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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광선 Jan 28. 2020

당신의 오로라, 나의 북유럽 10

아빠와 함께 한 핀란드, 노르웨이 오로라 여행

베르겐에서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인 오슬로로 가는 길은 비행기나 기차가 아니라 송네피오르드를 경유하는 길로 정했다. 베르겐에서 시작하여 보스, 구드방겐, 플롬, 뮈르달을 거쳐 오슬로로 가는 길. 기차와 배를 갈아타고 끝이 보이지 않는 설산과 피오르드를 넘어가는 길이다.

아침 일찍 무거운 캐리어를 포터서비스로 미리 오슬로 호텔로 보내 두고 가뿐하게 배낭 하나만 메고 중앙역으로 향한다. 호수 옆의 중앙역에는 피오르드 투어를 떠나는 사람들만이 옹기종기 모여 이른 시간 별빛 아래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시간은 벌써 아침 여덟 시다. 여러 장의 티켓이 묶인 피오르드 투어 티켓 뭉치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시간을 각자 확인하고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 긴장했다. 여름의 피오르드 투어는 관광객으로 가득하겠지만, 겨울에는 운행하지 않는 구간이 대부분이라 피오르드 투어를 하는 사람도 비교적 적고, 베르겐에서 오슬로로 이어지는 전 여정을 하지 않고 피오르드만 돌아본 후 중간에 돌아오는 여행객도 많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오슬로에서 인천으로 돌아가야겠기에 피오르드 구간 전체를 이동했다.

 베르겐에서 출발한 기차는 보스 역까지 한 시간 반 남짓을 이동했다. 기차에서 내려서는 바로 버스로 갈아타 구드방겐으로 이동했다. 보스까지는 평범한 기찻길이었지만, 마을을 벗어나자 버스는 하얗게 언 호수를 둘러싼 설산을 빙빙 돌아갔다. 깎아지를 듯 솟은 산들 사이로 흰 눈이 어지러운 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점점 노르웨이의 빙하가 만든 험한 산의 풍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를 이동하여 버스는 유람선 선착장에 도착했다. 기념품 가게와 카페를 겸한 선착장에서 우리는 송네피오르드를 따라 플롬까지 우리를 안내할 유람선을 기다렸다. 카페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로 간단히 요기하고 있자니 거대한 유람선이 저 쪽에서 오고 있었다. 유람선에 오르자 실내는 탁 트이고 따듯했다. 배는 천천히 방향을 틀어 피오르드 쪽으로 향했고, 곧 양 쪽이 검은 돌산으로 가로막힌 송네피오르드로 진입했다. 눈 쌓인 산, 빙하가 녹은 깊고 맑은 물이 만드는 피오르드는 거대하고,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아무것도 없는, 그저 검고 하얀 산과 깊이를 알 수 없는 물뿐이었지만 그 단순한 장엄함이 사람을 압도했다. 찬 바람에 손이 어는 줄도 모르고 내내 유람선 이층 바깥에 서서 빙하를 타고 불어오는 바람을 들이마셨다. 천년은 되었을 것 같은 차갑고 선명한 바람이 고요한 피오르드에 가득했다.       

두 시간 남짓한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유람선은 좁은 피오르드 사이를 미끄러지듯 이동해 작고 아담한 마을 플롬에 도착했다. 플롬에서 작은 카페에서 쉬며 빵과 커피로 요기를 한 후 산악열차에 올랐다. 플롬에서 뮈르달까지 가는 산악열차는 깎아지른 듯한 산을 아찔한 각도로 오른다. 과연 운행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오래된 나무 산악열차는 삐걱거리며 산을 올랐다. 옛날식 기차답게 위로 반쯤 열리는 창문을 열었다. 절벽처럼 높은 산등성이가 손에 닿을 듯 가까이 있었다. 이십 여 분을 가자 열차는 폭포에 멈춰 섰다. 산등성이 사이로 거대한 폭포가 얼어붙어 있었다. 이곳에서 요정의 춤이 보인다고 했는데, 이날은 보이지 않았다. 폭포 사이에서 인간을 유혹하는 요정은 신화였을 뿐일까. 기차는 다시 출발했다. 이런 곳에까지 어떻게 집을 짓고 살았을까 싶은 곳에도 노란 불빛과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집들이 조용히 서 있었다.      



