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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 Dec 04. 2020

엄마의 가발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수술 전 항암 치료를 먼저 하게 되면서 체중 감소, 통증, 구역질 등 신체적으로 여러 문제들이 나타났다. 그중에 머리카락이 빠지는 증상도 있었는데 이는 성별에 상관없이 정신적으로 힘든 증상인 것 같다.


살이 빠지고 통증을 느끼는 것만으로는 내 입으로 암환자라고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겉으로 잘 티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다 빠져서 두건 같은 모자를 쓰기 시작하면 누가 보더라도 암이나 백혈병 등 큰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게 된다.

엄마가 처음 진단을 받고 울면서 "머리카락이 다 빠져서 어떻게 다니니" 하고 했던 말에는 정말 뭐라고 위로해주어야 할지 몰랐다.



가발을 사야 할 것 같아



어느 날 엄마가 내게 말했다. 머리카락이 이제는 너무 많이 빠져서 가발을 사야 할 것 같다고. 그래서 우리는 가발 파는 곳이 모여있는 지하상가로 향했다.


쭈뼛거리며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으니 사장님이 나오셨다. 여기 와서 가발 사는 사람 많으니 창피할 것 없다며 적극적으로 들어오라고 하셨다. 가발을 사면 머리카락도 같이 밀어준다고 했다.


늘 볼륨 매직한 커트머리를 유지해왔던 엄마는 긴 머리, 단발머리 가발들을 보니 이참에 색다른 헤어스타일에 도전해 보고 싶은지 저건 어떨까? 넌지시 내게 물어보았다.


나는 점원에게 엄마가 궁금해하는 가발을 요청해 옆에서 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떤 것은 너무 안 어울려서 둘이서 배를 잡고 웃기도 하고 어떤 것은 색다른 스타일이지만 꽤 잘 어울려 같이 고민하기도 했다. 사징님은 평소 하던 헤어스타일의 가발을 선택하는 게 제일 무난하다고 했다.


엄마는 결국 사장님의 말에 따라 늘 하던 머리와 비슷한 가발을 선택했다.


머리카락도 바로 밀어버리자는 사장님 말에 나는 순간 '이렇게 갑자기?'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엄마는 아예 작정하고 왔는지 조금 생각하다가 밀어달라고 요청했다.


거울 앞에서 조금 긴장한 표정을 한 엄마 뒤로 점원이 이발기(일명 바리깡)를 들고 섰다. 잉~잉~ 소리에 천천히 바닥으로 엄마의 머리카락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감고 있는 엄마를 쳐다보며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왔다.


슬펐다.


엄마의 감은 눈 밑으로 눈물이 흐르는 게 보였다.


서러웠다.


우리는 왜 이런 기막힌 일을 겪어야 하는 걸까. 나보다 여성스럽고 꾸미기 좋아하는 엄마가 민머리가 되어 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도 같이 밀어버릴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도 들었다.


 머리를 밀고 보니 우리 엄마 두상이 참 예뻤다. 사장님도 그렇게 말하자 새로 산 가발을 쓰고 나오며 "꼭 안 보이는 부분만 이쁘네~" 하며 배시시 웃는다. 어색하게 괜찮냐고 물어보는 엄마를 보며 생각보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놀랐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딸! 이거 봐!



집에 가만히 있기 싫어하는 엄마는 컨디션이 조금 좋아지자 바람 쐬러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내 방에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엄마가 갑자기 불렀다.


"왜?" 하며 안방으로 갔는데 처음 가발을 쓰다 보니 제대로 쓸 줄 몰라 처피 뱅을 한 못난이 인형 같은 머리가 되어있었다.


웃으면 안 되는데 너무 웃겨서 배를 잡고 침대에 누워버렸다. 엄마는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웃는 게 어딨냐?" 하며 동생을 불렀다. 그런데 동생도 보자마자 빵 터져서 결국 셋이서 집이 떠나가라 웃고 말았다.


이 일이 계기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더 이상 엄마의 가발과 머리카락 한 올 없는 머리를 봐도 처음처럼 속상하지 않다. 웃음은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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