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디베이트를 배우면 어떤 좋은 점이 있는지에 대해 알아봤어요.
1. 잘 읽을 수 있다.
2. 잘 쓸 수 있다.
3. 잘 들을 수 있다.
4. 잘 말할 수 있다.
5. 잘 생각할 수 있다.
6. 잘 선택할 수 있다.
마지막 일곱 번째는 디베이트를 통해 '나'뿐 아니라 '우리'를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된 다는 거예요.
역할이 나뉘어있기는 하지만 '내 할 일만 잘하면 된다.'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개인의 탁월함도 중요하지만 개인이 모여 만드는 집단 지성과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없이는 절대 훌륭한 디베이트를 보일 수 없습니다.
디베이트에서 그 팀이 잘 화합을 하는지, 팀원끼리 배려하는지 알아보는 순서는 뭘까요? 먼저 요약 후 이어지는 전원교차질의 시간입니다.
입안교차질의나 반박교차질의는 각 팀의 발언자가 앞으로 나와 둘이서 질의응답을 이어가지만 전원교차질의는 다르지요. 앉은자리에서 진행되며 각 팀의 전원이 상대팀에게 질문할 수 있고 상대팀의 누구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실력이 뛰어난 한 명이 주도적으로 질문하거나 임기응변에 능한 혼자만 답변을 하게 되면 전원교차질의를 통해 구현하려는 가치인 '협력'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디베이트에서 이기려면 어쩔 수 없이 잘하는 한 명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지 않나요?"
마음이 조급해지면 그럴 수 있어요. 교차질의 3분은 계속 흘러가는데 팀원들이 질문할 수 있도록 배려하느라 3분을 허비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디베이트는 개인의 역량을 보는 것이 아니라 팀의 역량을 보는 활동이라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그 얘기는 어느 한 명도 준비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입안자뿐 아닌 모든 팀원이 입안문을 작성하여 주제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예상 질문이나 예상 답변에 대해서도 사전에 논의, 공유해서 어느 누구든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가 질문을 할 때 입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팀원을 바라보는 '눈'이 먼저 나서야 합니다. 누가 답하는 것이 더 전략상 효과적인지를 함께 모의하는 찰나의 순간. 그 짧은 하모니가 심판과 청중의 눈에는 포착되지요.
팀워크를 볼 수 있는 또 다른 순서는 준비시간입니다. 각 팀은 디베이트 전 과정 동안 몇 분 동안의 준비시간(preparation time)을 사용할 수 있을까요?
"2분이요."
네~ 맞아요. 팀원끼리 관계가 좋고 서로를 배려한다면 자신이 맡은 순서 전에 시간이 필요할 때 다른 학생들에게 물어봅니다. '얘들아, 나 시간 좀 써도 될까? 얼마 쓸까? 30초는 적을 것 같은데, 1분 써도 되겠니? 좀 와서 도와줄래?' 그러면 팀원들은 자연스럽게 엉덩이를 떼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 학생 주변으로 몰려들지요. 자신의 자료를 보여주고, 발표에 도움 될 말들을 적어주기도 하며 파이팅을 외치기도 합니다.
매번 이런 이상적인 장면만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 1분 쓰겠습니다!"
"야! 왜 너만 많이 시간 쓰는데? 나도 이따가 써야 된다고!!!"
"아, 그럼 얼마 쓰면 되는데?"
"니 맘대로 해!"
그러고 나서는 각자 할 일 하기 바쁘지요. 이렇게 되면 각자의 순서에서도 구멍이 나와요. 앞에서 팀원이 한 말과는 다른 말을 하게 되기도 하고 전원교차질의 시간에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디베이트가 끝나고 이어지는 코치나 심판의 강평을 들으며 이들은 비로소 알게 됩니다. 그런 개인플레이가 디베이트를 평가하는 항목 중에 하나였음을 말이죠. 디베이트는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버벅거리거나 혼자 준비시간을 다 쓴 팀원 한 명 만의 잘못만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깨달음이 반복되면 이상적인 디베이트의 모습에 서서히 접근해 가게 됩니다. 함께 의논하고 배려해야만 모두가 돋보일 수 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팀끼리만 배려하고 협력한다고 디베이트가 잘 진행되는 것은 아니에요. 아까 말했죠? 우리 팀을 위해 모두가 입안문도 열심히 쓰고 주제에 대한 공부를 충분히 해야 한다고요? 이건 상대팀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에요. 양 팀 모두 디베이트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디베이트의 수준이 높아집니다.
"대회에서는 상대팀이 못하면 못할수록 좋은 거 아니에요?"
