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 + 4 >
전역한 지 나흘이 지나서야 너의 전역을 신고하는 글, 이 매거진의 끝을 알리는 글을 쓰는구나. 완전히 돌아온 너를 제대로 볼 겨를도 없이 바쁜 며칠을 보내고 났더니 너의 '든'자리가 집안을 가득 채웠구나.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은 틀렸더라. 쌓여가는 빨래가, 줄어드는 밥솥의 밥이 증명한다.
군필자.
너와는 상당히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지만, 네 이름 옆에 당당히 붙어 다닐 너의 이력이 되었다.
부스스한 머리로 집안을 어슬렁거리는 것이 그대로지만, 여전히 게임으로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지만 전과는 다른 것이 보인다. 엄마를 기다리며 하루 종일 굶는 대신 냉장고의 식재료로 요리를 하는 것이 그렇고, 옷이 없다며 쇼핑을 해야겠다는 것, 쇼핑을 앞두고 옷장 정리를 하는 것, 쇼핑이 꽤 재밌다고 말하는 것, 무스탕이 입고 싶다며 선뜻 구매하는 것이 그렇다.
전역하던 날 가슴팍에 붙어있던 꿀벌 배지가 떠오른다. 꿀 빠는 군생활을 상징하기 위해 꿀벌배지를 일부러 찾아 샀다고 했지. 그만큼 편안한 군생활이었다고 말했지만, 어떻게 편하기만 했을까. 기억나는 장면이 너무 많아서 18개월이 아주 길게 느껴진다는 걸 보면, 꿀벌 배지로 입막음하고 싶을 만큼 크고 작은 이야기가 많았겠지 싶다. 돌이켜보면 고만고만한 날들이었고 그럭저럭 지낼만했다고 여겨지겠지만, 어이없고 황당한데 눈앞에 버젓이 일어나는 일이 많았겠지.
집에 도착해 거실 바닥에 펼치며 보여준 군복 상의 안쪽에는 군생활을 함께한 이들이 써준 편지가 빼곡했다.
든든했다, 친절했다, 이런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에이스였다, 미친 지니어스, 애정하는 선임, 좋은 사람, 개 웃겼음, 헛똑똑이, 열정페이, 유쾌한 사람, 똑똑하고 일 잘하는 사람, 재밌는 친구, 건실한 사람, 본받을 점이 많은 사람.
"그 누구보다 건실하고 열심히 군생활했지만 끝까지 겸손하게 꿀벌이라고 호소하는 코르키(게임) 장인"
"너와 나눈 대화는 늘 즐거웠고 시간 잘 녹여줘서 고마워."
힘들어도 참고 웃으며 열심히 생활했을 네 18개월이 30여 개의 메모에 고스란히 담겨있더구나. 꿀 빨아서 꿀벌이 아니라, 일하느라 18개월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던 일벌이 아니었을까. 애잔하면서도 자랑스러웠다.
그래도 꿀벌 배지를 달고, 그걸 보며 웃고 있어서 다행이었단다. 아무 사고 없이 엄마와 손잡고 집에 돌아올 수 있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웃을 수 있어서, 다시 네 명이 복작거리는 집이 되어서.
D day가 되자마자 더캠프 앱의 네 신분은 '예비군'으로 바뀌었다. 이로써 엄마는, 초조함, 그리움, 애잔함으로 끌어안던 고무신을 던져버리련다. 대한민국 육군을 만기 전역한 두 아들이 당당한 사회인으로 거듭나는 것을 뒤에서 응원하려 한다.
그리고, 입버릇처럼 말하듯, 이제 이 집안에서는 나만 잘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가련다.
고맙다. 아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