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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 Taeeun Kim Dec 10. 2023

개와 나와 죽음

두서없는 글과 갈피없는 슬픔

해피가 죽었다.     


“해피 눈 속에 언니가 있네”

해피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내가 곧잘 하던 말이었다.      

해피의 머루 같기도 하고, 구슬 같기도 하고, 별 같기도 한 완벽히 까맣고 완벽히 구체였던 안구에는 더 이상 내 얼굴이 비치지 않았다.      

하나의 우주가 꺼졌지만, 나는 오래도록 슬퍼하지 않도록 자신을 구슬렸다. 탄생이 있고,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듯이, 만 15살을 꽉 채워가는 개에게서 죽음을 예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전에도 개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해피는 완벽히 나만의 개였다. 가족, 이라고 말하기 힘든 이들에게서 불가항력적으로 떨어진 이후, 나는 개와만 둘이 아주 오래 살았다. 개에게는 개의 일생이 있고, 나는 또 사람으로서 살아야 할 일이 있기에 담담히 보내주려고 마음먹었다. 뜨거운 울음이 불쑥 솟아오르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글쓰기로 해피를 추모한다.  

    

*     


나의 죽음에 대해서도 오래전부터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 최대한 단출하게 살고,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고,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폐경(완경)이행기가 오면서 그 결심은 더욱 굳어졌다. 호르몬의 변화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평생 통증을 안고 사는 ‘보이지 않는 장애’가 그런 결정을 내리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돈도 많이 모으지 못했고, 결혼도 하지 않았고, 자손도 두지 않았다. 나는 노화가 가져오는 모든 증상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고 결정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죽음이라면 순순히 응하겠다고.      

나의 개에게도 호들갑스러운 죽음을 맞게 해주고 싶지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 반려견에게 애정을 퍼붓는 시대에 내 결심이 방치나 학대에 준하는 것이 아니냐고 한다면, 개는 개일 뿐이고 그에 준하는 ‘견생’의 수명만큼 다 누리고 갔다고.      

보통 백내장의 기미가 찾아오는 푸들종이었지만, 해피의 까만 눈동자는 그 빛이 다소 흐릿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검게 빛났다. 이빨도 하나도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죽음의 징조는 한 걸음씩 찾아오고 있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그 걸음의 속도는 점차 빨라졌고, 개의 수명에 비례해 급속도로 진행됐다.      

움직임이 느려졌고 반응도 더뎌졌다. 잠이 점점 더 많아졌다. 먹고 배변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잠만 자는 것 같았다. 촉촉했던 코도 마르고 갈라졌다. 점차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됐다. 어느 날 밤에는 화장실에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오줌을 싸고 그 위에서 미끄러져 사지를 뻗고 우는 소리에 깼다. 치워주고 씻겨주고 재웠다. 원체 혼자 자는 것을 좋아하는 녀석이라, 기저귀를 채우고 내 옆에 뉘어놨지만 깨어보니 거실의 좌식소파에 걸쳐 자고 있기도 했다.   

        

*     


인간도 동물의 하나이고, 습관들이기 나름이라는 것을 개를 보고 배웠다. 지금도 외출했다가 돌아와서 무심코 “해피야, 언니왔다”고 하다가 해피가 없는 것을 깨닫는다. 밤늦은 시간이 되면 “해피야, 코 자러 가자”고 했다가 혼자 침실에 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늦은 시간까지 글을 쓰거나 TV를 보거나 하고 있으면, 해피는 침대로 가자고 내 옆에 찾아와 발을 굴렀다. 내가 그 사인을 무시하면 자정 전에는 혼자 베드벤치 밑 자기 자리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가 잠이 들곤 했다. 태생이 오리잡이였던 개라 오리털이 좋는지도 모른다. 오리털로 채워진, 본래는 내 베개였다가, 자신의 오줌을 배게해, 자신의 것으로 만든 그 유럽산 베개속통에서 말이다. 내가 남자를 만나고 늦게 들어온 어느 날의 복수였다. 영리한 푸들은 그런 식으로 보복성 행동을 했다.           

*     


나는 결코 좋은 견주가 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내가 부모가 되지 않기로 선택한 이유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다지 많은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자란 나는 개에게 자신을 ‘엄마, 아빠’라고 호명하고, 개를 아기처럼 섬세히 다루는 것을 잘 따라 하지 못했다. 그래서 부모집에 있을 때처럼 개에게 나를 ‘언니, 누나’라고 지칭했다.                

*     


죽음은 아주 홀연히 찾아왔다.

