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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May 01. 2024

애기, 군대에 가다

D-547(2024.04.29)

그날이 오고야 말았구나. 기다리면서도 피하고 싶었으며 싫으면서도 빨리 해치우고 싶었던.... 입대.

공부가 너무 지겨워서 군대나 가야겠다고 해놓고는 입대일이 정해지자 싫다고, 너무 싫다고 칭얼거렸지.


네 입대는 참 험난했다.

올해 초부터 매월 모집병에 지원했지만, 번번이 떨어졌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육군 기술행정병과 공군 운전병에 합격하기엔 네 점수가 한참 모자랐다. 시력 때문에 병역 판정을 3급 받아놓으니 지원할 수 있는 분야가 제한됐지. 될 대로 되라며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해군에 지원했고 5월 입영이 결정됐는데, 이번에는 아빠가 막아섰다. 아빠는, 아들이 군함을 타고 망망대해 물 밑에서 잠을 잔다는 생각을 하면 걱정이 돼 도통 잠을 못 이룬다고 했지. 그 한숨을 무시하지 못한 너는 결국 취소했고.


입대하겠다고 휴학했는데 시간은 흘러가고 있으니 이제 네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였다. 2, 3주에 한 번, 수요일에 올라오는 선착순 모집.... 입영일에 생긴 결원만큼을 뽑는 데다 선착순 접수여서 임영웅 콘서트티켓 예매 저리 가라 할 만큼의 신속, 정확한 손놀림이 필요한 일이었지. 상당 부분 운도 필요하고 말이야. 몇 번의 실패 끝에 성공한 날짜는 3주 후였던 4월 29일이었다.


입대가 너무 늦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은 야속했다. 나날이 굳어가는 네 안색을 살피면 엄마 마음이 무거워졌단다. 갑작스럽게 와 너만의 1박 2일 강릉 여행을 다녀온 이유란다. 시원한 바닷바람 맞으며 산책을 하고 호텔 조식을 먹는 여유를 부리다 보면 조여 오는 입대일에 대한 부담이 덜해질 거라 믿었지. 사실 엄마는 너를 위해 짬을 내고 여행을 가준 거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그게 아니더라. 마음을 내주고 시간을 내준 건 너였지. 자기를 신경 쓰는 엄마가 신경 쓰였던 너.



강원도 양구를 처음 가보았다. 하긴, 경상남도 함안도 형 덕분에 처음 가보았지.

더위를 많이 타는 형은 가장 남쪽으로, 추위를 많이 타는 너는 가장 북쪽으로 가다니, 아이러니하다. 아니다. 너를 두고 오는 길에 검색해 보니 양구는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운 곳이라 하더구나. 마음이 더 아렸지.


우리는 늘 너를 '애기'라 불렀. 스무 살 넘은 총각을 그리 불렀다. 어렸을 때 할머니가 애기라 부르면 그렇게 싫다고 화를 내던 너였지만 엄마 아빠가 애기라고 부를 때는 가만히 있었다. 입대 전까지도 가끔은 엄마, 아빠 사이에 누워있기도 했지. 애기처럼...

그런 네가 머리를 바짝 깎으니, 수백 명의 청년들 사이에 섞여서 멀어져 가니, 이제 당분간은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진짜 사나이가 되러 떠난다고 하니, 더 이상 애기라고 부를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하니...

눈물이 나더구나.

눈물이... 나더구나...


집에 와서 네 방을 깨끗하게 치웠다. 형이 입대하던 날처럼 엄마만의 의식을 치렀지. 내내 마음이 먹먹했다.

집돌이였던 너는, 집안 어딘가에 있어서 부르면 언제든 대답할 것 같은 너는, 없었다.

너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어디에도 없었지만, 어디에나 있었다. 그래서 엄마는 내내 울적했다. 슬픈 게 아니었다. 그 감정의 이름은, 울적함이었다.


너의 첫날은 어땠을까. 정신없고 바빴겠지? 어색하고 힘들었겠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다가 아무 생각 안 나기도 하고 그랬겠지?

형이 그러더라. 이 낯선 곳에서 잠이 올까 싶었는데 10시에 소등하자마자 곯아떨어졌다고. 너도 그랬을까? 에이, 기왕 온 거 어쩌겠냐, 잠이나 자자, 하면서 맘 편히 잠에 들었을까? 그랬기를... 그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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