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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보다는 사과를

by 늘봄유정

⭕ 라라크루 < 별바라기의 목요일에 만난 자연 > 2025. 12.04.

< 라라크루에서는 목요일마다 별바라기 작가님이 발견한 자연을 글감 삼아 글 쓰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사과

2025년이 가기 전에 해야 할 사과나 받아야 할 사과는 없으신가요?


'아니, 도대체 어떻게 나한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내가 그렇게 만만한가? 아님 내가 그렇게 싫은가? 날 뭐 얼마나 안다고 그렇게 함부로 말하지? 아... 그 자리에서 섭섭한 티좀 낼걸.'


며칠 전 만났던 지인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아 며칠째 속앓이를 하고 있다. 정작 앞에서는 제대로 대꾸도 못해놓고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내 비디오를 돌려가며 보고 또 보고, 듣고 또 듣고, 속상해하고 또 속상해하고 있다. 다시 만난다 해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웃고 떠들 테고, 그런 내가 또 미워질 것이 짐작돼 다시금 속상해진다.


애초에, 상대의 잘못을 따져서 사과라도 받아내기 위한 되새김질이 아니었다. 대화의 어느 대목에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는지를 돌아보는 것이다. 상대의 말이 거슬리기 시작한 것이 단순히 그 말 때문인지, 과거의 어떤 일 때문은 아닌지, 이미 내 안에 상대에 대한 미움이 들어차있었던 것은 아닌지를 곱씹어보는 것이다. 모든 기억을 지워놓고 객관적으로 생각해 봐도 기분 나쁜 말인지를 고려해 본다. 사과를 받고 싶기보다는, 내 마음을 제대로 알고 싶어서 자꾸 생각하게 된다.


도돌이표 같은 질문과 뾰족할 리 없는 대답에 매몰된 나는 이내 너덜너덜해진다. 할 일이 없으니 쓸데없는 망상에나 빠졌다고 하기에는 꽤 바쁜 여러 날이었는데도 말이다. 집착을 끝내는 손쉬운 해법은, 자책이다. '상대는 그렇게 말할만했다, 상대의 충고와 조언을 건설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미성숙한 내가 문제다, 내 허물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상대를 향한 화살이 된 것이다, 본디 마음 그릇이 작디작은 사람이다'라고.


마음이 한없이 추락한다. 상대 때문이 아니다. 자책으로 생각을 끝내고 늘 이런 식으로 마음을 외면하는 나 자신 때문이다. 그러니 올해가 가기 전에, 아니 이 밤이 가기 전에 내게 사과를 해야겠다.


미안해. 너이면서 너를 이해하고 위로해 주고 사랑하지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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