침대 위로 자신을 올려달라 낑낑대는 해피를 끌어올리는데 갑자기 코피가 터졌다. 시트에 점점이 찍힌 피를 그대로 둔 채 같이 잠들었다. 그  한 번 뿐이기에 나는 그 징조를 무시하기로 했다. 이미 먹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마지막 1년간은 건식사료를 거부해, 습식사료를 주다가 그마저도 먹지 않자 캔사료를 먹이고 있었다. 육포를 좋아하는 육식주의자였고, 채소는 싫어했다. 고소한 냄새가 나는 비스킷과 블루베리향이 나는 덴탈검을 좋아했다. 어려서는 식탐이 대단해서 내가 햇반을 데워놓고 잠시 자리를 비울라치면 의자를 밟고 식탁 위에 올라 한그릇을 뚝딱 해치우는 녀석이었다. 점점 털이 빠지고 살도 빠지더니 끝내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는 날이 왔다.      

네 다리로 서지 못하는 것 같더니, 내가 보지 않을 때 정신이 나면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 오줌과 변을 흘렸다. 나는 하루종일 그 흔적을 따라다니며 치우고 여전히 몸무게가 꽤 나가는 녀석을 안고 욕실로 가 씻기느라 오른팔의 근육통이 심해졌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조언을 얻어 녀석이 화장실로 즐겨 쓰는 세탁실 앞을 박스로 막고 그 공간에 이불로 싼 해피를 넣어놨다. 물도 먹지 않자 주사기로 매실액을 탄 물을 흘려넣어줬지만 그 조차도 그냥 흘러내렸다. 이불에 똥오줌을 싸면 그냥 이불을 빨아 건조기에 말려 준 것도 며칠 되지 않았다.      

녀석이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을 알기에 마음을 졸였는데, 마지막 날 밤은 요란한 비명을 질렀다. 약을 먹고 자는 나도 새벽2시에 한 번, 새벽4시에 한 번, 그렇게 깼다. 쓰다듬어 달래다가 궁여지책으로 대마오일 몇방울을 이빨 사이로 떨어뜨려줬다. 그리고 나도 잠이 들었다.      

깨어났을 때 해피는 죽어있었다. 안아올리자 온 몸에서 힘이 다 빠진 채 축 늘어졌다. 고통스러웠을까, 이를 악물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나왔다. 해피의 이름을 부르며 마구 소리를 질렀다. 울고 또 울고 꺽꺽대도 해피는 다시 깨어나지 않았다. 죽음이 무언지 알면서도 한동안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도와줄 사람도, 대신해줄 사람도 없이 모든 것을 나 혼자 실행해야했다. 다니던 동물병원에 전화해 반려동물 화장터를 추천받아 예약했다. “진료중이니 장례업체에서 직접 전화가 가도록하겠습니다”라는 수의사의 건조한 목소리에, 개가 죽도록 병원 한 번 오지 않느냐는 뉘앙스가 비추는 것 같아 괜스레 마음이 찔려왔다. 그냥 내가 맞고 싶은 죽음대로, 나의 소신대로 나의 개에게 했을 뿐이다. 어차피 마취도 힘든 노견인데, 이런저런 검사로 개에게 별 의미도 없는 고통을 연장시키고 싶지 않았다.      

     

*     


해피는 나와 같은 2월생이었다. 아무 사료나 잘 먹는 해피였기에 캔사료는 생일날에만 먹는 특식이었다. 고체형 사료에 생일초를 꽂아 나혼자 생일노래를 불러줬다. 마지막 계절에는 그 캔사료를 하루에 반 캔 내지 한 캔을 다 주었다.      

내가 직장에 다닐 때는 하루종일 혼자 집을 지켜야했다. 퇴근해 피곤한 몸으로 어린 해피를 안고 자면 밤새 이불에 오줌을 싸놓았고, 아침에 일어난 나는 이불을 세탁기에 넣고 만성질환으로 아픈 몸을 추슬러 겨우 출근하곤 했다. 정기적 수입이 사라지며 나는 여기저기 이사를 많이 다녔고, 그때마다 해피가 옆에 있어서 낯선 집에서도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잠들 수 있었다. 혼자 외부인을 맞을 때면 미디엄 사이즈의 새까만 해피가 든든한 가디언이 돼줬다.      


*     


나는 개에게 아무것도 잘해주지 못했다. 그저 개에게 개의 본분에 충실하기만을 바랐다. 먹기도 많이 먹던 해피는 기대와 달리 너무 크기가 커졌다. 집안에 무슨 사슴을 키우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힘도 무지 셌다. 본래 힘못쓰는 나는 감당하지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었다. 새끼였을 때는 혼자 집에 갇혀있기 싫다고 엉엉 울며 문 앞에서 도망가기도 했다. 점점 더 나와 사는 것이 익숙해졌다.      

