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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흰 Jul 02. 2021

011 9급 공무원에 잘 맞는 사람

100일 글쓰기

영화제가 끝난 지 이틀째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시 브런치를 꺼내 글을 쓰게 되었다. 영화제 사람들을 만나면서 새롭게 생각하게 된 소재도 있고, 한 친구가 나의 글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제에 대한 나의 소감은 생각해 둔 소재가 끝나면 그때 써 볼 생각이다.


영화제를 하면 다시 영화에 대한 사람이 생겨 당연히 사직할 줄 알았다. 실제로도 영화제가 끝나고 다음날인 어제 내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사직할 것이다'라고 선언했고 어젯밤 다시 깊게 생각하면서 엎었기 때문이다. 영화와 영화제에 대한 사랑이 다시금 떠오른 것은 맞으나,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을 쉽게 버릴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물론 남들처럼 간절하게 임용고시를 준비하지도 않았고,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선망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내 직업에 대체로 만족하면서 지난 2년을 보냈기 때문이다.


아까 카카오톡 채널에서 흥미로운 게시물을 보았다. 제목은 '9급 공무원에 잘 맞는 사람'인데, 한 공무원이 작성한 공무원 하면 딱 맞는 유형을 정리한 글이다. 비록 난 9급 공무원은 아니지만, 비슷한 직종에서 일하고 있기에 체크해보았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욕심이 없는 유형 (돈, 진급, 명예 등)

2. 자기 발전 자기 계발 귀찮은 사람

3. 직장 내 대인관계를 얕게 하고 싶은 사람

4. 노후 재테크 별생각 없는 사람

5. (핵심) 팀원과의 협력 협동 이런 거 싫어하고 개인플레이 좋아하는 사람

6. 일에서 즐거움이나 보람을 찾지 않는다

7. 중간에 긴 휴직을 하고 싶다


총 7가지 항목인데, 이 중 4, 5, 7번은 나와 맞다. 4번의 경우 재테크, 주식 같은 거 잘 모르는 나에게 공무원 연금과 교직원공제회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대의 투자이다.


5번은 고등학교, 대학교 다닐 때 팀플에 지쳐서 그런지 개인플레이를 지향하고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항상 리더 역할을 맡았는데, 그럴 때마다 팀원들이 내가 원하는 만큼의 역량을 보여주지 않아 답답했기 때문이다. 특히 고등학교 1학년 때 했던 팀플은 친구들과 크게 싸워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도 연락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교사라는 직업도 개인플레이가 많은데, 특히 나는 '중국어'라는 교과 덕분에 더더욱 그러하다. 한 학교에 중국어 선생님이 한 명 밖에 없기 때문에, 교과 회의 시간이 있으면 나 혼자 회의하고 결론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편하다. 또 한 편으론 단점도 있는데, 모든 것을 나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 혼자 낸 시험 문제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내가 홀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마지막 7번은 병휴직,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무원의 혜택은 크다고 할 수 있다. 나는 현재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병휴직 중이고, 추후에 아이를 가질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육아휴직 또한 사용할 생각이다. 아마 이 3가지 때문에 나는 여전히 사직을 하지 못하고 공무원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오늘 나에게 해당되지 않는 4개 항목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1. 욕심이 없는 유형 (돈, 진급, 명예 등)

