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주일 동안 비가 안 온다. 잔디들은 누렇게 변해가고 있고, 초조한 이웃들은 해가 지면 마당에 나와 물을 뿌려 주기도 한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원의 야생화들은 서로 다투며 꽃을 피우려고 소리 없이 수선을 떨고 있다.
나는 가뭄 걱정보다는 비라도 오는 날이면 ‘하는 일없이 공으로 비를 받는 것’이 좋다. 이렇게 게으르고 흙 만지는 일에 취미가 없었던 나에게 아내의 친구가 “이거 한번 심어 보세요”하며 3년 전에 야생화 몇 모종을 주었다. 하지만, 정원 가꾸기가 그리 쉬운 게 아니어서, “어떤 꽃을 어디다 심을까?” 오랫동안 생각하고 심어도 식물들이 크고 나면 처음에 구상했던 그림처럼 잘 안되기 십상이다.
하물며 그렇게 주는 대로 빈자리에 꾸역꾸역 두서없이 심다 보니 여러 야생화가 뒤엉키고 부산해지고 말았다. 그나마 신기한 것은 자고 나면 싹이 나오고, 잎과 줄기가 올라오고 꽃봉오리가 생겼다 싶었는데, 꽃이 피고 서로 알아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내가 꽃 가꾸는 일을 재미있어하는 것 같으니까, 그다음 해에도 몇 번 모종을 뿌리 채 캐어 주었다. 야생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는 좋은 종자가 있으면 서로 나누고 지식을 공유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 뒤, 다른 집에서도 꽃씨와 모종을 주었는데, 이제는 심을 곳이 없어 화분에다 꽃을 키웠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자 야생화들이 나름대로 제각기 존재를 나타내고 서로 색깔과 향기를 뽐내며 벌과 나비를 유혹한다. 이렇게 교태를 부려 꽃가루를 내보내, 자신의 ‘후손’을 퍼트리려는 속내이지 싶다. 차츰, 정원의 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이웃집 꽃에도 자연스레 눈길이 가게 된다. 흔히 ‘옆집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인다(The grass is greener on the other side)’는 말이 있듯이, 남의 정원은 ‘왜 이렇게 예쁜지’ 질투가 날 정도다.
길 건너 앞집에는 원추리 무리가 한창이다. 무엇인가를 기다리듯이 몸을 앞으로 구부린 채 서 있다. 원추리의 초대를 받아들인 벌들이 꽃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원추리는 백합과에 속해서 암술과 수술을 동시에 가지고 있지만, 자기 몸의 꽃가루를 다른 꽃에 주고 싶어 한다. 암술과 수술의 높낮이가 서로 다르고 교배 시기가 달라 ‘암수한몸’ 이지만 자가 수정은 원치 않는다. 사람들이 근친상간(近親相姦), 가족 사이에 성관계를 갖는 것을 멀리하듯 식물도 근친혼(inbreeding)을 피함으로써 종자의 열등화를 막는다고 한다. 그래서 벌들이 가냘픈 수술 다발을 떠밀고 나오면서 꽃가루를 흠뻑 뒤집어쓰고 나가길 원한다. 벌들은 이 꽃가루를 다른 원추리 속에 들어갈 때 수술 위에 털어놓아 수정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요놈들이 생물학에서 말하는 타화수분(他花受粉)이라는 걸 실천하는 거다.
다년생인 원추리는 넘나물이라고도 하는데, 높이는 약 1m까지 자라고 꽃은 7~8월에 핀다. 빛깔은 주황색과 붉은색, 노란색이 있다. 원추리의 중국 이름은 훤초(萱草)로 ‘근심을 잊게 하는 풀이다’라는 뜻이란다. 수필가 손광성은 “원추리는 한자어 ‘훤초’에서 발음하기 어려운 ‘ㅎ’이 변형되어 ‘원추’가 되었고, 나중에 ‘리’가 붙었다고 풀이한다.
