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이 갔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가랬다고, 골절된 김에 더운 여름을 시원한 사무실에서 보냈겠구나. 뙤약볕 아래, 뜨거운 차량을 정비하고 운전하는 운전병의 업무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여기자. 게다가 암호 해독 대회(음어자재 경연대회)를 준비하느라 나름의 바쁜 일과를 보냈으니 8월이 그리 고약하지만은 않았네.
평일 저녁이나 주말 통화 때 뭐 하고 있냐고 물을 때마다 "누워 있어~"라고 답하는 네 목소리에는 무료함과 답답함이 덕지덕지 묻어있더구나. 민간인인 엄마가 느끼기에는, 군인들이 저렇게 누워만 있으면 나라는 누가 지키나 싶은데 당사자인 너는 답답하겠지. 시키는 일 외의 것을 맘대로 해서는 안되고 자유롭게 드나들지도 못하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사회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누워서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말이야.
틈틈이 책도 읽고 있고, 다음 주부터는 군복무 중 학점인정 원격수업을 들을 테니 조금은 나아지려나? 책이라도 더 보내줘야 하나? 생각하다가 말았다. 어쩌면 군대는 삶의 무료함을 달래고 극복하는 각자만의 방식을 찾아가는 시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삶은 무료하다.
복잡하고 바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듯 하지만 어느 순간 미칠 듯이 무료하고 답답하단다. 영상을 보면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죽이는 것 외에는 특별히 할 게 없을 때나, 하루를 꽉 채우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 때조차도 종종 느끼는 감정이다. 어떤 때는 그 무료함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일의 많고 적음, 시간의 많고 적음과는 무관하게 무료할 때도 있더라. 그럴 때 나오는 게 옅은 한숨이지.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 언제까지?'라는 단어를 품고 있는 한숨.
무료함도 삶의 일부라 생각하고 끌어안으면 그 시간도 소중해진다. 정체되어 있고 존재가 소멸해 가는 것 같은 그 시간이 예측불가의 미래를 의연하게 마주하기 위한 충전의 시간이자 당당히 나를 드러내기 위한 준비운동 시간이라 생각하면 말이야.
9월이다.
내 무료함에도 끝이 있어, 이번 주에는 국군수도병원에 진료를 오는 너를 볼 수 있고, 그다음 주에는 첫 휴가 나오는 너와 며칠간을 보낼 수 있겠구나. 무료한 엄마의 오늘이 감사하고 행복한 이유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