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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Apr 16. 2024

잊지 않는 이유

4개월 가까이 만났던 필라테스 강사님 한 분이 다음 주에 그만두신다. 이별을 앞둔 강사님은 아쉬움의 크기를 수업의 밀도와 강도로 전하는 중이다. 가기 전에 한 동작이라도 더 알려주고 싶다며 50분을 쉼 없이 몰아친다. "저를 잊지 마세요~"라며 수강생들에게 고난을 각인시키고 있다. 나를 비롯한 수강생들은 그녀가 빨간 모자만 안 썼지, 지독한 조교 같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낑낑거리면서도 50분을 호흡과 땀으로 꽉꽉 채운다. 그녀를 향한 수강생들의 작별 선물 같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지도했던 강사님, 아낌없이 탈탈 털어 나눠주고 싶어 했던 분,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바 임무를 다했던 사람으로 내내 기억되지 싶다. 


나는 학생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는 강사일까. 

밀도 있는 수업을 하고자 했으나 나도 모르는 새 허투루 흘려보낸 수업은 없었을까?

제대로 배웠다는 느낌을 주긴 했을까? 


딸, 아내, 엄마로서는 어떨까? 

가족들에게도 매 순간 딸 같았던 딸, 아내 같았던 아내, 엄마 같았던 엄마로 기억될까? 

 


좋은 기억으로 남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닐까 한다.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

마지막 순간까지 본인의 역할에 충실한 사람.

그런 사람은 이름과 얼굴, 표정 하나하나까지 고스란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반면, 나쁜 기억으로 남는 사람은 이름과 얼굴보다 그들의 '죄명'으로만 기억된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죄. 

자신의 역할을 외면했던 죄.


마지막까지 누군가의 딸 아들이었던 아이들을 잊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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