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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복잡함

어린 왕자(4)

by 화요일

아름다운 꽃 한 송이

어린 왕자의 작은 행성에 씨앗하나가 자리 잡더니 싹이 트고 자라더니 곧 성장을 멈추고 꽃을 피울 준비를 한다. 꽃은 그 신비로운 화장에 꽤 여러 날이 걸렸다.


꽃은 초록빛 방에 숨어 계속 아름다움을 가꾸고 있었어요. 정성 들여 자신의 색깔을 고르고 있었어요. 꽃은 천천히 옷을 입고 꽃잎을 하나하나 가다듬었지요.
(어린 왕자, 8장)



긴 기다림 끝에 꽃이 피었다. 그 찬란한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어린 왕자, 하지만 그 화려한 꽃은 날카로운 가시를 4개나 가지고 있고 심술궂은 허영심으로 왕자를 괴롭혔다. 어린 왕자의 별이 춥다며 바람막이를 달라고 말하며 억지 기침을 하기도 하고. 어린 왕자는 꽃이 하는 대수롭지 않은 말에 진지하게 고민했고 그것은 왕자를 아주 불행하게 만들었다.



서로 다른 언어

왕자와 꽃은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것처럼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꽃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거나 변덕을 부리며 왕자를 힘들 게 했고, 왕자는 꽃의 속내를 알아채지 못했다.



난 아무것도 알지 못했어요!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판단해야 했어요.






와, 저기 재밌겠다.
저기 가고 싶은데~~

앗, 저기 맛있나 봐~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선 것 좀 봐.



목적지에 가는 내내 여자는 창밖을 보며 여기 가고 싶다 저기 가고 싶다며 새로운 행선지를 말했고 남자는 혼란스러웠다.


아니, 저길 가자고?
지금?!

아니, 그냥 가보면 좋겠다고...


시속 80km로 달리는 도로에서 휙 지나버린 곳을 다시 찾아오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멋쩍은 여자는 말끝을 흐리며 괜한 서운함에 입을 꾹 닫아버린다. 남자는 심상찮은 분위기에 길가에 차를 대고 다시 네비를 검색해서 아까 말한 그곳을 가보자 한다. 하지만 이제 여자는 시큰둥하다. 여자의 변덕스러움은 시시때때로 남자를 지치게 했고, 둘 사이의 침묵이 흐르게 만들곤 했다.


알 수 없는 그녀

주말 오후, 쇼핑몰. 남자의 신발을 사러 왔다. 몇몇 상점을 둘러보고는 가장 무난한 디자인 몇 개를 추천한다. 그중 하나를 남자는 신어보고 사겠다고 계산하는 동안 여자는 세일하는 가판대 앞에서 자기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고르기 시작한다. 디자인과 사이즈를 비교하며 이것저것 뒤지면서도 남자를 확인한다. 남자가 계산을 끝내고 영수증을 챙기는 것을 확인하고는 여자는 냉큼 남자 곁으로 와서 자기 신발을 봐도 되냐고 묻는다. 남자는 흔쾌히 '그래~'라고 답한다. 여자는 본격적으로 신발 매장을 하나씩 둘러보기 시작한다. 한 상점에서 마음에 들었던 신발을 디자인과 가격을 기억해 두고 다른 상점을 기웃거린다. 아마도 이 층의 모든 매장을 둘러볼 작정인가 보다. 쇼핑백을 든 남자는 세 번째 매장부터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조금 미안했던 여자는 남자에게 괜찮냐고 묻고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여자는 안심하며 다시 열정적으로 물건을 구경한다. 점원에게 사이즈를 찾아달라고 요청도 하면서. 드디어 다섯 번째 매장, 여자는 남자의 눈치를 본다. 앉아서 쉬라고 해도 꼭 따라붙는 남자의 피곤한 모습이 부담스럽다. 더 둘러보고 싶지만 멈춘다.


그냥 가자. 안 살래.



그녀의 속마음

여자는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단장하고 화장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저 좋은 것을 같이 해보고 싶은 마음에 이것저것 새로운 것을 요구했었고, 막상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때는 그것에 푹 빠져있다가도 남자가 힘들어하는 것을 눈치채고는 마음이 불편해져 하던 것을 멈춘다. 이것은 종종 변덕이라 읽히고 까다로움이라고 쓰이곤 했다.


여자의 복잡함은

자신의 요구를 명확하게 드러내면서도 상대의 불편함을 보이면 이내 말끝을 흐리거나 하고 싶은 것을 멈추고 만다. 그러나 남자는 이 모든 것이 헷갈리고 복잡하기만 하다. 여자는 모호함으로 상대를 배려하고, 남자는 여자의 요구를 들어주고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은 마음에 한번 더 묻는다.


도대체 원하는 게 뭐야?!



평행선처럼

여자의 모호함은 남자를 지치게 하고 남자의 다그침은 여자를 서운하게 한다. 둘의 관계는 늘 서로를 향하지만 반대 방향으로 말하고 결국 멀어진다. 여자는 생각한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뭐지? 남자의 사랑, 함께 하는 즐거움, 영원히 아름답고 싶은 욕심... 그러나 그것을 말하긴 어렵다. 그것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녀는 입을 닫지만 남자는 그녀의 진심을 모른다.




꽃과 어린 왕자처럼

여자와 남자도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며 어긋나는 대화 속에서 서로가 답답함을 느끼곤 한다. 누구에게 잘못이 있으랴. 서로 방식이 다를 뿐.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 제목처럼 우린 서로 다른 행성에서 다른 언어로 살다가 만났을지도 모른다. 여자는 자신의 요구의 명확한 언어를 찾아야 하고 남자는 여자의 말 너머의 것을 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 하지만 이런 당연한 해답을 실천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럴 때는 차라리 잘 모르겠다고 얘기하면 어떨까. 각자 다른 잣대로 상대를 판단하기 전에 그의 말 너머의 것을 어림잡아 추측하고 또 다른 오해를 만드는 것보다 그 편이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행동의 언어, 배려의 언어가 완전히 이해되기 전까지는... 일단, 판단 보류!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말로 소통하기 힘든 때는 차라리 말을 멈추면 어떨까. 상대를 조금 멀리서 바라본다면. 상대의 향기와 모습, 걸음걸이, 어딜 보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언제 웃는지 그저 바라보고 기억하기, 그리고 옆에 있어주기, 상대의 얘기를 듣고 맞장구쳐주기. 뭘 하려고 애쓰지 말기. 그저 잠시 하던 것을 멈추고 서로 곁에 있기만 한다...



절대로 꽃들의 말을 들어서는 안 돼요. 그냥 바라보고 향기나 맡아야 해요.
내 꽃은 내 별을 향기롭게 해 주었는데도 나는 그걸 즐길 줄 몰랐던 거예요.
(어린 왕자, 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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