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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Mar 28. 2024

필라테스 수업에서 딴짓하기

지난 1월부터 주 3회 이상 다니고 있는 필라테스센터에는 여러 선생님이 계신다. 요일이나 시간에 따라 다른데 지금까지 세 분의 선생님을 만나봤다. 모두 필라테스 전문 강사로 뛰어난 실력을 갖추었지만, 수업 스타일은 제각각이다. 


A 선생님은 유치원 선생님처럼 상냥하다. 

수업 시작할 때마다 기구의 명칭, 사용법부터 차근차근 설명한다. "아주 잘하셨어요~", "바로 그거예요.", "좋아요~"를 연발하며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B 선생님은 페이스 메이커 같다.

조금씩 난도를 올려가며 수강생들을 부추긴다. 옆에 서서 "할 수 있어요.", "조금만 더 버틸게요."라고 말할 때면 도저히 힘을 놓아버릴 수가 없다. 


C 선생님은 사감 선생님이다.

제대로 해내지 않는 수강생에게는 어김없는 일침이 가해진다. 웃음기 없이 싸늘한 말투로 "지금 뭐 하시는 거셔?", "자세가 왜 흐트러지셔!", "뭐지? 왜 멈추지?"라고 말하지만 듣는 이의 기분이 나빠지지 않는, 묘한 매력의 소유자다. 


수업을 들으며 운동에만 집중해야 하지만, 강사라는 직업을 가진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많은 걸 배운다. 거울 치료가 되어 '학생들에게 너무 쌀쌀맞게 말하지 말아야지, 무리하게 강요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할 때도 있다. 게다가, 함께 운동하는 남편이 "큰일났네. 저 선생님 조만간 짤리겠어. 나만 편애한다고 컴플레인 많이 받겠는데?"라고 말할 때면 조심해야 할 행동이 하나 추가 된다. 남자 수강생 편애 금지!


하지만 대부분은 좋은 본보기로 챙겨두게 된다. 각기 다른 개성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그들에게는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정확한 딕션. 

여섯 명의 수강생이 일사불란하게 같은 동작을 수행해야 하므로 두 번 세 번 말하지 않는다. 정확한 발음으로 명확한 설명을 한다. 강사들에게는 꼭 필요한 능력이다. 


둘째, 수강생 이름 외우기.

단 한 번을 만났는데도 다음에 가면 내 이름을 불러준다. 영업을 위한 내적 친밀도 높이기 전략이라고 하더라도, 가히 칭솔할 만한 능력이다. 이름 외우기에 취약한 나는 반드시 배우고 익혀야 할 능력이다.

 

셋째, 밀도 있는 수업.

50분에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시간을 단단하게 채운 수업을 한다. 도입, 전개, 마무리가 잘 짜인 수업이 끝나고 나면 흐른 땀 이상의 만족감이 생긴다. 


넷째, 수준별 수업.

수강생 여섯 명의 신체 능력은 제각각이다. 심화 동작까지 모두 가기에는 무리인 경우도 많다. 1:1 맞춤 수업이 아니라 6:1 수업일지라도 선생님들은 개별 수강생의 능력을 파악해 그에 맞는 강도를 조절한다. 


다섯째, 매번 다른 수업

총 마흔한 번의 강습을 받는 동안, 같은 내용의 수업이 한 번도 없었다. 지루할 틈이 없고 늘 기대가 된다.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내 목소리가 또박또박 잘 들릴까?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 속상하지는 않을까? 뭔가 배운 게 많다는 느낌을 받을까? 너무 어려워하지 않나? 너무 쉬워하지는 않나? 늘 반복되어서 지루해하지는 않을까?'

필라테스 강습을 들으면서 온통 내 수업 생각만 하는 나는, 훌륭한 학생이 못 된다. 안드로메다로 간 내 동공과 풀려버린 몸을 놓치지 않는 선생님의 날카로운 한마디가 날아온다. 

"유정님. 지금 뭐 하셔!! 딴생각하셔? 필라테스하다 말고 뭐 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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