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부재에 익숙해지지 않을게
< D-328 >
밤새, 별일 없었지? 잠은 좀 잤니?
팽팽한 긴장과 극도의 혼란으로 가득 찼던 밤이 끝났구나. 갑작스러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부터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 비상계엄 해제까지, 역사 교과서에서나 읽었던 과거의 망령이 되살아났던 시간이었다.
전 국민이 뜬눈으로 뉴스를 지켜보고 일부는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 울부짖던 지난밤, 군부모들은 피를 토하는 심정이었을 게다. 명령에 따라 국회에 진입할 수밖에 없던 계엄군의 부모들은 또 어땠을까. 국회 앞에 모인 시민을 향해 죄송하다고 말했다는 어느 계엄 군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마터면 힘없고 죄 없는 사람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분노를 드러낼 뻔했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이래저래 아찔한 밤이었다.
하필 어제였다.
매일 저녁 6시를 전후로 오던 너의 문자가 없던 것이.
같은 시각 너의 문자를 기다렸다가 바로 통화를 하던 엄마가 까맣게 너를 잊고 있던 것이.
8시가 훌쩍 넘어 걸려 온 전화 너머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들려주던 네 목소리를 들으며 그제서야 사무치게 미안했던 것이.
하필이면 어제 난 너를 잊고 있었다.
통화를 마치고 부엌일을 하는 내내 찝찝했던 마음은, 나는 왜 아들의 부재에 이렇게 익숙해졌던 것인지 자책했던 것은, 몇 시간 뒤 있을 계엄을 감지했던 탓이었을까. 미안하고 미안해서 어찌할 바 모르던 마음이 자꾸 차오르고 있었는데 계엄선포라는 비현실적인 장면과 마주치니 이 모든 게 영화나 소설처럼 느껴지더라.
소설을 쓰겠다고 했다. 하필이면 어제. 너는.
"소설을 쓰려고 구상 중인데, 이번에 휴가 가면 말해줄게."
어떤 장르냐고 자꾸 묻는 엄마에게 너는 SF와 철학을 엮을 것이라고 말해줬는데, 어젯밤 엄마의 머릿속에는 한강 작가의 소설들만 둥둥 떠다녔다. 그런 소재는 이미 우리 역사에 많은데, 또 글감이 생기려는 밤인가, 아들은 이 상황을 소설로 쓰게 되려나.
완전무장을 하고, 총부리를 겨누며, 국회의 창문을 깨부수고, 소화기로 저항하는 보좌관들을 향해 돌진하던 군인들을 담은 영상의 잔상이 오래 남는다. 거기까지여서 다행이다. 누군가의 아들이었을 그들의 군홧발에 아무도 밟히지 않아서, 2024년에 1980년처럼 발포 명령이 떨어지지 않아서(그럴 리야 절대 없었겠지만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기도...), 기가 막힌 하룻밤으로 끝나서.
어제와 같은 일상을 시작한 시민들처럼, 너의 오늘이, 우리 아들들의 오늘이 어제와 같기를 소망한다.
한 시도 너를 잊지 못하던 엄마의 일상을 다시 찾자고 다짐도 한다. 네가 없는 캄캄한 밤에 익숙해지지 말기를, 온전히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그날까지 너를 계속 그리워하기를, 네가 쓸 소설을 계속 궁금해하기를...
간밤 비상계엄 선포는 너의 부재에 익숙해지려 하던 엄마를 향한 것이었다.
* 한 줄 요약 : 잊혀지던 모든 것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