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스물하나를 기억하며...
최근 너무 재미있게 봤던 있는 드라마가 있다. 1998년, IMF 시대에게 꿈을 빼앗긴 청춘들의 방황과 성장을 그린 청량 청춘 케미스트리! 김태리와 남주혁이 주인공인 ‘스물다섯 스물하나’다. 탄탄한 스토리와 깊이있는 구성, 각 인물들에 대한 입체적인 묘사뿐 아니라 ‘리틀 포레스트’ 영화를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영상미에 보는 내내 감탄이 절로 나오는 작품이다.
솔직하다 못해 투명하게 본인의 감정과 의견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나희도(김태리)는 너무 사랑스럽고, 우수에 잠긴 듯한 눈빛으로 여심을 흔드는 백이진(남주혁)은 보고만 있어도 미소가 지어진다. 이 두 사람이 주연을 맡고 있으니 그 자체가 작품이지만, 감독의 수준높은 연출이 함께 어우러지니 이 드라마는 모든 씬이 ‘그림 그 자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작품의 주요 스토리는 각 인물의 시련과 성장을 다루고 있는데, 꿈과 동경을 지켜가는 과정이 퍽 감동적이다. 특히 아무리 노력해도 성과가 나지 않는 펜싱 선수였던 나희도가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는 과정은 나에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왜냐하면 이 과정속에서 보여지는 그녀의 모습이 자기계발 뿐 아니라 성장을 위한 다양한 인사이트를 아름다운 화면과 스토리로 세심하게 알려 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희도는 펜싱 자체에 대한 애정 어린 꿈과, 고유림이라는 라이벌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한 고등학생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평범하고 성과 낮은 선수라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가장 응원을 받아야 할 엄마와 담당 코치로부터 재능없는 펜싱은 그만 두라는 권유를 받을 정도 였으니, 그녀의 실력이 얼마나 한심했는지 추측할 만 하다.
하지만 그녀의 열정은 현실을 뛰어넘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라이벌인 선수를 분석하고 본인의 훈련과정을 날마다 기록하고 피드백하는 루틴을 시작하게 된다.
내 생각에 이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그녀의 저널 즉 ‘피드백 노트’다. 그녀의 딸이 우연히 발견한 피드백 노트로부터 과거의 추억이 소환되고, 현재와 과거의 장면들이 오버랩되며 스토리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겠지만, 어떠한 기술이나 지식을 높은 수준까지 습득하는 과정은 대개 재미없고 고단하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흥미가 생기고 즐거울 수 있지만, 그것은 딱 초급 수준까지다. 중급 수준을 넘어서게 되고 그 이상의 실력을 만드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끈기와 인내를 요한다. 나에게는 수영과 영어공부가 그랬던 것 같다. 미숙한 운동 동작이나 영어 표현을 계속 반복해도 나의 것이 되지 않고 더 이상 나아지는 것이 없는 듯한 그 막막한 기분이란 진짜 참담하다.
나희도 선수도 드라마 속에서 그랬다.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해도 제자리였고 경기에서 계속된 패배를 맛봤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지루한 훈련 과정을 계속 반복하고, 그 반복 가운데 있는 세밀한 차이를 기록했다. 오늘은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무엇을 더 개선해야 할지? 왜 오늘은 졌는지? 왜 실패했는지? 날마다 이런 저런 시도를 하며 그 결과를 끊임없이 피드백하고 보완했다.
드라마에는 그녀가 하루를 마무리 한 뒤, 또는 경기에서 처절한 패배를 맛본 뒤 그 과정을 복기하며 기록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이런 노력을 세심하고 적절하게 표현해내는 감독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는 이것이 그녀가 정상에 올라가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루틴을 보며, 나는 비교적 최근 시작한 나의 소박한(?) 루틴을 떠올렸다.
나는 작년(2021년)부터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고 있다. 미라클 모닝이란 아침 일찍(보통 출근하기 약 2~3시간 전) 일어나 정해진 루틴을 실천하는 것이다. 나의 아침 루틴은 간단한 명상과 일기 그리고 그날의 다짐쓰기 독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나는 오래 전부터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을 여러 번 시도했지만 계속 실패했었다. 직업의 특성상 야근이 많아 결심만으로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 잠이 줄어든 것인지 모르겠으나, 어느 순간부터는 조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가능해지고 그것이 습관이 되었다.
