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라크루 화요일엔 샛길독서 : 어린 왕자 2
( 라라크루에서는 화요일마다 윤병임 작가님이 독서의 샛길을 안내합니다. 함께 읽고 생각하여 글로 남기는 작업입니다.)
나는 해 지는 걸 좋아해요. 해 지는 걸 보러 가요.
I am very fond of sunsets. Come. Let's look at a sunset now. (어린 왕자, 6장)
시계만 수십 번을 확인하며 초침에 등 떠밀리듯 하루를 살고 나면 어느새 밤이다. 해는 당연히 뜨는 거였으니 어느 순간 또 당연히 졌겠지 싶다가, 괜스레 미안해진다. 해에게. 하늘에게. 나에게.
석양을 좋아하는 어린 왕자를 떠올리며 사진첩을 들춰본다. 아. 옛날 사람 같은 표현이다. 사진첩은 없어진 지 오래다. 외장하드에 연도별로 정리해 둔 사진 파일을 열어본다. 2000년도 파일부터 하나하나 열어 확인해 본다. 2000년, 2001년, 2002년.... 2019년까지 석양은커녕 하늘 사진이 없다. 온통 아이들과 사람뿐이다. 여행지에서 작정하고 찍었거나 인물의 배경이 되었던 하늘, 석양은 제외한다. 일상의 감성이 아니라서다.
2020년. 하늘 사진이 등장한다. 그 이후로는 하늘뿐이 아니라 식물, 탄천 길, 그 길 위의 새, 담벼락, 낙엽... 이전까지는 시선을 잡지 못했던 존재들이 사진에 담긴다. 일상의 감성이 달라진다.
2021년에는 석양 맛집이라고 입소문 난 집 근처 대학 캠퍼스에서 찍은 사진도 보인다. 시간을 못 맞출까 봐 서둘렀던 기억이 선명하다. 하늘이 붉게 물드는 걸 감지하고 베란다로 뛰쳐나가 찍은 석양도 있다. 가장 많은 건,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서 주차장으로 진입하기까지의 100m 남짓한 도로에서 바라보는 하늘이다. 십여 년간 매일 같은 곳을 지나갔으면서, 왜였을까. 왜 2020년부터 그 길, 그 풍경이 눈에 들어왔을까.
글이었나. 2019년 말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나의 시선이 달라졌나. 온통 자식에게만 꽂혀있던 눈이 남편에게로, 사람에게로, 하늘로, 온갖 것으로 향했나.
나이였나. 40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인생을 바라보는 시야가, 마음가짐이 달라졌나.
시시각각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는 해를 감상하는 일은 오늘 하루도 잘 살아냈다는 안도 이상의 것이다. 오늘의 해가 지고 내일의 태양이 뜨지 않더라도, 혹은 나만 내일의 해를 보지 못하더라도 괜찮다는 위로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며 모든 사람, 사물의 정체가 모호해져서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불리는 그 하늘은, 불확실하고 모호해서 불안한 삶 너머의 풍경이다. 빛과 어둠, 삶과 죽음, 선과 악, 나와 너, 이쪽과 저쪽. 구분하고 경계를 나누던 모든 것들의 실체를 의심하게 하고 모든 구분이 인간의 머릿속에서나 일어나는 소요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깨달음이다.
그러니, 해지는 것을 보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우리 모두 매일 하루에 한 번씩은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