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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광선 Jan 21. 2020

당신의 오로라, 나의 북유럽 2

아빠와 함께 한 핀란드, 노르웨이 오로라 여행 일기

눈을 뜨자, 설국이었다.


오전 아홉 시가 되어도 바깥은 여전히 한밤중이었다. 자작나무에 쌓인 눈이 희미한 빛을 어슴푸레한 하늘로 내뿜고 있었다. 밤새 하늘에 촘촘히 박혀 있던 별빛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오전 열한 시가 되자 어릿어릿 붉은 기운이 저 눈밭 너머에서 퍼져왔다. 따스하게 덥혀 둔 오로라 캐빈에서 나와 레스토랑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나자 비로소 눈의 나라에 도착한 것이 실감되었다.


아빠와 함께 마을을 돌아보러 나섰다. 마을까지 걸어서 십 분이면 된다고 전날 숙소 스탭이 알려주었지만 한 발짝만 나서도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통에 걸음은 한없이 느려졌다. 언제부터 쌓였던 눈일까. 저 밑에 쌓인 얼음 같은 눈은 이 겨울의 시작부터 저기에 조용히 잠들어 있는 거겠지. 느린 발걸음을 천천히 옮긴다. 그래도 괜찮다. 바쁠 것 없는, 그저 눈으로 가득한 풍경을 마음에 담아 두는 것밖에는 다른 할 일이 없는, 이곳은 눈의 나라니까.     


주위엔 온통 키 큰 나무와 깨끗하고 새하얀 눈뿐. 밟아도 더러워지지 않는, 조용하고 깊은 눈이다. 침엽수와 자작나무 사이로 두 사람이 걷는 발소리만 사각사각 들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시간, 그저 걷기만 해도 좋은 시간.  아빠와 나는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그리고는 가끔 옛날이야기를 하시곤 했다. 마치 깊이를 모르게 쌓인 이곳의 눈밭 아래에서 잠들어 있다가 긴긴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온 것처럼. 몇 달였는지 모르게 켜켜이 쌓인 눈처럼, 과거는 기억 아래에 잠들어 있다가 불쑥, 원래 거기 있었다는 듯이 자신을 내보이곤 한다. 현재는 무상하고 아무 일 없이 다시 흘러가지만, 그런 기억들은 마법처럼 시간을 돌려내어 스쳐 가려는 나를 멈춰 세운다. 그곳에서, 깊이 묻혀 있던 과거의 나를, 그리고 그 기억을 되새김질하는 나를 다시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마을이라고 할 것도 없는, 리조트 호텔 하나와 스키 대여소, 벌써 문을 닫는 식당들과 가게 몇 개가 고작인 읍내에 들어섰다. 길 한 켠에는 작은 오두막 카페만 문을 열고 있었다. 종이컵에 내어주는 핫초코로 잠시 몸을 데우며 시간이 멈춘 이곳에 대해 생각한다. 눈 속에 묻힌 기억을 캐내며, 또 이곳에 어떤 기억을 저 눈 아래 묻고 가게 될까 생각한다.     



시간은 금세 오후 두 시. 이미 밤이다. 해가 짧은 겨울의 북유럽은 눈과 밤, 캄캄한 밤뿐이다. 숙소로 돌아와 차를 마시고 이른 저녁을 먹으며 어쩌면 나타날지도 모르는 오로라를 기다렸다. 어젯밤에는 숙소에 늦게 도착한 탓에 오로라를 보러 나가지 못했다. 미리 검색해 둔 오로라 지수 앱으로 오늘의 오로라 출현 확률을 검색해 본다. 17%도 되지 않는 낮은 확률에 설상가상으로 눈보라까지 날린다. 밤새 구름 100%인 날씨가 이어질 예정이란다. 그래도 일단 길을 떠나 보기로 한다. 붙일 수 있는 한 핫팩을 잔뜩 붙이고, 두 겹 세 겹으로 눈만 간신히 보일 정도로 옷을 껴입은 채 숙소를 뒤뚱뒤뚱 나선다. 연세가 있으신 아빠가 추운 바깥에서 힘들어하실까 봐 담요, 뜨거운 커피와 차가 든 보온병도 잊지 않는다.   


