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지현 Apr 14. 2022

일을 하면서 들었던 생각들

직장 혹은 육아 일기

 벌써 월급을 세 번 받았다. 일을 하니 시간이 빨리 간다. ‘워킹맘’이라는 단어는 사람을 부지런하고 바쁘게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나는 ‘워킹맘’이라는 단어를 의식적으로 피한다. 그냥 평범하고 서투른 초보 직장인일 뿐. 나는 '전업 주부'일 때도 아이들을 챙기는데 공들여 시간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일을 하니 오히려 ‘엄마의 공백’에 마음이 쓰이고 아이들이 짠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직장에 적응하는 것도 큰일이었지만 혹시라도 아이들이 나의 빈자리에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했다. 아마 나는 ‘엄마 노릇’을 잘 하지 못했지만, 항상 아이 곁에 있어준다는 것만으로 ‘엄마 노릇’의 부채감을 덜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부채감의 정체는 수 세기를 걸쳐 내려온 모성신화에서 비롯 된 것일테지.

 요즘들어 시어머니는 나에게 아이들에게 사랑을 많이 주라고 하시는데, ‘일하는 엄마’가 키우는 아이는 사랑이 부족 할 지도 모른다는 옛날 엄마들의 걱정이 한 목 하는듯하다. 시어머니도 평생 ‘워킹맘’이셨는데, 늘 아들들을 제대로 못살펴줬다는 죄책감을 아직도 나에게 얘기하신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아침밥을 챙겨줘야 한다는 의욕(혹은 압박)이 불끈 솟아 올랐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는 오전간식이 나와서 아침을 거르거나 대충 챙겨줘도 괜찮았는데... 학교에 입학하니 손이 더 많이 가게 되었다. 심지어 코로나로 학교에서 우유급식이 중단되고 돌봄교실에서 제공되는 과일간식도 중지중이다. 그러니 어찌 아이가 아침을 거르게 둘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나의 비장함과는 달리 첫째는 입이 짧고 식욕이 없는편이다. 어른인 나도 마찬가지지만 눈뜨자마자 입안에 무언가를 넣는 것 자체가 힘겨운 일이지 않은가. 

 어쨌든 아침을 잘 먹이기 위해 여러 유튜브를 찾아보며 아침메뉴를 준비했다. 처음 며칠은 식판식으로 준비했다. 국과 반찬 3가지. 결과는,,, 어린이집에서 푸짐하게 오전간식을 먹는 5살 둘째가 더 잘 챙겨먹게 되었다. 그래서 토스트를 여러 버전으로 준비했지만.. 역시나 잘 먹어주지 않았다. 결국 그냥 뭐라도 먹으면 된다는식의 예전과 비슷한 아침식단으로 돌아가버렸다. (잘 안먹는것을 핑계삼아 나의 게으름을 합리화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침을 거르면 오후 늦게까지 점심 급식만으로 버텨야하는 아이를 생각하면 일에 집중하기 까지 시간이 더 걸리곤 했다. 문득 숟가락들고 문앞까지 쫓아와 밥먹어라고 하던 어린시절 나의 엄마 마음이 이제야 이해가 되기도한다.     


  나는 아침에 아이들을 등원,등교 시킬 때 깔끔하게 씻기고 옷을 입혀 보낸적이 별로 없다. 둘째는 내복차림 그대로 보낸 날이 더 많았으니까.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사진을 봤을 때 ‘엄마는 왜 우리 패션에 신경 안쎴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확실히 적응이 빠른것같다. ‘엄마’의 공백이 내 우려처럼 크지 않았고, 아이들은 엄마도 회사에 가는 사람이라고 금방 인지하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 애들은 나보다 남편을 더 편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친정엄마는 가끔 농담으로 ‘너같은 성격이 면 애 셋넷 키워도 편하겠다’라며 우려(?)를 숨긴 농담을 던지곤 했다.


친정이나 시가에 가면 까치집이 되어있는 아들들의 머리를 어머니들이 꼬리빗에 물을 묻혀 곱게 빗어주곤 하셨다. 엄마들의 생각은 이렇다. 아이가 깔끔하게 관리받은 모습이어야지 남들이 아이한테 함부로 안한다고. 어째 그말도 일리가 있는 것처럼 들렸다. 그렇지만 내몸 씻는것도 귀찮아하는 나는 여전히 아이를 깔끔하게 케어하지 못하고 있다. 첫째는 7살이 되면서는 스스로 아침에 세수도 하고 양치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열심히 가르쳐 주지 않았고 모범을 보이지도 않았지만 아이들도 스스로 깨쳐 나간다. 눈뜨자마자 인터넷으로 보게되는 세상은 흉악하기 그지없어서 세상을 낙관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세상에는 그래도 좋은 어른들이 많다고, 우리아이가 만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안전한 어른들이리라 생각한다. 

 극악무도한 세상이 엄마 혹은 부모의 역할에 점점 커다란 부담감을 가지게 만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아이를 키우기 힘든 세상이라고 모두들 입을 모아 말한다. 부모를 아이 옆에 딱 달라붙게 만드는 세상의 말들에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


 어느 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어푸어푸 고양이 세수를 하고나온 첫째 아들이 말했다. ‘엄마, 나 머리좀 다정하게 빗어줘’ 나는 가뜩이나 분주한 아침에 잘못들었나 싶어서 다시 물었다. ‘뭐라고?’ 아들은 또박또박 말했다.

 ‘다정하게 해줘’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들이 새로운 친구와 선생님을 만난다. 누군가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싶은 마음은 아이나 어른이나 비슷한가보다.  아이에게 호감이란  '나의 매력'이 아니라 '나를 나눔'에 있었을 것이다. 아이가 착각한 단어에서 아이의 진심을 만나게 될 때 뭉클해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