언 폭포와 강들을 지나 기차는 뮈르달을 향했다. 원래 가이드북에 따르면 우리는 뮈르달에서 오슬로로 가는 기차를 갈아타야 했다. 하지만 송네피오르드 투어를 안내하는 넛셀투어에서는 뮈르달 역에서 오슬로로 가는 기차는 두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는데, 뮈르달에는 카페도 휴식공간도 아무것도 없으니 중간 바트나할센Vatnahalsen에서 내려 호텔 라운지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고 메일을 보내왔다. 겨울 시즌이라 사람들은 대부분 플롬에서 뮈르달까지 갔다가 다시 베르겐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오슬로까지 피오르드 전 구간을 이동하는 관광객은 많지 않아 보였다. 우리는 넛셀투어의 조언대로 바트나할센에 내렸다. 열차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민 사람들은 멈칫거리기만 할 뿐 아무도 따라 내리지 않고 뮈르달로 향했다(나중에 제대로 쉬지 못해 지친 표정의 그들을 뮈르달 역에서 만나긴 했다). 기차에서 내린 것은 바트나할센 호텔의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과 우리뿐이었다. 눈밭 한가운데 홀로 선 바트나할센 호텔은 아무도 머물 것 같지 않은 곳이었다. 조심조심 눈밭에 파묻힌 호텔 문을 밀었다. 걱정스러운 마음과 달리 호텔은 따듯했고, 프로방스풍 커튼과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아늑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미소를 띤 여직원이 다가와 이곳엔 어떻게 내리게 되었냐고 물어 넛셀투어에서 추천했다고 말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여름에는 하이킹하는 사람으로 북적이고 겨울엔 스키를 타러 오는 사람들이 있기는 한데 요즘은 날씨가 좋지 않아 머무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했다. 점심과 저녁 시간 중간쯤이어서, 우리는 빵과 큰 그릇에 담긴 연어 수프를 주문했다. 수프는 생각보다 훨씬 맛있었고, 직원은 커피와 와플은 마음껏 먹으라고 말하며 데스크로 돌아갔다. 큰 창문 밖으로는 휭휭 부는 북구의 바람 소리가 거세지며 점점 눈 폭풍이 일었다. 살금살금 복도를 걸어가자 아무도 묵지 않는 것 같은 방들이 반쯤 열려 있었고, 나무 복도는 삐걱거렸다. 문득 큐브릭의 <샤이닝>에 나오는 오버룩 호텔이 떠오르며 오싹해지는 것이었다. 서둘러 로비로 돌아와 조용히 책을 읽으며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직원 둘의 수다만 간간이 들리는 적막한 겨울의 설산 위 외로운 호텔에서의 두 시간은 신기한 체험이었다. 아무래도 이곳은 왁자지껄한 여행객에게 보다는 외로운 등산가에게 어울리는 곳이지 싶었다.      

 


눈 폭풍을 헤치고 바트나할센 역으로 걸어가 뮈르달로 향하는 기차를 겨우 잡아탔다. 바트나할센 역에서 기차는 단 일 분 정도만 정차할 뿐이어서 마음을 졸였다. 뮈르달에서 오슬로까지는 긴긴 잠이다. 바깥은 이제 완전히 어두워져 깜깜하다. 네 시간 반이 걸리는 밤 기차는 조용히 한밤의 오슬로로 우리를 옮겨 주었다.  

  



겨울 북유럽 여행자를 위한 소소한 여행 팁 10.

200km가 이어지는 송네피오르드는 세계에서 가장 긴 피오르드로 노르웨이 여행의 백미이다. 베르겐에서 오슬로, 또는 그 반대로 이동해도 된다. 이 구간 전체를 이동하는 데는 꼬박 열 시간이 소요된다. 여름에는 다양한 코스가 운행되지만 겨울에는 베르겐-오슬로를 잇는 코스 하나뿐이다. 예약은 각 구간을 따로 해도 되지만 넛셀투어Norway in a nutshell® tours(https://www.norwaynutshell.com)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편리하다. 요금은 따로 예약하는 것보다 조금 더 비싸기는 하다.

베르겐-(기차 1시간)-보스-(버스 1시간)-구드방겐-(페리 2시간)-플롬-(산악열차 30분)-뮈르달(이곳이나 바트나할센에서 2.5시간 정차)-(기차 4시간)-오슬로로 이어지는 약 10시간의 여정으로, 베르겐에서 아침 8:30에 출발하여 오슬로에 밤 10시가 넘어 도착했다. 긴 여정이지만 피오르드의 정수를 하루 만에 볼 수 있다. 다만 많이 피곤하고 긴 여정이므로 목베개, 담요 등을 챙겨야 하고 , 중간에 먹을 것도 마땅치 않으므로 간식과 음료는 꼭 챙겨야 한다. 버스, 기차, 페리 등 자주 갈아타는 일정이므로 캐리어를 끌고 다니기에는 상당히 무리가 있으므로 포터서비스(https://www.porterservice.no)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베르겐 호텔과 오슬로 호텔을 지정하여 예약하면 당일 아침 8시 이전에 베르겐 호텔에서 캐리어를 픽업해 밤 10시 이전에 오슬로 호텔에 가져다 놓아주므로 가벼운 몸으로 피오르드 투어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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