예약했던 오로라 투어가 시작하는 장소에 시간 맞춰 도착했다. 마을 바깥 한 점의 빛도 없는 평원의 완벽한 어둠 속에서 오로라를 함께 기다릴 대여섯 팀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다섯 시가 되자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다 모였다. 호주, 중국, 독일, 영국 등 각지에서 온 가족과 커플, 혼자 온 여행객들이 모두 눈만 보이도록 중무장을 하고 모였다. 하지만 다들 오로라 지수를 확인하고 온 탓인지 오늘 오로라를 보겠다는 기대는 거의 없이 우선 출발하고 보자는, 조금은 체념한 분위기이다. 그곳까지 한두 시간, 날이 맑아지지 않거나 오로라가 보이지 않으면 더 먼 곳까지도 이동해야 한다. 운전해 줄 오로라 헌터(가이드) 겸 사진사가 우리를 안내했다.      


미니밴이 삼십여 분을 눈밭 위로 달리자 이내 가로등도, 식당에서 비치는 불빛도 전혀 보이지 않는 어둠이 이어진다. 한참을 더 달려 어느 넓은 호숫가 근처 언덕에 갑자기 차가 멈춘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다 내리기도 전에 가이드가 “저기 봐요!” 하고 소리친다. 마치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선명한 초록빛 오로라가 넘실거린다. 그리고 무수한 별들 사이로 날카로운 흰 빛을 그으며 별똥별이 떨어진다. “앗! 소원!” 하지만 소원을 생각할 새도, 소원을 빌 새도 없던 우리는 허탈하게 서로 마주 보며 웃는다. 구름이 마술처럼 개어버린 날씨에 가이드도 놀랐는지, 며칠 동안 흐린 날이 이어져서 오늘도 가망이 거의 없었는데 다행이라며 기적 같다는 듯 “매직, 매직”을 연발한다.     

 

꽁꽁 얼어 흰 달빛을 반사하는 얼음 호수 위로, 희미하다가 이내 하얀빛 초록빛으로 넘실거리는 오로라가 떠오른다. 오로라는 살아있는 듯 움직이며 호수 건너 낮은 산 너머까지 오로라 무지개를 피어 올린다. 하늘을 뒤덮다가 한 줄기로 솟아오르며, 살아있는 듯 움직이는 오로라가 검은 하늘 위로 사라지고 또 모습을 드러낸다. 몇 날 며칠을 기다려도 만나기 힘들다는 오로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반겨주다니. 오로라를 볼 수 있을지 내내 걱정하고 기대하며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온 우리 부녀에게 주는 행운일까. 오로라를 보았다는 기쁨과 황홀함보다, 첫날 오로라를 보았으니 앞으로의 일정은 아무래도 좋다는 안도감이 사실 더 컸다. 오후 내내 걱정했던 무거운 마음이 씻긴 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생애 첫 오로라를 사진으로 남겨드리기 위해 연신 오로라 앞에서 아빠의 사진을 찍어드렸다. 그러다 우리 둘 다 이내 카메라를 넣었다. 마술 같은 빛의 춤을 담기에 카메라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저 우리 눈에, 마음에, 그 황홀한 기적을 담아두면 되었다. 마음이 가벼웠고, 보랏빛 초록빛 보드라운 빛의 춤은 깨끗하게 비워진 마음에 오롯이 담겼다.     


충분히 오로라를 보고 텐트 안에서 모닥불을 피웠다. 가이드는 빵을 데우고 주전자에 물을 올려 코코아를 타서 모두에게 돌렸다. 따뜻한 호주에서 왔다는 가족의 어린아이들은 연신 춥다고 동동거리면서도 또 오로라를 보고 싶다며 텐트를 들락날락했다. 오늘이 여행의 마지막 날인데 다행히 오로라를 볼 수 있게 되었다며 환하게 웃는 중국 여학생은 자신이 사는 마을에서는 따뜻해서 필요 없다며 남은 핫팩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며 싱긋 웃었다. 서로 사진을 찍어 주느라 바쁜 영국 커플은 따뜻한 텐트로 들어오지도 않고 오로라 사진을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모닥불에 구운 빵은 초콜릿이 녹아 달콤했고 핫초코는 마음까지 데워 주었다. 오로라를 볼 수 있었다는 기적이 모두의 마음속에 초록빛 행운의 기운을 따스하게 퍼트리고 있었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숙소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새벽 네 시, 잠시 눈이 떠졌다. 천장이 유리로 된 오로라 캐빈에는 오늘 밤에도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전기를 작동시켜 눈을 살짝 녹여 보았다. 별똥별은 없었지만 하얀 침엽수림 사이로 쏟아질 듯한 별이 한가득 검은 하늘을 메우고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았을까. 녹색 빛을 희미하게 띤 구름이 지나가더니 초록빛 오로라가 유리 천장 위 하늘에서 한동안 일렁였다. 별 속의 우주인지, 꿈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낯선 눈밭 한가운데 누워서 하늘에 일렁이는 우주의 빛을 보고 있자니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아, 나는 조용히 돌아누웠다.





