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같은반 친구 엄마가 아이의 외모에 대해 걱정하는 이야기를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친구의 엄마는 딸아이의 얼굴에 있는 점이 신경 쓰인다며 이곳저곳 피부과를 다녔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큰 점은 아니었지만 딸의 외모를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에는 충분히 공감했다. 그 엄마는 아이 얼굴의 점을 지적하는 일가 친척들, 걱정을 가장하며 평가하려 드는 무례한 이웃들을 자주 만났을 것이다.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유치원 최고 인기 만화는 시크릿 쥬쥬이고 케이팝 아이돌 외모 품평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가벼운 놀이문화나 스몰토크처럼 여겨진다. 그러니 어느 부모가 자식의 외모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 역시도 잘 안 먹는 아들을 보며 "안 먹으면 키 안 큰다"라는 실언을 수시로 하게 되니 말이다.
아들이 점점 크게 되면서 성교육에 대한 고민거리가 늘었다. 나는 부모님은 물론 학교에서조차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은 기억이 없다. 성에 대한 지식은 친구들이랑 '진실 게임'같은 놀이를 하면서, 혹은 음지에서 보게 된 야한 동영상으로 왜곡하여접한 것이 전부다. 그러다 보니 성인이 되어서도 남자 친구들과의 관계를 제대로 이어나가는 것이 힘들었다. 심지어 월경에 대한 지식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결혼 할 나이가 되어서야 남성의 발기가 성적 자극에 의해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아들 둘을 키우면서 '발기'는 유아기 때부터 일어난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이렇게 무지했을까. 어릴 때부터 '월경'이나 '섹스' , '남성의 발기'', '피임' 같은 것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더라면 내 삶은 많은 부분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포괄적 성교육>이라는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어떤 종류의 성교육을 원하는지 제대로 명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좋았다. 나는 양육자이고 다른 엄마들과 자주 만나게 된다. 여성기를 '소중이'라고 말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듣고 '생리'에 대처하는 방법이 아직도 보수적인 부모들이 많다. 생리 컵을 자녀에게 권유하기 꺼려진다거나, 생리혈 실수는 과하다 할 정도로 조심을 시키는 등 아직 답답하게 느껴지는 때가 종종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성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곳', '중요한 곳', '소중한 곳'이라는 표현을 쓴다. -중략- 그러나 몸 교육의 관점에서 '성기도 그냥 내 몸의 일부이다'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편하다 " <포괄 적성교육> p.31
성기도 몸의 일부라는 인식의 개선은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기에 대한 단어는 아직 입에 올리기가 불편하다. 심지어 월경을 아직도 '매직'이나 '그날'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남성기는 조금 더 자연스럽게 쓰는 것 같다. '고추'라는 표현은 아이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쓰고 심지어 상고머리를 '귀두컷'이라고 말하기도 하니까. 그러니 최근에야 '클리토리스'가 성교육 책, 과학책에 등장했다는 사실이 화가나지만 놀랍지는 않았다. 이제라도 다루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음핵을 설명하지 않으면 발기는 오로지 남성만 경험하는 현상이 된다" <포괄적성교육>p.36
여성의 섹슈얼리티, 성적욕구가 그동안 얼마나 터부시 되어왔는가, 나만해도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음핵에 대해 알게되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자위는 남자들이 주로 하는것으로 알았고 여성 청소년의 자위는 성교육에서 아예 지워져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사춘기무렵 자연스럽게 내몸을 탐구하고 섹슈얼리티를 느낄 때 '나는 이상한가? 나는 비정상인가?'라는 의구심과 죄책감으로 힘들었다. 임신, 출산 위주의 성교육때문에 지워져있던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드러내는것도 포괄적 성교육이다.
그리고 '포괄적 성교육'은 섹스, 임신, 출산 등의 교육이 뿐만 아니라 사람들사이의 '관계' 교육까지 확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공교육에서 행하고 있는 성교육으로는 어림도 없다. 우리는 모두 안전하고 행복한 관계맺기를 원한다. 금방 문제해결이 될 것 같은 제목의 `폭력 예방 교육' 한시간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지워지거나 숨겨진것 없는 제대로된 성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