이기려면 그게 좋겠죠. 그런데 재미있게 이기려면 양 팀의 기량, 능력이 비슷해야 해요. 여러분이 다섯 살짜리 동생과 배드민턴을 친다고 상상해 보세요. 키나 힘, 실력에서 차이가 나는 다섯 살짜리 동생과의 배드민턴에서 랠리가 길게 이어질까요? 동생과 놀아준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재미있게 경기를 즐겼다고 말하기는 힘들겠죠? 디베이트도 마찬가지예요. 비슷한 기량의 두 팀이 만나 논리의 대결을 펼친 상태에서 상대의 허점을 파악해 제대로 공략할 때의 쾌감, 혹은 반대의 경우 느끼게 되는 당혹스러움. 그런 것들이 서로를 성장시키지요. 그러니, 개개인의 노력은 절대 혼자서 잘하기 위한 게 아니라 우리 팀과 더 나아가 상대팀을 위해서 하는 노력인 거예요. 두 팀의 디베이트를 지켜보는 심판과 청중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요.
삼총사라는 영화, 만화를 아나요? 잘 모르죠?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 에는 이런 구절이 나와요.
친구들이 하는 행동에 꼼짝 못 하고 투덜대면서도 포르토스는 자신의 손을 뻗었다. 그리고 네 명의 친구들은 달타냥이 시키는 대로 한 목소리로 따라 했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말처럼 디베이트를 잘 설명하는 단어가 없는 것 같아요.
디베이트 과정을 통해 '함께 돕는 삶'이 왜 중요한지를 경험한다면 디베이트 주제를 통해서는 '함께 잘 사는 삶'을 고민할 수 있어요. 우리가 다루는 디베이트 주제가 뭔지 들여다보면 알 수 있지요. 디베이트 주제에는 어떤 게 있나요? 여러분이 아는 주제를 모두 이야기해 주세요.
"부먹 찍먹이요~"
"민초 반민초요~"
"깻잎 논쟁이요~"
재미 삼아하는 주제들이기는 하지만 그런 주제들도 우습게 볼 것만은 아니에요. 음식의 기호에 관한 문제로 디베이트를 하다 보면 나와 식성이나 기호가 다른 사람들,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요. 깻잎 논쟁의 경우도 그래요. 주로 연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인데, 그런 문제로 디베이트 하다 보면 나의 어떤 행동이 상대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죠. 반대로 상대가 어떤 특정 행동을 했다고 해서 나의 잣대로 상대를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걸 깨닫게 되고요.
좀 더 어려운 주제를 떠올려볼까요?
"통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요!"
"동물실험을 금지해야 한다요!"
"노키즈존은 필요하다도 있어요."
"전쟁 문제도 있어요."
"환경오염이요. 일회용 플라스틱 같은..."
"동성결혼이요."
신문을 펼쳐보면 지구상에는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하는 걸 알 수 있죠. 해결해야 할 일들, 하지만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너무 많아요. 각자의 입장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지요. 상대방의 입장은 생각하려 하지도 않아요. 오직 내 이익과 내 행복만 중요한 세상이지요.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예민하고 민감한 문제들이라서 대화를 꺼리는 경우도 많아요. 친구가 말한 동성애, 성정체성 인정의 문제라든지, 종교갈등으로 인한 전쟁 문제라든지, 정치적인 견해 차이라든지. 싸움이 될 것 같은 주제는 아예 말을 꺼내지도 말자는 하지요.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대화해야 하고 그럴 때 디베이트가 유용하지요. 왜냐하면 디베이트는 자신의 생각, 소신대로 주장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 입장을 대변해 주는 것이니까요. 서로 상처를 주고받지도 않을뿐더러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요. 그러다 보면 완벽한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더라도 서로가 조금씩 양보해야 하는 이유는 알게 되지요. 우리 가족끼리, 우리 마을 사람들끼리,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조화롭게 살아가려면 어떤 부분을 이해하고 어떤 부분을 양보해야 하는지 말이에요. 함께 잘 살아가는 데 있어 어떤 가치를 우선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바로 디베이트 시간입니다.
* 송코치 단상
어느 초등학교에서 6학년을 상대로 < 청소년 범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라는 주제로 디베이트를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수업을 얼마 앞둔 어느 날 담당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지요. 교장 선생님께서 주제에 대해 우려를 표하신다며 바꿀 수 없냐는 것이었습니다.
청소년 범죄에 대해 디베이트를 하려면 범죄의 종류나 요즘 빈번한 사건 사고에 대해서 이야기 안 할 수 없을 텐데 그러다 보면 성적이고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에 아이들이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였습니다. 이해 못 가는 바는 아니었지요. 학교라는 공간이라 더욱 조심스러우셨을 겁니다.
'이런 주제를 아이들이 접하게 하는 게 진짜 잘못일까. 오히려 해봐야 뭐가 문제인지 아는 것 아닐까. 내가 뭘 잘못 생각하고 있나.'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필요한 주제다!'였습니다.
