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5)
어린 왕자는 지리학자의 별을 슬쩍 둘러보았어요. 그는 이토록 위엄 있는 별을 아직까지 본 적이 없었어요.
"참 아름다워요. 할아버지의 별은 요. 이 별엔 대양도 있나요?"
"나는 말해줄 수가 없구나"
"아, 그러면 산은요?"
어린 왕자는 실망했어요.
"나는 말해줄 수가 없구나."
"하지만 할아버진 지리학자라면서요!"
(어린 왕자 15장)
어린 왕자는 지리학자를 만나서 그 별의 산, 들, 대양에 대해 물었지만 지리학자는 어느 것에도 속시원히 답하지 못한다. 그는 그저 책상에 앉아 탐험가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을 할 뿐 진짜 세상의 것은 알지못 한다고. 지리학자가 자신이 사는 곳의 지리를 모른다면 누가 알 수 있을까. 뭔가를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가르친다는 것
현실에 존재하는 학교는 학생과 교사가 정해진 교육과정을 배우고 가르치며 미래의 인재를 키우는 일상의 공간이다. 하지만 때때로 나는 그 너머를 본다. 모든 사람들이 매일 하는 수업과 업무에 눌려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종종 멈추고 생각한다. 왜, 무엇 때문에 그 일을 하지,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어디서부터 온 것이지? 작은 호기심을 따라 올라가면 뭔가 묵직한 것이 나를 압도한다. 이런 나는 학교에 있기엔 조금 무겁고 때론 조금 외롭다.
교육은 세상의 지식과 지혜를 가르쳐서 한 인간의 전인적 성장을 돕는 것이다. 나는 교과서를 가르치고 아이들은 시험을 보고 성적이라는 결과를 내고 경쟁을 통해 대입에 성공해야 한다. 이런 도구적 목적이 본연의 일을 압도한 지 오래되었다. 입시와 취업, 성적과 경쟁 속에 갇힌 학교, 그 한 복판에 내가 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어디에 담을까
교과의 지식을 가르치면서 그 너머의 삶과 세상을 연결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그것을 샛길활동이라고 부르고 부단히 내 수업의 것이 세상과 단절되지 않도록 연결한다. 그러기 위해서 다양한 자극에 나를 노출시킨다. 여러 연령의 사람들과 얘기하고 새로운 분야의 사람들에게도 선입견 없이 다가간다. 주기적으로 책을 읽고 토론하고 나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애쓴다. 이런 작은 변화의 과정을 글로 적으면서 생각을 정돈하기도 하면서. 이렇게 스며든 모든 경험이 내 수업에 연결되고 그 무형의 것이 나만의 치트키가 된다. 때론 음악으로 때론 게임으로 때론 영화로, 음식으로, 여행으로도 연결되는 그런 시간. 이런 내 수업을 어디에 담을 수 있을까. 학문이나 이론으로 담기엔 조금 가볍고 소소하기만 하다. 순수한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박사과정을 시작하고 수료는 했지만 논문은 미완성. 연구를 하기엔 조금 가볍고 학교라는 현장에 있기엔 조금 무거운 그런 사람이 나일까.
사이에 있는 나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단지 내 일을 잘 해내는 것뿐만 아니라 잘하는 것을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 교육 현장에서 느낀 한계를 깨고 한 발자국 나가는 일은 별도의 노력을 필요로 했고 나를 공인된 대회, 승진 등에 그럴싸하게 보이도록 만들어야 했다. 몇 번을 해봐도 그게 진짜 교육일까. 이렇게 준비하면 진짜 좋은 교사가 되는 걸까. 끊임없는 물음 속에 나는 현장과 연구, 그 경계에서 두리번거리며 어정정하게 그 주변을 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현장에 있기엔 조금 무겁고
연구를 하기엔 조금 가볍다.
세상은 점점 빠르게
점등인이 말했다.
"나는 너무 힘든 일을 하고 있단다. 예전엔 이치에 맞는 일이었지. 아침에 불을 끄고 저녁에 불을 컸으니까. 낮엔 쉴 시간도 있었고 잠잘 시간도 있었고."
어린 왕자가 묻는다.
"그러면 그 뒤로 명령이 바뀌었나요?"
"명령이 바뀐 건 아니란다. 비극은 바로 그거야! 별은 해마다 점점 빨리 도는데 명령이 바뀌지 않는 거야."
"그러서요?"
"그래서 지금은 별이 일 분에 한 바퀴씩 도니까 나는 단 일 초도 쉴 시간이 없는 거야. 일 분마다 가로등을 켯다 껐다 하는 거야. " 점등인은 말했다.
(어린 왕자, 14장)
점등인처럼 우리도 마찬가지다. 별이 점점 더 빠르게 도는 것처럼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돌아가고 일은 더 많아지고 쉴 시간은 더 없어진다. 더 많은 일을 더 빨리하라고 위에선 요구하고 톱니하나에 불과한 사람들은 쉴 틈도 없이 뭔가를 바지런히 한다. 나는 질문한다. 왜 그래야 하냐고.
글쓰기에 담긴 나
날 담을 마땅한 그릇이 없네.
그냥 내가 만들까.
학교에서도 대학에서도 나를 온전히 담아낼 그릇은 없었다. 결국 내게 맞는 그릇을 셀프제작하는 수밖에. 그래서 <샛길독서>가 탄생했다. 글을 쓰면서 조금씩 명료해지는 나. 연민, 합리화나 나르시즘이 글에 비치면 화들짝 놀라 도망가고 싶지만 그래도 계속 쓰다 보니 내가 더 잘 보인다. 남의 말이나 인정이 아닌 스스로 나 자신을 수용하고 이해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글로 정리되는 나는 객관적으로 내 생각을 드러내기에 적절했고 그 안에서 나는 뭉텅이로 던져져 있던 감정과 생각을 정렬할 수 있었다. 자기 판단과 이해의 방법이 글쓰기가 된 것이다. 세상은 내게 빨리 많이 하라고 하지만 나는 왜, 무엇 때문에 빨리해야 하는지, 어디로 어떻게 가는 게 맞는 것인지 고민하고 그것을 쓰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나를 인정하기
나라는 사람은 세상의 톱니에서 떨어져 나와 조금 다른 쪽에서 톱니 전체를 보려 한다. 바쁘게 돌아가던 톱니가 마모되거나, 깨져서 튕겨져 나와 멈추기 전에 멀리서 톱니바퀴전체가 잘 돌아가고 있는지 주의 깊게 보고 있는 것이다. 혹시나 그 바퀴가 굴러가는 방향이 낭떠러지 거나 계속 헛바퀴 돌고 있지는 않은지. 그러면서도 종종 이런 내가 남들과는 달라서 조금 외롭고 또 불안하다. '내가 이상한 건 아닐까. ' 하지만 이젠 안다. 내가 참 좋은 몫을 택했다는 것을. 누군가는 왜 톱니가 되어 빠르게 돌지 않냐고, 다른 사람처럼 열심히 일하지 않냐고 비난하고 질책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나는 답한다.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하고 다만 내가 그 일을 선택했을 뿐이라고. 누구도 묻지 않는 질문에 스스로 답하며 나를 변호한다. 오늘도 움추러든 내게 마법의 주문을 건다. 대한민국 강사 김창옥 님한테 배운 데로 또박또박.
너, 지금 딱 좋아.
뭘 더 하려고 애쓰지 마.
지금 그대로도 참 괜찮아.
#화요일엔샛길독서
#샛길독서
#라라크루13기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