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지도 않고, 2주 후면 만날게 될 텐데 괜히 소포를 구실 삼아 네게 편지를 써본다. 요즘 군인들은 매일 휴대폰을 받아 자주 연락을 하니 누가 편지를 쓰겠냐마는 이때가 아니면 우리가 언제 또 아날로그 감성에 젖어볼까... 깜빡거리는 커서 앞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대신, 무슨 말을 쓸까 어떻게 쓸까 눈알을 굴리며 신중해지는 이 시간이 새삼 좋구나. 펜을 들고 쓸 말을 구상하고 신중하게 한 줄씩 써 내려가다가 잘못 쓴 단어나 맘에 안 드는 문장이 발견되면 종이를 구겨버리는 감성. 맞춤법 검사기에 돌릴 수 없으니 오타나 맞춤법에 대한 무지를 숨길 수 없어서 너무나도 인간적이 될 수밖에 없는 감성. 송유정 감성 모르면 나가라~ ㅎㅎ
지난 월요일에는 매트리스 케어 기사님이 오셨단다. 네 침대 매트리스 케어를 하고 타퍼를 새것으로 교체해 주셨지. 4개월 넘게 주인도 없던 침대인데, 먼지가 많이 나오더라. 네가 쓰던 낡은 타퍼를(사실은 꽤 새것 같았다.) 형 침대 위에 올려주고, 형이 쓰던 것은 버렸어. 각종 흔적들로 아주 더럽더군. 그 위에서 구토도 했었지 아마? 같은 형제인데 어쩜 그리 다른가 문득문득 놀라곤 한단다. 군생활만 해도 그래. 넌 열 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는데, 형에게 물었더니 책은 거의 안 읽었다더라. 군 생활 대부분을 체력 단련장에서 보냈대.
너무나도 다른 둘이라서 너무 좋았단다.
이어령 선생님은 말씀하셨어. 360명의 아이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뛰면 각자가 일등 할 수 있는데, 왜 한 방향으로만 뛰느냐고. 한 방향으로 뛰어서 1등부터 360등까지 줄 세우지 말고 360도로 세워 각자의 방향으로 뛰게 해 주라고.
우리 두 아들은 각자의 길에서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잘 살아가는 것 같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어. 네가, 특히 동생인 네가, 형이 자라는 과정과 그 안에서 엄마와 있던 갈등을 보고 형과는 다르게 살겠다는 강박 같은 게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어쩌면 너도 운동을 좋아하고 잘하는데 일부러 안 했나? 공부는 안 하고 싶은데 엄마에게 공부하는 아들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건 아닌가? 이렇게 엉뚱한,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았다. 어쨌든 그것 역시 너라는 사람의 선택이고 삶이었으니... 둘이 다르다는 건 숙명이었겠다.
더운 날은 끝났다지만 목발 생활은 여전해서 많이 답답하지? '보행'이라는 그 당연한 움직임이 사실은 꽤 귀하고 소중한 일이었다는 걸 느끼는 것 같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하루하루 생존하는 게 기적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하루를 살아낸 것에, 몸 건강히 살아가는 것에 늘 감사해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사랑하는 아들아.
늘 삶을 진지하게, 성실하게 살아줘서 고맙다.
건강한 엄마 아들인 것도 고맙고.
사랑해~
퇴고를 할 수 없다는 것이 글 쓰는 사람에게는 고문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단다. 비싼 편지지를 몇 줄 쓰다가 구겨버릴 수는 없어서 최대한 신중하게 써 내려갔는데, 손 편지를 브런치에 옮기며 보니 고치고 싶은 문장이 한가득이다. 그런데 그 감성이 또 좋기도 하다. 틀리면 틀린 대로, 어색하면 어색한 대로, 상대가 읽을 수 있을지 모를 나만의 글씨체로 쓴 편지. 그 편지를 한 글자 한 글자 해독해 가며 한참 들여다볼 너를 생각하니 좋은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