사실 이 루틴을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나희도와 같지 않았다. 즉, 자기계발이나 성장보다는 ‘나 자신을 찾기 위한 목적’이 컸다. 한 마디로 정신 차리고 살고 싶었다. 워킹맘으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다보니, 어느 순간 내가 도대체 왜 사는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점점 나 자신이 소멸되어가는 느낌이 들었고 우울감이 심하게 왔다. 이렇게 재미없는 삶을 지속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하자,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다른 방식의 삶을 시도해 보고 싶었다. 그 중 하나가 미라클 모닝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미라클 모닝이 하나의 아침 루틴으로 자리잡으며, 나는 저녁 루틴을 추가했다.
시간 관계상 몇 가지는 생략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아예 못하기도 하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루틴으로 아침과 저녁을 보낸다.
아침 6:30분 기상, 손씻기 물 500ml 마시기
명상 짧게 - 5분 정도
저널 기록 (하루의 다짐, 일기-감사한 것들 위주로)
독서
침실 정리
11시 정도 하루를 마무리
저널 기록 (하루 메모 정리, 오늘 나에게 있었던 굉장한 일들 , 스스로 잘한 일등)
침대 위 전신 스트레칭
11:30분 전에는 불끄고 잠자리 들기
이렇게 실천하고 기록한 루틴들은, 매달 말 정리하는 Monthly 회고록의 주제가 된다. 최근에는 일주일 단위로 메모한 것들을 정리하고 기록하는 루틴을 시도해보고 있다. 이는 근래 자주 보는 ‘김교수의 세가지’라는 유뷰트 채널을 운영하는 김익한 교수의 ‘메모의 기술’을 실천해 보려는 시도 중 하나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것 같다.
안 그래도 바쁜데, 귀찮게 뭐하러 그런 복잡한 루틴을 날마다 해요 ?
내가 드라마 주인공같은 세계최고의 운동 선수도 아니니, 굳이 이런 루틴이 무슨 소용이냐고 강한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신없이 사는 워킹맘인 나에게는 이러한 루틴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큰 힘이 될 뿐 아니라 뚜렷한 목표를 향한 방향을 알려주는 등대와 같다. 또한 아직은 이를 실천한지 1년 여 남짓 밖에 되지 않아 눈에 보이는 뚜렷한 성과는 없지만, 내가 마음에 품고 있는 다양한 목표들이 조만간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 확신한다. 당당하고 유연한 중년이 되고 싶은 목표, 몸짱 아줌마(할머니?)가 되고 싶은 목표, 글을 쓰고 강연하는 스타 강사가 되고 싶은 목표, K-Security 를 널리 아시아와 세계에 알리고 사이버 영토를 확장하는 싶은 목표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러한 목표를 위한 데일리 루틴은 현재 나에게 이러한 의미를 갖는다.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시간
자꾸 틀어지는 삶의 방향을 세밀하게 조율하는 시간.
조금씩 헐거워지는 의지의 나사를 헐겁지 않게 꽉 조여주는 시간.
여기저기 흩어져 어지럽혀진 마음의 방을 정리하는 시간.
내 영혼을 온전히 돌아보고, 쓰다듬어 주는 시간.
아주 어린 나이에 루틴을 시작한 나희도 선수는 오랜 시간 그것을 실천하며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었다. 나의 경우 는 1년 조금 넘게 이것을 실천했을 뿐임에도, 삶의 구석구석에 제법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나를 지독히 괴롭히던 불면증과 우울증을 극복했고, 브런치 작가로 등단했으며, 회사내에서도 승진을 하고 제대로 나의 영역을 인정 받았다.
이런 소중한 시간을 귀찮다고 힘들다고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뭐든 습관이 되면 전혀 힘들지 않는 법이다. 처음에는 이를 지속하는게 힘겨웠지만, 삶의 패턴으로 자리잡으니 거의 힘들지 않다.
너무 바빠 단 몇 분 조차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기 힘든가 ?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고, 도대체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막막하고 힘든가 ?
하루 15분 아니 단 5분이라도.... 삶의 방향을 조정하고 피드백 하는 데일리 루틴을 가져보시라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아주 보잘것 없어 보이는 이 작은 조각의 시간이 당신을 성장과 자유의 길로 인도하리라 나는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