원추리는 여인과 관계가 있다. 어머니가 거쳐하는 내당 뒤뜰에 주로 심는 꽃이다. 그래서 남의 어머니를 높여 부를 때 훤당(萱堂)이라 하는 것도 원추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율곡의 어머니로 유명한 신사임당은 ‘조선의 어머니’를 대표한다. 남성 위주의 조선시대에 일곱 명의 자식을 두고 살면서 그림과 글을 짓고 살았으니 그녀의 삶이 녹록하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녀는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학문과 그림을 익혔다. 그의 산수화는 ‘몽유도원도’를 그린 안견의 그림을 보고 배웠다고 한다.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이었으니 그림을 구해 본으로 삼았다.
결혼 후, 대가족을 꾸리며 그림을 그리며 산다는 것은 고민과 번뇌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역경을 이겨낸 그녀는 조선시대 화가의 대열에 당당히 오른다. 특히 초충도(草忠圖)는 당대에 따를 자가 없었다. 율곡의 스승이기도 한 어숙권은 “신사임당은 포도 그림과 산수화가 뛰어나며, 특히 산수화는 안견에 버금갈 정도다”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전해지는 신사임당의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그 가운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인 8폭 병풍의 초충도는 그녀의 대표작이다.
4년 전에 고국에 갔을 때, 이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 꽃과 채소, 나비, 매미 등의 벌레를 정물 묘사하듯 생동감 있게 그린 것을 보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특히 원추리를 그린 ‘원추리와 개구리’는 여성 특유의 세밀함과 서정성까지 담긴 작품이다. 세 송이의 붉은 원추리꽃 주변으로 여름에 볼 수 있는 벌레와 곤충들을 모두 초대했다. 개구리는 주위를 경계하며 튀어 갈갈 듯한 자세이고 원추리 줄기에 붙어 있는 매미는 구성지게 노래하는 듯하다. 오른쪽에는 달팽이가 힘들게 기어 온 모습으로 숨을 고르고 있고, 왼쪽 하늘에선 붉은 나비가 벌과 함께 춤추고 있다. 오른쪽에는 흰나비가 이제 막 꽃 속으로 들어가 꽃가루를 묻히고 나올 것 같다. 찢어진 잎사귀와 꽃잎도 시들시들한 그대로다. 원추리 꽃은 하루를 넘기지 못하는 일일화여서 실제로 원추리를 자세히 보면 성한 꽃보다는 시든 꽃을 많이 보게 된다.
당시 남존여비 시대에 신사임당은 율곡 같은 훌륭한 학자의 어머니라는 시선 속에 숨겨진 편견 같은 것이 따라다녔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주로 그렸던 ‘초충도’를 당당하게 조선시대 회화의 한 장르로 올려놓은 것은 여러 의미를 갖는다. 오래전부터 신사임당은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만 원권 지폐에서 그의 모습과 그가 그린 그림들이 사용되고 있고, 여성이 지폐 도안에 들어간 것도 처음 있는 일이라 더욱 뜻깊다.
조선 초기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1435~1493)의 원추리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천재 시인으로 5세 때 이미 <중용>과 <대학>을 익혔다고 해서 세종이 친히 그를 불러 시를 짓게 했을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총명했다.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했다는 소식을 듣고 보던 책을 모두 불사른 뒤 방랑 생활을 한다. 양녕대군이 그의 재주가 아까워 세조에게 천거했으나, 벼슬자리를 모두 거부했다. 전국을 유랑을 하며 많은 시를 남겼는데, 그중에 훤화(萱花/원추리)라는 시가 있다.
원추리가 피는 시기는 낮이 가장 긴 한 여름이고, 아무리 하루밖에 피지 못하지만 그 시간은 길다면 길다. 고니 부리를 닮은 원추리 꽃은 사람을 향해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하다. 김시습은 보잘것없는 ‘원추리’를 보고도 세상을 읽었다. “여보게, 무슨 근심 걱정이 그리 많나, 세상 걱정하지 말고 쉬엄쉬엄 살게나”라고 말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