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에서 한 달 살아보기를 하며 맞이한 화요일, "톨순이" 셋이 용문사 템플스테이에 참여했다. 남해 이동면 호구산에 위치한 이 사찰은 처음엔 낯설었지만, 차츰 내게 신선한 하루를 선물해 주었다.
미국마을 정류장에서 내려 뜨거운 햇볕 아래 언덕길을 걸었다. 이미 버스 안에서 창문도 없는 무더위와 씨름하느라 지쳤던 몸이 몇 발자국을 내디딜 때마다 무거웠다. 세 번이나 그늘을 찾아 쉬며 땀을 닦았다. 비탈진 다랭이마을 골목을 2주째 오르내리던 익숙함 덕분인지, 첫발보다는 덜 힘들었다. 그렇게 힘겹게 걷던 중 멀리 용문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와!” 소리를 지를 정도로 반가웠다.
숙소로 배정받은 "인욕방"은 이름처럼 정갈했다.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무언가를 내려놓게 만드는 듯 고요했고, 깔끔히 정돈된 방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주었다. 짐을 풀고, 무인 찻집에서 하동녹차 한 잔을 마시며 테이블 위 색연필로 문양을 색칠했다.
차분히 집중하는 동안 머릿속을 가득 채운 복잡한 생각들이 스르르 정리되는 듯했다.
저녁 예불 시간, 회심곡이 문득 떠올랐다. 스님의 목탁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아버지의 모습이 선명히 떠올랐다. 여고 시절, 한지가 바른 방문 틈으로 스며들던 찬바람 속에서 빨간 미니 라디오로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듣던 기억. 손이 시려가며 영어 단어를 적었던 그날들. 지지직거리던 라디오 너머로 흐르던 회심곡의 멜로디가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는 부족함 없이 우리를 챙기려 애쓰셨다. 겨울이 되면 호박에 “종자용”이라고 매직으로 써두시고, 무청시래기를 한두 줄씩 꺼내 주시던 그 모습. 자주 오라는 말은 못 하시면서도 그런 소소한 행동으로 우리를 기다리셨던 아버지의 마음을 이제야 헤아린다.
“귀찮다 말고 들어 둬라.” 자주 들려주시던 공자와 맹자의 말씀은 그땐 왜 그렇게 어렵고 무겁게 느껴졌을까. 하지만 지금은 그 목소리가 아득히 그립다. 커다란 농협 달력에 플러스펜으로 적어 내려가던 농사일기. 그 잉크 자국 하나하나가 아버지의 삶이고, 그리움이 되었다.
'살아있음은 온통 그리움이다.'이 말이 스님의 목탁 소리와 함께 머릿속에 메아리쳤다. 아버지와의 추억이 떠오를 때마다 가슴이 먹먹했지만, 그 기억들은 결국 내가 지금까지 살아갈 힘이 되어주었다.
우리가 걷는 길도 그러하지 않을까. 더운 언덕길처럼 힘겨운 순간들이 있어도, 결국 인내하고 나아가면 눈앞에 용문사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아버지가 남긴 기억과 가르침처럼, 내가 이곳에서 마주한 템플스테이의 하루도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소중한 쉼표가 되었다.
이 하루는 평생 잊지 못할 선물로 남았다. 언젠가 또 삶의 길 위에서 지치고 막막할 때, 오늘의 기억이 내게 힘이 되어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