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유정 Nov 01. 2024

얼마나 남았는지가 중요합니다

< D-365 >

지난 월요일은 네 복무기간이 365일 남은 날이었단다. 남은 복무 기간이 547일이었던 입대 첫날에서 무려 182일이 지났으며 전체 기간 중 3분의 1을 완수했다는 의미였다. 이번 주만 지나면 차차 적응할 거야, 이번 달만 지나면 편해질 거야, 하며 보낸 시간이 6개월이라니. 군인 앞에서는 '벌써'라는 말을 쓰기가 조심스럽지만, 떨어지는 벚꽃을 맞으며 입대했던 네가 낙엽길을 밟으며 외박을 나온 지난 주말엔 '벌써'가 꽤 실감 나더라.


벌써 6개월이 지났다는 엄마 말에 네가 말했지. 얼마나 지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얼마나 남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이야. 아직도 365일이나 남았는데 어쩌냐며 한숨을 쉬는 너에게 엄마 아빠의 위로는 바람보다 더 빠르고 가볍게 널 지나쳤을 것 같더구나.


네 말이 맞다. 얼마가 지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남았는지가 문제지. 1년 남은 군인의 시간을 두고, 책을 읽어라, 자격증 공부를 해봐라, 운동을 해라, 의미 있게 보내라며 충고했던 엄마아빠가 미안해지더구나. 정작, 얼마나 남았는지, 남은 날을 어떻게 보낼지가 중요한 사람은 엄마아빠인데 말이다.


엄마의 남은 날이 얼마인지를 가늠해 본다. 물론, 가늠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지. 그렇다면 남은 날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해 본다. 그건 가능할 것 같다. 1분 후도 예측할 수 없는 게 삶인데 1년 후, 10년 후를 야무지게 고민하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1년의 계획을 세우고 10년 후의 나를 그려봐야겠다고 다짐한다.


김호섭 작가의 <멈춤을 멈추려 합니다>라는 책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흐려진 지난 발자국을 딛고 일어서 삶의 새로운 무늬를 그려보려는 희망을 현실로 이뤄내는 것은, 무기력에 스스로 저항할 수 있는 용기와 꾸준한 습관입니다."


이미 흐려져 누구의 발자국인지도 알아볼 수 없는 지난 발자국은 잊자. 

삶의 새로운 무늬를 그려보려는 희망을 갖자. 

무기력한 몸을 일으킬 용기를 갖고 무기력에서 탈출할 꾸준함이라는 무기를 들자. 

그리하여 365일 후, 달라진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며 씨익 웃자꾸나.

매거진의 이전글 자유롭게 단단하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