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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써지는 글은 없다

by 늘봄유정

⭕ 라라크루 혜윰 작가의 <주말은 십(詩) 니다> 2025.11.15


<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벌써 세 번째다. 설마설마했는데, 그 일이 또 일어나고 말았다. 여유롭고 기분 좋게 시작한 주말 아침이 순식간에 씁쓸해져 버렸다. 오마이뉴스에 발행되었던 내 기사가 무단 도용된 것이다.


이 사실을 처음 인지한 것은 지난 추석 연휴가 지난 후였다. 명절 전에 썼던 기사가 네이버 메인 화면에 노출되었고 조회수는 평소 글의 두 배가 되었다. 기사가 발행된 지 열흘 정도 지났을 즈음, 그동안 달린 댓글이 궁금해 제목의 키워드를 검색창에 입력해 기사를 찾았다. 네이버에서 발행된 기사와 오마이뉴스에 발행된 기사는 댓글이 달라서 따로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기사 밑으로 비슷한 제목의 글이 두 개 더 보였다. 블로그 게시글이었다. 궁금한 마음에 들어가 확인한 것은, 내 글이었다. 오마이뉴스에서 발행된 글이라는 출처를 밝히고 공유한 글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쓴 것처럼 살짝 손을 보아 자신의 이름으로 발행한 글이었다. 심지어 내가 직접 찍었던 가족사진까지 함께 올라와 있었다. 두 개 중 하나는 AI가 수정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방법이야 어찌 됐든 불법 도용이고 저작권 침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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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혹스러운 마음을 다잡으며 두 건의 블로그 게시글을 네이버 권리 침해 신고 센터에 신고했다. 원본 글이 실린 오마이뉴스의 URL과 내 글임을 확인할 수 있는 증빙 자료, 도용된 글이 실린 신고 대상 블로그의 URL, 글이 도용되었다는 것을 증빙하는 자료 등을 빠짐없이 제출했다. 증빙 자료는 화면을 캡처한 사진을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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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리 과정은 생각보다 빨랐다. 신고 다음날, 게시물에 게시 중단 조치를 내렸다는 답을 받았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올렸던 글의 노출만 막아주는 거였다. 타인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도용하고 그에 따라 이익을 취하는 것은 분명 범죄 행위인데 말이다.


이번에도 비슷했다. 10월 말, 오마이뉴스에 발행한 기사였다. 이 기사 역시 네이버 메인에 노출되었고 조회수도 높았다. 남편의 지인이 우연히 기사를 봤다며 전화를 했기에 신기한 마음에 검색을 해봤다. 내 기사를 포털 검색창에서 확인하는 일은 글을 쓰면서 누리는 작은 기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비슷한 제목의 블로그 글이 보였다. 남편의 사진까지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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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해봤다고 이번에는 능수능란하게 권리침해신고를 했다. 헤매지는 않았지만 성가시고 번거로운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게다가 내 글이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함부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히 게시 중단, 게시글 삭제라는 조치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착잡하고 지저분한 마음을 남겼다.


네이버 게시물 운영정책에는 "자신의 권리가 소중한 만큼 타인의 명예, 사생활, 저작권 등의 권리도 존중되어야 하며, 이를 보호하기 위한 관련 법령은 준수되어야 합니다"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이용약관에는 관련 법령, 운영 정책 등을 준수하지 않을 시 관련 행위 내용 확인 결과에 따라 네이버 서비스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신고 후 도용한 사람의 패널티에 대한 부분은 명시 되어 있지 않다. 글의 도용 여부를 파악하고 신고하는 것도 온전히 저작권자의 몫이다. 신고 당하지 않은 글은 내 글이지만 타인의 글로 탈바꿈되어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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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는 AI를 이용해 글을 쓰거나 타인의 글을 AI에 입력해 어조나 분위기를 바꾸어 세탁한 글을 게시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창작이 목적이 아니라 수익 창출이 목적인 이들에게 글은 그저 수단일 뿐이다. 그런 그들에게 네이버 메인에 노출된 글은 구미가 당기는 먹잇감이 분명했다. 글의 조회수가 높다는 것은 글쓴이 자신에겐 영광이자 기쁨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기회이자 욕망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인터넷에 떠도는 게시글일지 몰라도 내게 글은 하나하나가 모두 보물이다. 글 하나를 쓰기 위해 며칠 동안은 오로지 글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화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유튜브를 볼 때도 글과 어떻게 엮을지 고민한다. 생각지도 못한 것끼리 연결하는 재미를 발견하며 혼자 즐거워한다. 수많은 시간 동안 고민을 거듭했기 때문에 정작 글을 쓰는 시간은 길지 않지만, 쓰고 나서도 읽고 고치기를 여러 번 반복한 후에야 비로소 글 하나가 나온다.


기사를 쓸 때는 더 많은 공을 들인다. 내가 쓴 내용 중 사실이 아닌 것은 없는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깎아내리는 내용은 없는지를 살핀다. 주제와 관련된 통계와 설문조사를 찾아보고 심지어 어떤 때는 논문도 찾는다. 인용할 만한 문구가 있는지 책을 읽으며 인상 깊은 문구를 기록해둔 독서 노트 몇 권을 꼼꼼히 뒤진다. 문구를 글에 사용할 때는, 출처를 제대로 밝히고 큰따옴표까지 붙여 인용임을 확실히 밝힌다. 그런데 이 모든 시간과 노력을 어떤 이는 클릭 몇 번으로 가져가 버리는 것이다.



글이 저절로 써졌을 리는 없다. 그 안에는 수많은 날숨과 들숨, 긴한숨이 들어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엔터와 백스페이스, 딜리트가 들어있다. 내가 읽었던 많은 책과 나의 사고가 뒤엉켜 사랑한 결과물이며 내가 만난 모든 이들과의 교감이 쌓아 올린 탑이다. 몇 푼의 광고 수익과는 맞바꿀 수 없어서 여기 저기 함부로 올리지 못한다. 그래서 더없이 소중하다.


그런 억울하고 답답한 일이 어디 글뿐이겠는가. 내가 이룬 과업을 손쉽게 자기 것으로 둔갑시킨 이도 있었다. 그로 인해 얼마만큼의 이익을 창출했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내가 입은 손해를 설명하라고 하면 그것도 힘들다. 그저 상실감, 배신감이 전부니까.


그래서 대놓고 따지지도 못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잃었다고 설명하는 일이 어렵기도 했거니와, 그래서 뭘 어떻게 해달라는 요구사항도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상대를 볼 때마다 착잡함과 쓸쓸함을 숨기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할 뿐이다.


세상에 함부로 가져가 원래부터 내 것이었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그렇게 살지 않으면 바보라고 놀림 받을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믿는다. AI가 써준 글이나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자신의 이름으로 게시하는 것이 창피한 줄 아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도 말이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대추 한 알을 입에 넣고 그 안에 들어간 태풍, 천둥, 벼락, 땡볕, 초승달을 음미하는 사람들, 작은 것 하나에도 그 안에 깃든 태산같은 노력과 수고를 알아보는 이들, 그 감사함까지 더해 자신만의 글을 쓰는 이들의 힘을 믿는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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