원래 오늘 쓸 글의 제목은 '안주하는 법을 몰라서'였다. 나는 욕심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돈에 대한 욕심도 많고, 진급에 대한 욕심도 많고, 명예에 대한 욕심도 많다. 정말 말 그대로 욕심쟁이다. 우선 돈은 많이 벌고 싶다. 돈을 많이 벌어서 내가 사고 싶은 것들을 모두 살 수 있었으면 좋겠고, 친구들에게 돈이 필요할 때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며 턱 턱 빌려주고 싶고, 도움이 필요한 분야에 언제든지 도움을 주고 싶다. 하지만 교사가 되면서 이런 나의 욕심은 모두 눌러야 했다. 200만 원 초반이라는 작고 소중한 나의 월급은, 내가 돈을 아끼게 만들었고 내가 도움을 주고 싶은 곳에 선택적으로 도움을 줄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진급에 대한 욕심도 많다. 만약 내가 교사라는 직업을 계속하게 된다면, 언젠가는 교감, 교장까지 되고 싶다. 좋은 교육자가 되어 좋은 학교를 만들고 싶다. 명예에 대한 욕심도 많다. '내가 속한 곳이 곧 나를 증명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공무원 세계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교사라는 직책에서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이런 나는 결국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했고 계속 남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대학원으로 나의 욕심을 해소하려고 한다. 내년에 대학원에 입학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인데, 처음엔 교육에 대한 깊은 공부를 하고 싶어 교육대학원을 가려고 했다가 미디어를 계속 공부하고 싶어 언론대학원에 가려고 했다가 교육법을 공부할까 해서 로스쿨까지, 욕심쟁이인 나는 이런저런 길을 알아보고 있다. 이런 내가 교사라는 직업에 남기로 선택한 이상, 공무원이라는 욕심이 없는 자가 선택할 이 직업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내 직장 외에 다른 곳에서 나의 욕심을 펼치는 것이다.


2. 자기 발전 자기 계발 귀찮은 사람

위의 1번 항목과 비슷하다. 나는 정말 끊임없이 자기 발전을 하려고 하는데, 오히려 이것이 나에게 독이 되기도 한다. '사람은 이래야 한다, '계획을 세운 뒤에 움직여야 한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나는 강박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전진한다. 나라는 사람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등산할 때 주변 숲은 안 보고 오로지 정상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나의 경향이 강박증이 되어 나를 괴롭게 만들었고 결국 나쁜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이런 나를 보고 자살예방센터의 상담사님께서는 계획을 미루는 법을 연습하라고까지 하셨다.


3. 직장  대인관계를 얕게 하고 싶은 사람

사실 이건 공무원 사회에는 해당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교직 사회에서는 대체로 교사들 중에서 괜찮은 인성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다. 다수의 학생들의 성장을 돕는 교육자라 그런지 교사를 하는 분들 중에서 정말 인성이 그르친 사람은 아직까지 몇 명 보지 못했다. 아예 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우리 학교만 해도 학생들에게 화가 난다고 유리창을 깨는 선생님이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학교에서 인생 선배, 인생 친구를 만나는 것은 쉽다. 나만해도 첫 해에 인생 선배로 삼을 선배 교사를 만났고, 휴직 중인 지금도 여전히 연락하고 만나는 동료 교사가 있다. 때론 5년이 지나면 학교를 옮겨야 한다는 사실이 좋은 분들을 만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더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3번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


6. 일에서 즐거움이나 보람을 찾지 않는다

이 항목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항목이다. 하루의 3분의 1 이상을 보내는 직장에서 즐거움이나 보람을 찾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삶은 어떤 삶일까? 내가 괴로웠던 이유는 학교에서 보람을 느끼지만 즐거움은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사라는 직업은 분명 보람이 있는 직업이다. 나를 좋아하고, 나의 과목을 좋아하는 학생들을 보면 그것만큼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은 없다. 특히나 문제행동을 보이던 학생이 나로 인해 조금씩 변화를 일으킨다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나는 즐거움은 찾지 못했다. 내가 싫어하는 중국어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내가 나도 돌보지 못하는데 남을 돌봐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내가 선택한 직업에서 보람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학교에 출근하는 순간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일을 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같았다. 이것이 내가 사직을 고민했던 이유다.


이 글은 참 재밌는 글인 것이, 공무원이 나에게 얼마나 맞지 않는지 설명하면서 동시에 내가 결국 교직사회에 남기로 한 이유를 해명하는 글이다. 결국 내가 택한 길은 교사라는 직업을 유지하되, 그 밖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에게 맞지 않는 4개의 항목보다 맞는 3개의 항목이 훨씬 더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혼자였다면 사직하는 길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겐 결혼을 하면서 일종의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생겼고 그중에는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경제력 역시 존재한다. 비록 나는 돌고 돌아도 나의 운명이었던 영화를 택하진 않았지만, 나의 교사로서의 삶을 최대한 활용해서 영화를 사랑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영화를 꿈꾸는 이들에게,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다. 나처럼 되지 않기를, 나처럼 현실적인 공무원의 삶을 택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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