디베이트 주제보다 중요한 것은 주제가 던지는 메시지입니다. 주제가 갖는 무거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위험한 주제는 없습니다. < 청소년 범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는 주제로 디베이트를 할 때, 청소년 범죄가 얼마나 자극적이고 폭력적인지, 청소년 범죄자들에게 어떤 처벌을 어떻게 내려야 하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 메시지를 저는 디베이트 수업이 모두 끝나고 마무리하며 전합니다.
"청소년 범죄 처벌의 문제는 남의 나라 이야기도 아니고 먼 미래의 이야기도 아니에요. 오늘을 사는 바로 여러분의 문제지요. 촉법소년들은 처벌이 약하고 기록에도 남지 않는다며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도둑질을 하고 운전을 하고 사람을 때리고 심지어 살인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있어요. 기록에는 남지 않지만 자신의 기억에는, 자신의 역사에는 자신의 과거가 고스란히 남는다는 것을요. 훗날 아들, 딸들에게 떳떳하게 말하지 못할 나의 과거를 만들 것인가 아닌가는 순전히 여러분의 몫입니다.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고 당당히 책임질 수 있는 삶을 사는 개인, 그건 결코 혼자만을 위한 삶이 아닙니다. 모두를 위한 삶입니다. 그렇게 전체 사회가 점점 안전해지면 개인의 삶도 점점 편안해지겠죠."
이 한마디를 남기기 위해 하는 주제입니다. 주제가 주는 메시지를 가능한 한 많은 학생들이 고민해보게 하는 일이 제 일입니다. 모든 디베이트 주제는, 함께 잘 사는 삶의 태도를 배우는 주제입니다.
때로는 주제를 당당히 마주하지 못하고 잠시 접어두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2022년 10월 초 5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선보였을 때 학생들의 반응이 퍽 좋았던 주제가 있습니다. 조용히 있던 아이들도 자신들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느라 소란스러울 정도였죠. 주어진 근거자료에 자신의 경험까지 이야기하며 열띤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10월 말, 총 세 곳의 학교에서 이 주제를 선보이기로 했습니다. 학교 측과 학생들에게 예고도 해둔 상태였죠. 자료조사까지 마친 반도 있었습니다. 학생들에게 나눠줄 읽기 자료 수백 장을 출력해 둔 상태였습니다.
< 우리나라에서 핼러윈 데이를 챙기는 것은 바람직하다 >
배경 설명
매년 이맘때만 되면 핼러윈에 대한 찬반이 뜨겁습니다. 파티문화가 별로 없는 한국에서 일상을 탈출해 해방감을 느끼는 기회가 된다며 반가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요. 반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외국 명절과 문화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많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수업 전날, 악몽 같은 소식에 참담해졌습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지요. 하지만 일해야 했습니다. 아니, 생각해야 했습니다. 다음날 수업에서 이 주제를 다루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핼러윈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수나 있을까, 아무렇지 않게 토론할 수 있을까. 준비해 둔 PPT와 읽기 자료를 다 갈아엎고 새로운 주제를 준비해야 하는데 가능한가.
결국 저는 이 주제를 버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선생님들이나 학부모들의 눈치가 보여서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마음이 시켰기 때문입니다. 재난, 재앙 앞에서 하는 제대로 된 저의 처신이 두 시간의 수업보다 더 큰 가르침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수업에 들어가 아이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지난 토요일에 있던 참사로 인해 이 주제로 토론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핼러윈 데이뿐 아니라 각종 축제, 행사가 갖는 의미와 바람직한 모습, 우리나라의 명절과 축제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주제였습니다만 많은 이들이 유명을 달리한 이 상황에서 이 주제로 토론하는 것은 고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몇 가지 당부의 말씀만 드리고자 합니다. 이번 인명사고가 핼러윈 데이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 주세요. 어떤 축제나 행사든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이며 그저 불행한 일일 뿐입니다. 따라서 토론을 했더라도 반대 측의 주장과 근거로 쓰일 수 없습니다. 핼러윈 축제를 즐기러 간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도 온당치 않습니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교재 맨 앞쪽에 보면 이 수업은 '교육지원청 민주학교 협업사업 디베이트 캠프'입니다.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여러분에게 필요한 역량을 디베이트로 배워보자는 것이죠. 민주시민이란, 모두가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서로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공감하기 위해 토론하는 것이죠. 그 점을 꼭 기억해 주기 바랍니다."
* 마무리 발언
어쩌면 디베이트는 < 함께 잘 살기 위함 >이라는 이 마지막 이유를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학교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말 잘하는 프로 싸움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조금씩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존재하는 것이지요. 디베이트를 통해 저의 삶이 조금씩 변화했듯이 여러분의, 우리들의 삶이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기를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