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2)
어린 왕자는 석양을 좋아한다. 그의 작은 행성에서는 의자만 옮겨 위치를 달리하면 하루에도 수십 번 석양을 볼 수 있다고. 언젠가 그는 하루에 43번이나 석양을 본 적도 있다며 석양에 대한 깊은 사랑을 드러냈다.
오묘한 빛과 어둠의 시간
빛과 어둠이 교대하는 시간, 밝지도 어둠지도 않은 오묘한 때, 어슴프레한 빛의 퍼짐, 겹겹이 쌓아 만들어진 붉은빛의 흔적.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딱딱해진 몸은 노곤해지고 날카로운 눈빛도 말랑말랑 부드러워진다. 그 흐린 빛 아래 남녀가 마주하면 또 어떤가. 매일 보던 남자도, 늘 똑같던 여자도 더욱 멋지게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마법에 빠지고 만다. 로맨틱한 석양은 이다지도 치명적이다.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매력적인 시간. 매일 한번씩 한 번도 빠짐없이 나타나지만 단 한 번도 똑같은 적은 없었던, 그 오묘한 자연의 빛에 그 아무리 단단한 철벽심장이라도 흐물흐물 무장해제되고 만다. 석양은 그렇다.
신비로운 힘으로
빛과 색감이 아름다운 것은 물론이고 어슴푸레한 빛에 반사되어 어떤 물체든 신비스러운 모습으로 빛나게 만든다. 내게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것이 내가 키우던 개인지 나를 해치는 늑대인지도 분간하기 힘든 미스터리 한 시간. 슬픔에 빠져 있는 이는 더욱 좋아하게 되는 위로의 시간, 석양.
One loves the sunset,
when one is so sad.
편안한 쉼으로
이글거리는 태양을 마주하며 힘겨운 일상과 노동을 마치고 마주한 하늘의 빛은 쉼으로 나를 이끈다. 무사히 하루를 살아냈음에 안도하고 이제는 쉴 수 있음에 편안해지는 시간, 석양. 그 빛을 거부할 이는 없으리라. 아직도 식지 않은 태양의 남은 빛을 고요히 비추며 내게 건네는 말,
오늘도 수고했어요.
이제 편히 쉬어요.
잠시 머물러 노을빛에 귀기우리면 자연의 따스함은 변함없이 부드러워서 움추러든 어깨에 힘을 빼주고 딱딱해진 다리에 힘이 스르르 풀리게 하는 편안한 힘을 선사하곤 한다.
하루 끝, 다시 한번 석양
행여 오늘도 퇴근길 발걸음이 무겁거든 때때로 에너지가 바닥나 땅으로만 꺼질 때는 부스스 눈을 비비고 창을 열어 하늘을 보자. 자세를 고쳐 머리를 들고 기울어진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 여린 빛을 내는 석양을 찾아 몸을 길게 늘여보자. 어느새 해바라기처럼 말간 얼굴에 노르스름한 석양빛이 들어 알 수 없는 화학작용으로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늘의 빛은 언제나 그렇게 공평한 온기로 세상을 데우고 있음을 다시 깨달으면서, 결국 충만해진 마음으로 저녁상을 차릴 기운을 얻게 될지도 ...
오늘도
하루 일을 마치고
44번째 석양을
고요히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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