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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Sep 14. 2024

3분 4초짜리 휴가

< D - 409 >

입대한 지 138일 만의 휴가였다.

백일 휴가, 신병휴가라고도 불리는, 군 복무기간 중 첫 휴가.


그 설레고 신나는 기간을 목발 짚고 보내야 하는 게 얼마나 기막히고 답답했을까. 현관에 벗어놓은 한 쪽자리 군화와 세워놓은 목발에 마음이 쓰렸다. 네 마음을 전부 헤아리기 힘든 엄마가 할 줄 아는 건 네가 좋아할 만한 음식을 만들거나 주문하는 것뿐이었단다.

전복죽, 갈비찜, 겉절이를 해놓았고 이 더운 날씨에 사골국도 끓였단다. 뼈 건강에 큰 도움이 안 된다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집에서 끓인 사골국을 몇 번은 먹이고 싶었지. 동네에 있는 콩나물국밥집의 '끓이는 식 콩나물 해장국', 우리 둘이 즐겨 찾던 횟집의 광어 우럭회, 우리 가족이 즐겨 가던 고깃집의 갈매기살. 네가 먹고 싶다던 것들을 다 먹이고 나서야 내 할 일을 다한 듯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엄마라는 존재가 해줄 수 있는 건 끼니밖에 없더라.


그 한 끼 식사마저도 네 식구가 한자리에 모여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는 게 안타깝다. 아빠와의 식사도 마지막날 복귀 전 점심 식사가 처음이었지. 우리 가족이 한 자리에 모였던 유일한 순간, 휴가 첫날에서 둘째 날로 넘어가던 새벽 2시가 생각난다. 얼큰하게 취한 형이 귀가하고, 컴퓨터 게임을 하던 네가 방에서 나오고, 모자가 나누는 두런두런 말소리에 자다 아빠가 눈도 뜨고 방에서 나왔그때 말이야. 우리는 거실에 모여 앉아 30분을 떠들었지. 그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 참 좋았단다. 비록 한 녀석은 팔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고 또 한 녀석은 발 보호대를 착용한 것이 흡사 상이용사의 집 같았지만, 그 기억마저도 그 시간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구나.


금요일엔 학교 수업도 없고 일도 없어서 복귀하는 너를 춘천까지 데려다주겠다는 형의 말에 엄마는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단다. 발이 불편한 동생을 위해 기꺼이 동생의 발이 되어주는 형과, 팔이 불편한 형을 위해 기꺼이 형의 팔이 되어주는 동생의 모습. 그 동화 같은 장면을 상상하며 혼자 울컥했다. 그 누구도 아닌 너희 둘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 형의 갑작스러운 스케줄 때문에 그 장면은 깨져버렸고, 돌이켜보니 팔이 불편한 아들에게 춘천까지의 운전을 부탁한 게 비상식적인 일이기는 했다만, 혼자 가슴 훈훈해지고 난리였던 엄마다.


발이 불편하니 여기저기 다니지도 못하거니와 군학점제를 신청한 탓에 휴가 기간 중에도 컴퓨터 앞에 앉아 인강을 듣고 과제를 하고 있는 네 모습을 보니, 지난 130여 일이 꿈만 같더라. 입대한 적도 없이 어제도 그제도 그 자리에 앉아 내내 공부를 하고 게임을 했던 것 같았지. 그런 거 보면 시간이라는 건 물리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사람의 마음에 따라 그 양과 질이 달라지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추상적이며 작위적인 것이 시간 아닐까. 그런 맥락에서 앞으로 남은 400여 일이 비현실적일 만큼 순식간에 지나갔으면 한다.


그럼에도 3박 4일간의 첫 휴가는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짧았다. 병사들에게도 얼마나 짧게 느껴지면 3박 4일이 아니라 '3분 4초'라고 불릴까. 사회에 오래 있어 봐야 복귀하기 싫은 마음만 더 커질 뿐이라지만, 그래도 3박 4일은 짧다. 하긴, 코로나 때문에 미뤄졌던 형의 첫 휴가가 2주나 되었을 때도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던 걸 보면 첫 휴가는 그냥, 짧은 거였다.

보고 있어도, 만지고 있어도 곧 다시 빼앗길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며칠인지와는 무관하게, 그냥 짧은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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