겨울 북유럽 여행자를 위한 소소한 여행 팁 2.

오로라를 보는 것이 목적이라면 오로라 투어를 신청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물론 숙소나 마을에서도 오로라를 만날 수는 있겠지만, 가능한 한 빛이 적고 어두운 곳으로 나가면 시내에선 희미한 오로라도 나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오로라를 볼 수 있는 확률은 날씨와 태양의 운동에 따라 달라지는데, 그날 오로라를 볼 수 있을지 확인하고 싶다면 오로라 어플(northern lights forecast)을 이용하면 된다. 그날 오로라를 볼 수 있는 확률을 알려준다. 하지만 확률은 확률일 뿐! 구름의 이동이나 날씨의 상황이 급변할 수 있으므로 확률이 낮다고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장소를 잘 아는 현지 가이드가 최대한 확률이 높은 곳으로 데려다준다.     


오로라 투어는 당일 현지에서 예약해도 되지만, 한국에서 미리 예약하고 가도 된다. 성수기에는 인기 있는 투어는 일찍 마감되므로 한 달 전에도 마감된 경우도 있었다. 트립어드바이저(https://www.tripadvisor.co.kr)에서 각 지역의 로컬 투어로 검색하면 다양한 투어 업체와 상품을 볼 수 있다. 노르웨이 트롬쇠에서는 개별 투어 프로그램을 모아 놓은 사이트(https://www.visittromso.no)를 운영하여 각 상품을 쉽게 비교할 수 있다. 투어 인원(여러 명이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지, 소규모 인원이 움직이는지), 투어 시간(시내 근처 정해진 장소까지만 가는 경우 3~4시간 만에 투어가 종료되지만, 오로라가 안 보일 경우 멀리까지도 이동하는 경우 6시간 넘게 걸리기도 한다. 이렇게 볼 때까지 이동하는 상품은 northern light chasing으로 검색해야 한다), 비용에 전문가의 사진이 포함되어 있는지, 방한복을 대여해 주는지, 간식(음료, 수프, 빵 등 간단한 먹거리)이 포함되는지, 숙소까지 픽업해주는지 등을 살펴보고 예산과 인원에 맞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인원수가 많고, 지정된 장소에 머물며 기다리고 지정된 장소에 모이고 해산하는 투어가 가장 저렴하다. 대체로 업체의 리뷰가 많고 상위권에 랭크된 업체들은 믿을 만하며, 투어가 갑자기 취소되는 불상사도 적다. 대체로 순위 10위권 이내의 업체를 선택하면 안전하다. 투어 종류나 업체만 미리 봐 두고 현지에서 당일 날씨를 봐서 예약해도 된다.


핀란드에서는 호수 근처의 지정된 장소로 1시간 정도 이동하여 오로라를 기다리는 투어를(텐트가 있어서 따뜻하게 기다릴 수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오로라를 못 보는 사태를 막기 위해 오로라를 따라가는 체이싱chasing투어를 예약했다. 인기 순위 10위권 이내의 업체에서 최대 8명이 이동하는 오로라 체이싱 투어를 검색해 예약했는데, 다행히 멀리 나가지 않고도 금세 오로라를 만날 수 있어 숙소에 돌아오기까지 4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오로라도 확실히 볼 수 있었고, 모닥불에 핫초코, 빵, 수프 먹거리도 챙겨주고, 방한복도 추가로 빌려주고, 사진도 전문가가 찍어 주어서 실제 보는 오로라보다 훨씬 선명한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오로라 사진은 폰 카메라로는 찍기 어렵고 DSLR이나 똑딱이 디카 정도는 있어야 한다. 노출을 최대로 해야 하기 때문에 삼각대는 필수이다. 오로라 사진을 많이 찍어 온 전문가의 사진이 훨씬 선명하므로 투어 시 사진이 옵션으로 포함된 투어를 선택하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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