서로 요구가 맞지 않아 물리기도 많이 물렸다. 응급실에 가서 처치를 받고 매번 항생제를 먹어야 했다. 대신 해피는 큰 탈 없이 잘 자랐다. 어느 해인가 중성화수술과 유선종양수술을 해서 젖꼭지가 없는 개가 됐다. 잠시 호텔링을 했을 때 신부전증과 기관지협착증을 얻었지만, 집으로 데려오자 곧 회복됐다. 해피가 병에 걸린 것은 난생처음 주인과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를 살게 하는 것은 주인과의 유대였다.

요즘 기준으로 치면 나는 개를 키울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개는 개였다. 언제나 사람 곁에서 사람을 지켰다. 그것이 우정이든, 사랑이든, 습성이든, 돈이 없고 아프고 홀로 나이들어가는 나에게 해피는 유일한 동반자였다.      

해피를 안고 사람과 개 사이의 수만 년의 우정을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생명 자체가 신비한 일이지만, 야생의 늑대가 인간에게 다가와 함께 살며 가축이 됐다는 것도 불가해한 일이다. 개가 인간에게 다가와 따뜻한 우리와 꾸준한 먹이를 바랐다면, 나는 그에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검은 빌로도처럼 보드랍고 따뜻한 것을 쓰다듬으며 그 수만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인간과 개가 이런 정을 나눠왔을지는 가늠해 보곤 했다.     

불가지론자인 나는 내가 경험하지 않은 아무것도 믿지 않아왔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안온한 감정을 개가 함께 나누고 있음은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완전히 동일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내가 개의 주인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지만, 이 작은 생명체는 자신이 나를 지배하고 보호하고 있다고 여길지도 몰랐다.      

어쨌든 나는 인간에 의해 개조된 이 작은 포유동물에게 무한한 애정과 함께 책임감을 느꼈다. 왜냐면 개는 본래 이런 크기와 이런 생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토이, 즉 장난감 개념의 애완견으로 개량돼 분명 야생에서는 혼자 생존하기 힘든, 소형으로 만들어 번식시킨 인간 욕망의 결정체였기 때문이다. 우스꽝스럽게 더 짧은 다리, 더 귀엽게 짧은 머즐을 가지도록 더 작고, 작게 인공적으로 꾸준히 개조되온 난쟁이로 다수가 수많은 질병을 안고 태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은 농장, 경매, 숍, 병원에 이르기까지 이제 거대한 사업의 대상이 돼, 규제없는 한국에서는 더욱 사회문제화되고 있다. 버려지는 개들과 생명 경시의 문제까지.           


*     


또 개를 키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안 키우겠다는 장담은 못하겠다. 나는 해피와 닮은 푸들인형을 온라인으로 계속 검색해보다가, 무료분양 사이트를 거쳐 결국 펫숍으로 흘러 들어가 있었다. 상실을 또 다른 개가 덮어줄 수 있을까.     

위에서 밝혔듯이 불가지론자인 나는 영혼 같은 것은 믿지 않는다. 그렇기에 개의 영혼이 자신에게 찾아왔다는 둥의 스토리는 모두 인간의 뇌가 만들어 낸 착시라고 생각하고있다. 해피의 숨이 빠져나가고 남은 육신은 그저 기계장치가 예상수명을 다하고 멈춘 듯, 스위치가 딱 내려진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온기가 있던 생명의 부재가 가전제품 하나 고장 난 것 같은 정도의 상실감으로 그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를 단단히 부여잡고 있던 무언가가 부서져 내리지 않기를 나는 단도리를 하고 또 하고 있다. 주변에서 자꾸 무생물들까지 무너지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집안을 점령한 기계들의 잡음만이 빈 공간을 가득 채운다.      

인간의 욕망이 만든 다양한 종의 애완견은, 그만큼 인간의 정서를 충족시켜 주는 존재가 없기에 지구상에서 인간과 함께 번성하고 있을 것이기에. 반려동물을 이르는 영어단어 ‘펫(pet)’은 ‘어루만지다, 쓰다듬다, 애무하다’는 동사로도 쓰인다. 살아있는 것이 주는 그 영원한 충만함을 잊을 수 있을까. 지구상에서 가장 영악하고 잔인한 족속인 인간에게는 더 이상 그렇게 보드랍고 따스한 털이 남아있지 않다.     

           

영롱히 빛나던 해피의 눈.아기였던 해피는 자라면서 아가씨 티가 나는 암컷이 됐다. 그게 참 신기했다. 늙어가는 조짐들이 하나씩 늘어갔지만  나에게는 영원한 아기였다.

※ 일필휘지로 쓴 추모의 글이기에 비문이나 오타가 많을 수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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