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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광선 Jan 24. 2020

당신의 오로라, 나의 북유럽 6

아빠와 함께 한 핀란드, 노르웨이 오로라 여행

뿌연 안개가 호수 위로 자욱한 아침, 발코니의 커다란 창문을 연다. 공기는 차갑고 상쾌하다. 크게 심호흡해 신선한 공기를 폐 속 가득 채워 넣으며 헬싱키에서의 마지막 날의 풍경을 하나하나 눈에 담는다. 낮부터 환하게 밝힌 거리의 노란 불빛과 화려하지 않은 회색조 파스텔 빛 건물들 사이로 조용히 지나가는 오래된 트램. 어두운 색 코트를 껴입은 사람들로 가득 찬 돌길. 영하의 공기 사이로 내뿜는 후우! 하는 뿌연 입김 언저리에 비치는 불빛들, 무뚝뚝한 얼굴들 사이로 살짝 따스함이 내비친다. 호숫가를 거니는 사람들, 유모차는 미는 부부, 커다랗고 순한 눈을 가진 개들과 색색 털모자를 눌러쓴 아이들. 무뚝뚝해 보이지만 이내 소박한 미소를 지으며 헤이!라고 인사하는 조용하고 수줍은 사람들. 도시는 사람을 닮는다.     

헬싱키를 떠나는 날, 핀란드에서 사우나를 빠트릴 수는 없다. 헬싱키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바다에 면해 있는 사우나에 들른다. 우리나라 대중목욕탕이나 찜질방 같은 사우나에 수영복을 갈아입고 들어서면 생각보다 좁은 두세 개의 사우나 방이 있다. 조심스레 무거운 나무문을 열자 뜨거운 열기가 훅 하고 밀려온다. 좁고 어두운 계단을 조심조심 올라가 엄청난 열기를 내뿜는 난로를 한가운데 두고 마치 원형 극장처럼 빼곡히 둘러앉은 사람들 사이로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면 이내 조금씩 조금씩 몸을 움직여 한두 사람이 들어갈 만한 공간을 마련해 준다. 사우나에선 누구든 친해질 수밖에 없다. 좁고 어둡고 뿌연 증기 속에서 서양인이든 동양인이든 피부색에 상관없이 연신 땀이 흐르는 몸을 부비게 된다. 좁은 자리에 한 치의 틈도 없이 들어앉아 증기를 함께 쏘이고, 마치 카페에 온 것처럼 끊임없이 수다를 늘어놓는다. 맞은편의 중국인과 이쪽의 일본인 학생들은 서로 소곤거리며 먼저 나가면 지는 것인 양 눈치를 본다. 온천에 강한 일본인 학생들과 떠들썩하고 건장한 중국인 학생들 사이에 찜질방에 익숙한 한국인이 앉아 있는 풍경. 결국 일본인 학생들이 지쳤다는 듯 먼저 나무문을 열고 나가자 중국인 학생들은 서로 마주 보며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그렇다면 우리도 먼저 나갈 수 없지. 옆 자리 남자가 난로에 바가지로 물을 뿌리며 김을 훅 하고 더 올린다. 금세 노곤함이 밀려온다. 사우나 문을 열면 바로 12월 발트해의 차가운 공기다. 미끄러질 듯 난간을 잡고 조심조심 걸어 마치 수영장에 들어가듯 바다에 발을 담가 본다. 3초도 안 되어 언 발이 저려와 슬금슬금 다시 물러날 수밖에 없다.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핀란드 아주머니들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차가운 바닷물에 풍덩 뛰어들더니 어느새 저 쪽까지 수영해 나간다. 그리고는 청어처럼 꽁꽁 언 몸을 다시 검은 수증기 속에서 익힌다. 서로 몸을 맞대는 사람들끼리는 미워할 수가 없다. 숲과 호수와 눈 덮인 평지가 끝없이 펼쳐진 풍광과 느릿한 자전거가 이 사람들을 만들었다면, 이들과 가까워지게 하는 것은 단연 사우나의 열기이다.      


사우나에서 나와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머리를 식혔다. 시내 광장에서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한창이다. 헬싱키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캄피Kamppi 예배당에 들렀다. 온전히 나무로 만든, 그것도 구부러진 곡선의 나무와 빛으로만 이루어진 자연주의 예배당. 돌은 모양 그대로 쌓을 수밖에 없지만, 나무는 구부릴 수 있다. 직선이 없는 완전한 곡선의 공간을 채운 공기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부드러운 빛과 잘 어우러진다. 아담한 예배당의 작고 오목한 공간에 앉아 있으면 나만의 둥지에 푸근하게 안겨 있는 것 같다. 뾰족하고 높은 첨탑도, 신성하게 우러러볼 십자가도 없이, 오로지 나무로 된 이 따스한 교회는 자신에게 침잠한 빛으로 둘러싸인 고요한 공간을 준다. 그곳엔 오직 빛과 온기와 모든 것을 부드럽게 녹여내는 공기뿐. 이곳에서는 나쁜 마음도 사그라든다. 오직 부드러운 마음, 선한 마음만이 남는다. 그것이 종교의 본질이겠지. 캄피 예배당은 그렇게 나무와 빛과 공기만으로 신성함을 만든다.

나무와 안개와 호수의 도시, 도서관과 교회, 카페와 모든 예쁜 것들의 도시. 사라지는 것들과 남아있는 것들, 새로 나는 것들이 공존하는 도시. 조금씩 자라는 고요한 나라 핀란드를 끝없이 이어진 자작나무 숲을 지나며 보내준다.      

     



겨울 북유럽 여행자를 위한 소소한 여행  6.

핀란드의 집에는 대부분 사우나가 있다고 한다. 1가구 1 사우나인 셈이다. 핀란드의 사우나는 씻는 곳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사교의 장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핀란드 사우나는 우리나라 찜질방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호텔이나 숙소에 있는 사우나는 한 두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더운 김이 나는 사우나여서 우리나라와 큰 차이는 없다. 핀란드의 사우나를 경험하려면 사람 많고, 바다에 접해 있는 대형 사우나를 경험해 보는 것도 좋다. 단, 많이 비좁고 복작복작한 찜질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남녀가 같이 들어가기 때문에 수영복은 필수이다(대여해 주는 곳도 많다). 로일리Löyly Helsinki나 알라스Allas Sea Pool 등이 유명하고, 사우나를 하다 바다에 들어가거나 바다를 볼 수 있다. 인기 있는 곳이라 인터넷으로 시간제 예약을 받기도 한다. 주말에는 예약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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