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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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페미니즘을 접한 것이 대학교 때인지, 고등학교 때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그때만 해도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뭔가 몰래 검색해야만 하는 단어 같았고,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은 연애와 결혼을 거부하거나 심지어는 레즈비언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귀여니' 소설 같은 인터넷 소설에 한창 빠져 있을 때라, 페미니즘과 가까워지면 나중에 남자 친구를 못 사귀면 어쩌지?라는 생각도 했었다. 뭐 어릴 때니까.
그 후 몇 년이 지나고 대학교 3학년 때 전공 수업을 들었다. 그 수업은 교수님이 추천해준 책을 골라서 읽고 '독서인증'을 하면 포인트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때 그 교수님은 '페미니즘'을 많이 연구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셨다. 나는 나이 지긋한 남자 교수님 입에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이 신기했다. 교수님이 추천하신 책 중에 여성작가의 작품만 모아놓은 소설 집이 있었다. 나는 교수님에게 왜 '중국 현대 여성작가 작품선'이라는 책이 존재하냐고 물었다. 그리고 "여성작가의 소설을 따로 분류하는 것이 여성작가는 비주류기 때문인가요?"라고 덧붙였다. 교수님은 내 질문이(그 당시에) 좋은 질문이라고는 하셨다. 지금은 '여류작가'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지만, 10년 전만 해도 '여류작가', '여류 소설'이라는 말을 흔하게 쓰고 있었다. 그러니 대부분은 '여성작가 작품선'이라는 책 제목에서 성차별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 질문에 대한 교수님의 답변은 기억나질 않는다. 어쨌든, 이 기억이 내가 처음 페미니즘 적인 질문을 입 밖으로 꺼낸 기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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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미투 운동을 보면서, 나 역시 나의 과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부지불식간에 내가 미투의 피해자였던 적도 있었을 테고 관망자 혹은 가해자였을 수도 있었다.
이십 대 초중반 때, 나는 남사친들에게 연애상담을 자주 했었다. 그중 진지한 대화 상대도 있었고, '남자들의 세계'에 대해 겁(?)을 주며 충고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물론 나 역시 '여자들의 세계'에 대해 젠체하며 설교를 늘어놓기도 했지.
지금 생각해보면 제일 어이없는 '충고'가 하나 있다. '남자들의 바람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친구가 말했다.
"남자들은 부인이 임신하면 제일 바람 많이 핀대" "섹스를 못하면 밖에서 푼다"
남자를 '성적 본능'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존재로 전제하지 않는 이상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때 '어머 미쳤어 미쳤어 자위하면 되지'라며 본질 파악을 못하는 어벙한 대답을 했었다.
이십 대 초중반이면, 절대로 어린 나이가 아니다. 나는 '페미니즘'을 인식하는 여성이라 자부하고 있었으면서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말도 안 되는 리액션을 했던 것이다.
저런 '성적 충동 제어 불가능'에 대한 남자들의 이야기는 참 많았다. 내 친구는 여자 친구가 있는데 성매매를 즐긴다거나, 총각딱지는 군대에서 뗀다는 둥... 정말로 '카더라'인지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대부분 '카더라' 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남성들을 욕하기 위한 말들이지만, 실제로는 저런 이야기들이 실제라고 생각하고 남성을 이해하려 한 부분도 있다.
남성들도 '남자는 성적 본능을 참지 못한다'는 전제에 상당 부분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여성들은 그런 전제를 받아들여 '내 남자 친구 혹은 남편'의 외도나 데이트 강간, 혹은 성매매까지도 참고 넘어가야 할 문제로 생각했을 것이다. 현재까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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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시사인 잡지를 보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97년 19살 여고생이 택시기사에게 성폭행당한 후 자살한 비극적 사건이 있었다. 그 뉴스에 대한 MBC의 앵커의 마무리 멘트는 "수치스러운 삶 대신 죽음을 택한 이양의 선택은 정조 관념이 희박해진 요즘 세태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불과 20년 전이다. 20년 전에 뉴스 마무리 멘트가 저따위인데, 기득권 남성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미투 운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미투의 여론이 어떻든 간에, 부정적 영향이 어떻고 역차별이 어떻든, 그동안 여성들이 겪은 수많은 차별과 폭력을 없던 역사인양 못 본 척할 수는 없을 것이다.
파도에 밀려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인간이고 역사라면, 분명 미투 역시 계속되리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미 옳은 방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