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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Oct 16. 2024

자유롭게 단단하게

< D - 377 >

두 달간의 목발 생활에서 자유로워진 오늘, 어땠니?

오랜만에 신은 운동화가 답답하지는 않았는지, 목발 없이 걷는 것이 어색하고 힘들지는 않았는지, 어제까지는 환자로 보였다가 하루 만에 일상으로 복귀한 모습을 보이려니 부대에서 눈치 보이지는 않았는지... 너와 헤어진 지 24시간도 안 됐는데 그새 질문이 쌓였다.


"어느 부대에 있니? 거기 정말 좋은 곳이구나? 배려를 너무 많이 해주는 곳인데?"

국군수도병원 의사 선생님께서 네 발 사진을 보자마자 한 첫마디였지. 조금씩 움직이면서 일상 복귀를 준비해야 했는데 식사 시간 외에는 전혀 안 움직였나 보다며, "미사용 골감소증이라고 말씀드리면 이해가 빠르실까요?"라며 웃으셨다.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있다는 네 말에도 너무 안 써서 그렇다며 당장 보호대와 목발을 벗으라는 처방을 내리셨지.

워낙 호탕하게 말씀하셔서 그렇지 쾌유를 축하한다는 의미였을 게다. 전역 때까지 건강하게 군 생활할 수 있을 테니 어머니는 이제 아무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말씀까지 해주셔서 어찌나 고맙던지.


발은 다 나았다는데 네 표정은 마냥 밝지 않더라. 다시 수송 업무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었지. 두 달간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했던 너는 행정반에서 업무 보조를 했고, 그 생활이 퍽 재미있다고 했다. 한 번도 다뤄본 적 없는 엑셀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라는 선임들의 지시가 당혹스러웠지만, 도움말을 보며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때의 성취감이 있다며 말이야. 선임들도 너를 행정반에 붙잡아두고 싶어 한다는 네 말에 엄마가 웃었더니 네가 말했지.

"나, 군 생활 잘해~  난 그냥 내 업무를 해낸 건데 일 잘한다는 소문이 났더라고. 날 대하는 태도들이 달라~"


왜 아니었겠니. 너는 줄곧, 입으로만 떠드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조용히 너를 증명하는 사람이었지. 그래서 더 빛이 나는 사람이었단다. 부대에서도 변함없이 너를 증명하고 있었구나. 아픈 발 때문에 제 몫을 못 해낸다는 소리 듣지 않으려고, 선임이나 동기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구나.


제 입으로 하는 자랑은 공허하다.

반면, 행동으로 나는 소문은 단단하다.

네가 전역 때까지 건강하고 단단하게 잘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믿게 된 이유다.


보행이 자유로워지니 계획했던 것들을 하나씩 해야겠다며 의욕을 보이는 너를 보니 수송으로 돌아가든 행정반에 남든, 걱정할 이유가 없어 뵌다.

너는 걱정이 안 되는데, 나라가 걱정이다. 아빠는 뉴스만 보면 끌탕을 하거든. 울 아들이 군대에 있을 때 전쟁  나면 어쩌냐고 말이야. 북한이 경의선, 동해선 도로를 폭파했다는 소식에, "전쟁 나면 제일 먼저 달려가서 도로 까는 일을 공병인 우리 아들이 하게 될 텐데 큰일이네..." 하며 걱정을 했다.

수시로 남발하는 아빠의 걱정도 공허하다.

덩달아 불안해지는 엄마는, 여전히 단단하지 못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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