 맞춰진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다. 더 이상 발달장애를 체험하려 하지 말자. 알려고 애쓰자. 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각각의 방식에 공감하자. 눈높이를 맞추려 노력하자. 이것이 진짜 장애인식 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