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현장에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ri Taeeun Kim Nov 05. 2023

사라지는 여성공간 서울여담재

서울여담재는 여성역사공간으로 지켜져야할 당위성이 있습니다


작성자 : 김태은 작가(전 기자,


‘3·1 민족성지 태화관은 어떻게 여대가 됐나; 여성공간의 상징 태화여자관 101주년’ 등 저술)


 


1. 여담재가 위치한 여성사적 공간의 의미


조선 6대 임금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의 설화가 얽힌 자주동샘(자지동천)과 거북바위가 있는 자리입니다. 단종 유배 후 궁에서 나온 정순왕후는 생계를 위해 자주동샘에서 옷감을 염색해 팔았고, 그를 돕기 위해 인근 여인들이 여인 시장을 꾸렸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여성의 경제활동을 기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입니다. 샘 바로 위에는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는데 정순왕후가 단종이 거북을 타고 승천하는 꿈을 꾸고 이곳에 왔더니 바위가 있더라는 설화가 전합니다. 인근에는 정순왕후가 노후를 보낸 정원업터와 영조가 이를 확인하고 친필로 쓴 비석도 남아있습니다.


 


여성의 역사는 지속적으로 지워지고 있습니다. 찾아보면 여성을 기념하는 다른 공간도 많을 것이라는 추측성 발언은 무지에 의한 거짓말입니다.


 


이미 ‘여인시장터’ 표지석이 역사성 논란으로 철거됐고, 인근 정순왕후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동쪽 영월에 유배된 단종의 안위를 빌었던 동망봉은 일제강점기에 채석장이 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서울시는 재건축사업을 진행하며 타 장소에 있던 ‘비우당’을 자지동천 앞에 옮겨 복원하면서, 그나마 오래전 새겨진 ‘바위글씨’조차 잘 보이지 않도록 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2. 서울시의원들에 의해 여성공간으로 규정


2021년 4월2일 김경영, 권수정, 김경우, 김제리, 김화숙, 박기재, 이광호, 이영실, 이정인, 조상호 등 서울시의원 10명이 서울여담재를 여성관련시설로 규정하는 개정조례안을 발의했고, 같은해 5월4일 보건복지위원회는 상정된 원안을 가결합니다. 이렇게 ‘시립여성관련시설’로 명시된 조례가 존재하는데 이를 또 뒤엎으려는 것은 혈세낭비의 대표적 사례가 될 것입니다.


 

3. 종로구, 정읍시, 영월군, 남양주시 등 기타 지자체와 ‘자매도시’ 연결고리


정순왕후 송씨는 조선시대 전북 출신의 유일한 왕비로 그의 고향인 정읍시에서는 정순왕후 태생지를 관광자원화해 보존하고 있으며, 그가 잠든 남양주 ‘사릉’에서는 매년 3월 기신제를 지내 그를 기리고 있습니다. 2015년 정읍시와 남양주시는 이를 근거로 자매결연을 맺었습니다.


 


단종이 유배됐던 영월에서는 그의 무덤인 ‘장릉’에서 1967년부터 단종제를 시작했습니다. 1990년 단종문화제로 명칭을 바꾸고 1998년부터는 정순왕후선발대회도 열고 있습니다. 참가자격은 영월군, 남양주시, 정읍시 3개지역 거주자입니다. 종로구청은 2008년부터 ‘단종비 정순왕후 문화제’를 개최하고 있고, 선발대회 우승자가 참가하는 것이 관례가 됐습니다. 영월군과 종로구는 2003년 자매도시를 맺고 꾸준한 교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애절한 서사를 품은 역사적 인물로 인해 현대까지 각 지방이 인연을 맺게 된 경우라 하겠습니다.


 


 


4. 서울여담재는 어떤 공간인가


종로구 창신3동 ‘여성역사공유공간 서울여담재’는 서울시가 성평등도시를 구현하고자 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2020년 11월에 설립한 공간입니다. 전국 최초 ‘여성사’ 전문 도서관입니다.


 


‘서울여성역사샘터’라는 가칭과 명칭공모를 통해 ‘서울여성역사숨쉬고’ 등의 이름으로 준비돼왔고, “우리 사회의 일상적 성차별 문제를 제대로 된 여성사 연구를 통해 타파하자는 취지에서 추진하게 됐다”는 것이 시 관계자의 말입니다. 이것은 여성사의 핵심을 파악한 발언으로, 여성사에 대한 충분한 준비와 이해 끝에 결정된 사안임을 반영합니다.


 


5. 버려졌던 장소가 20여년의 과정 끝에 겨우 여성역사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2003년 버려진 구 원각사 부지는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후 커다란 옹벽이 생겨 접근이 용이치 않다가 2012년 서울시에서 약 40억원에 부지와 건물을 매입했지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수년간 버려졌고, 여전히 서울시교육청 소유지 일부는 원각사가 불법 점유하고 있습니다.


 


원래 종로구 구립어린이도서관으로 계획됐으나 협의 과정에서 계획이 틀어졌습니다.


 


이 과정을 취재해봤더니 바로 옆에 있는 명신초등학교도 운영을 거부할 정도로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어, 결국 아동공간으로 쓰기에는 적합지 않다는 것이 증명됐습니다. 근데 서울시는 아동전공 관련 인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건물의 용도를 변경하려합니다. 높은 위치와 계단 이용 등의 문제가 아동들만이 이용하기에는 적합지 않습니다.


 

 


6. 여담재의 건축학적 가치와 건축가의 노력


여담재를 설계한 건축가 천장환 경희대 교수는 설계당선만으로 끝낼 수 있었지만, 이 공간을 지켜내기 위해 4년이 넘는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직접 위원장이 돼 지역 주민들과 함께 운영방법을 모색해 온 것은 물론, 서울시에서 여성사도서관 기획안이 가결됐을 때 거북바위 모양을 딴 책장 등 내부를 무료설계하는 등의 공을 들였습니다. 결국 2021년 서울시 건축상을 탈 수 있었고, 이 장소를 상징하는 역사적 사실들과 얽혀 굉장한 미적, 건축학적, 공간적 의미가 큰 신구동서조화의 작품이 됐습니다.


 

 


7. 해외에서 먼저 알아본 여담재의 여성사적 가치


역사적으로 풍부한 스토리를 품고있는 장소에 지어진, 한옥과 현대적 건물이 조화된 건축학적으로도 실험적이면서 아름다운 건축물이 ‘미래유산’으로서의 큰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8월 여담재의 소문만 듣고도 어느 일본여성사학자가 예고없이 이 곳을 찾아와 놀라움을 안겼습니다. 그가 가장 감탄한 것은 이곳에 배어있는 정순왕후의 스토리였고, 그의 방문기를 본 호주의 유명 일본여성사학자 베라 매키가 찾아오겠다고 했는데, 문을 닫게 됐습니다. 한류바람을 타고 국제적인 사적지가 될 수 있는 곳을 용도변경으로 훼손시켜서는 안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네 사람들은 여담재를 ‘그들만의 놀이터’라 불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