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Food 미국 남부 흑인들의 전통 음식을 가리키는 용어였으나, 현재는 영혼의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음식 또는 영혼을 흔들 만큼 인상적인 음식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쓰인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이 용어를 '위안 음식'이라는 순화어로 명명했다. < 출처 -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
일에 치이고 사람에 휘둘린 것도 속상한데 뱃속까지 텅텅 비어버리면 서러움은 한도 초과가 됩니다. 안희정 작가는 < 마지못해 사는 건 인생이 아니야 > 에서 "삶이 나를 힘들게 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냥 모든 것에서 멀어지고 싶을 때. 그럴 때는 고달프고 힘든 인생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버거워하기보다 일단 지금 뱃속에 무엇을 넣을까부터 고민해야겠다. 인생의 처량함이 뜨거운 라면의 면발을 불 때 한순간에 같이 날아갈 수도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힘들 땐 밥이죠.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뜨끈해지고 노곤해지는 음식. 우리는 흔히 그들을 소울푸드라 부릅니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솔푸드'가 맞지만, 왠지 어색하다. 편의상 '소울 푸드'라고 표기하려 한다.)
소울푸드가 뭐냐는 질문을 하면 상대방은 십중팔구 먼 산을 쳐다봅니다. 머릿속을 스치는 여러 음식, 음식과 함께 떠오르는 기억을 더듬는 중일 것입니다. 그러다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너무 많은 음식이 떠올라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합니다. 그러면 저는 다음 질문을 던집니다.
"제사상에 어떤 음식이 올라왔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결정이 조금 쉬워지는 모양인지, 단숨에 대답하지요.
"김밥이요!"
남편은 제사상에 김밥을 올려달라고 했습니다. 김을 좋아하는 그는 평소에 김을 끼고 삽니다. 반찬뿐 아니라 간식으로도 김을 먹습니다. 술과 고기를 즐기는 중년 남성의 대장이 깨끗한 이유가 김 때문이 아닐까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될 정도입니다.
하지만 김밥을 좋아하는 이유가 단지 김을 좋아해서는 아닌 것 같습니다. 흔하고 단순한 재료가 주는 풍성한 식감과 맛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당근, 단무지, 햄, 오이나 시금치, 쌀처럼 평범한 재료들이 모여 김에 의해 단단히 말리고 뭉쳐 그들만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기특해 보입니다. 우리의 평범함도 그렇게 빛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입 크게 벌려 김밥 한 조각을 넣어봅니다.
"삼겹살 쌈밥 정식이요!"
"후손들이 내 제사를 챙겨주기나 하겠어?"라며 심드렁해했지만, 큰아들은 어김없이 고기를 답했습니다. 구체적인 메뉴 구성까지 덧붙였지요. 돼지 삼겹살을 쌈밥정식과 함께 올려줬으면 좋겠답니다. 귀갓길에 문자로 엄마에게 주문하던 메뉴입니다. "고기 있어?"라는 물음은 엄마와 자신을 연결하는 끈을 잡아당기며 칭얼대는 아이의 음성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만치 떨어져서 아들의 성장을 지켜보던 엄마는 부리나케 달려와 냉장고를 뒤져서 쌈밥정식 한 상을 차려놓았더랬죠. 지글거리는 고기를 크게 한 쌈 싸서 흥겹게 먹는 아들을 바라보는 시간이 참 좋습니다. 아들의 영혼이 고기로 차오르는 동안 엄마의 영혼은 행복으로 가득 찼습니다.
"햄버거요!"
작은 아들에게는 오래전 물었던 질문입니다. 군에 가 있는 지금은 바뀌었을지 모르겠지만 입대 전까지 아들의 소울푸드, 제사상에 올려줬으면 하는 음식이 햄버거였습니다. 이유는 그답게 '그냥'입니다. 그냥 맛있다는데 더 이상의 이유는 필요 없습니다. 햄버거 소스를 입가에 묻혀가며, 떨어진 양상추나 토마토를 손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어가며, 중간중간 감자튀김으로 입을 채우고, 가득 찬 입을 콜라로 채우는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유 없이 좋다는 건 저런 거구나. 모든 일에 심드렁한 작은 아이에게도 해맑게 행복한 표정을 짓게 하는 음식이 있구나. 저런 표정을 짓게 하는 영혼의 단짝을 만날 날도 오겠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음식이니, 아들의 소울푸드는 햄버거임이 틀림없습니다.
과거처럼 못 먹고 사는 시절도 아니고, 먹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죽어서도 기를 쓰고 먹는 것에 집착하냐고 하신다면, 살면서 먹는 것보다 중한 것은 없다는 저의 소신을 살짝 전하고 싶습니다. 알약 하나만 먹으면서 살고 싶다며 먹는 것이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행위라고 폄하하는 이들도 있지만, 먹는 것만큼 의미 있고 쓸모 있는 행위는 없다고 항변하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음식을 입안 가득 넣고 씹다 보면 나를 들들 볶았던 어떤 이를 함께 씹어대는 만족감을 느낍니다. 꼭꼭 씹어 삼킨 음식물이 목구멍을 지나 위장으로 들어가 차곡차곡 쌓이면, 나를 힘들게 했던 세상만사가 조금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잘 소화된 음식이 배설되고 또다시 허기가 찾아오면,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끼며 나를 기쁘게 할 음식을 다시 찾게 됩니다. 삶은 그런 작은 기쁨이 성실하게 쌓일 때 살만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나를 살게 하는 원초적이면서도 간단한 동력입니다.
평생 나를 살게 한 음식이니 죽어서도 먹고 싶은 것 아닐까요. 살아서도 먹고 싶고 죽어서도 먹고 싶은 음식, 영혼을 달래는 음식이니 소울푸드를 젯밥이라고 표현해도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