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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 Dec 16. 2020

엄마의 수술

3차 항암 후 난소암 수술 

엄마의 수술 일자가 잡혔다. 


3차 선 항암을 무사히 받고 의사와 면담했다. 의사 선생님은 엄마가 항암약이 잘 받는 몸이라 다행히 몸 곳곳에 퍼져있던 암세포 사이즈가 많이 줄었다고 했다. 암세포 사이즈가 줄었다지만 수술은 큰 수술이 될 거라고 했다. 


부산에서 입원 준비를 위해 짐을 챙기고 동생이 엄마와 먼저 서울에 올라갔다. 나는 오전에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술 당일, 일을 마치고 아빠와 함께 서울에 올라가기로 했다. 

아침에 출근하며 엄마와 통화를 했다. 


"엄마. 굿모닝! 기분은 어때?"


"딸~ 괜찮아. 11시 반쯤 수술실에 들어갈 거래."


"알겠어. 그럼 11시쯤에 전화 한 번 더할게~ 잘 될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전화를 끊고 일을 한 후 시간을 보니 오전 11시 10분쯤이었다. 그런데 동생한테 카톡이 와있었다.

이미 수술실에 들어갔다는 내용이었다. 서둘러 일을 마치고 집에 가서 서울에 올라갈 준비를 하며 제발 별일 없이 잘 끝나길 빌었다. 아빠와 내가 아산병원에 도착하면 엄마 수술이 곧 끝날 시간이었다. 


대중교통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 아빠를 챙기며 겨우 아산병원에 도착했다. 수술이 끝나려면 아직 한 시간 정도 남아서 동생과 나, 아빠 셋이서 밥을 먹었다. 시간 여유가 있는 줄 알고 천천히 먹고 병실에 올라갔는데 이미 엄마가 병실에 누워있었다. 


엄마는 얼굴이 퉁퉁 부었고, 링거 줄, 소변 줄, 피를 담는 통 같은 것이 배에 연결되어있었다. 

엄마는 수술하고 의식을 회복한 후 병실로 옮겨 왔는데 왜 아무도 없었냐고 서운했는지 우는 소리를 했다.

미안했다. 미리 기다리고 있을 걸. 


서서히 마취가 풀리며 많이 아픈지 끙끙 앓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듯했다. 


간호사는 길면 일주일 정도 입원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동생은 이미 수술 전 병원에 와있었고 며칠 후면 면접이 두 군데나 잡혀있어 계속 있을 수 없었다. 아빠는 당연히 출근을 해야 했으니 내가 일하는 곳에 양해를 구하고 결국 일주일간 병원에 있기로 했다. 


그날 밤 나는 엄마가 수술을 무사히 마쳤다는 것도 잊을 정도로 아파하는 엄마를 보고 겁에 질려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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