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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경 Feb 04. 2018

소통하는 자만이 살아 남나니.

-소통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양방통행임을 잊지말라.

Social network service(*해외에서는 소셜미디어라는 호칭으로 사용한다:사회관계망 서비스), 스마트폰이 등장한 십여년전부터 시작된 인터넷에서 획기적인 바람을 몰고온 시스템이다. 개인홈페이지가 무색해질만큼 강력한 연결고리와 방대한 정보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개방성이 더해져, 선풍적인 인기 후에는 현재로선 이것이 꽤 큰 자리를 차지한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실 소셜미디어의 가장 주된 중심 메세지는 바로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이다. 그 ‘소통’이 아니고선 사실상 소셜미디어는 존재여부가 무의미하다. 어쩌면 그러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사람들은 갑작스레(?) 불어닥친 소통바람에 몇몇 일부는 이걸 어떻게 쓰는가에 대해 꽤나 당황하기도 했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그래도 나만의 공간 같아서 혼자만의 속이야기를 비공개로 올릴수가 있었지만, 초창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는 그러한 기능들이 없어서 대부분 계정자체를 블라인드하는 해프닝도 적잖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도 10년이 지난 지금도, 트랜드처럼 바뀌어지는 소셜미디어도 트위터에서 페이스북으로 현재는 인스타그램, 혹은 링크드 인으로 바뀌어가는 추세처럼, 소통의 변화도 상당부분 바뀌어가는 것 같다. 약간은 일방적인 느낌에서 조금이라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라이브 방송 시스템이나 채팅메신저 기능의 탑재로 더욱 현실감있게 바뀌어 가는걸 보면 말이다. 그만큼 소통은 어느 한쪽에서 일방통행 처럼 통보하듯이 하는게 아니라 서로 상호간에 대화하듯이 주고받는 것이기에 이러한 현상이 어찌보면 맞게 흘러가는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만큼 소통은 우리에게 있어서 특히 관계 가운데서 서로를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고리와 같다. 그것이 없으면 대화가 무슨 소용이며, 의견교환이나 마음을 나누는 진솔한 대화가 어떻게 가능할까? 서로간에 갖고있는 생각들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마음을 나누는 언어와 행동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듯이 관계에서 소통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평범한 인간인 이상 상대의 마음을 읽거나 하는 능력다윈 없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막상 그러한 걸 잊은듯이 가족이나 가장 가까운 최측근에게 상대가 내마음 정도는 알아주겠지 하면서 은근슬쩍 넘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니면 썸남썸녀가 밀당을 하면서 재거나 할 때에도 내마음 정도는 알아주겠지? 하는 아주 큰 착각을 하고 말이다. 그것은 소통에 대해 학습 한적이 없는 우리가 대기 좋은 핑계거리와 같다. 내 마음 들키기가 싫거나, 약한모습 보이기 싫고 보여주는 것을 중시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적잖이 쓸데없는 영향을 준 탓이기에 벌어진 참사(?!)와도 같다. 그렇게 관계에서 틈이 벌어지면 나중에 대 후회하는것은 바로 당사자인건 불보듯 뻔한 사실이고.



모든 비밀도 없이 오픈 한다는건 말이 안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나의 속마음을 단지 들키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사람들과의 의견이나 생각들을 공유하지 않고 그저 혼자만의 생각만을 안고 같다는것 또한 말이 더 안되는 경우이다. 내 의견이 피력되고 싶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 싸우는 자세가 아니라 그저 조근조근하게 차분히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 전에 상대와의 소통에 대한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함은 당연지사고 말이다. 연인 관계, 가족관계, 친구와의 관계, 직장동료들과의 관계 등에서도 소통하기, 지금까지 내가 소홀히 했었다면 이제부터는 조금씩 용기내어 시작해 보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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