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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르네바 May 30. 2024

동물과 인간, 누가 보는가?

<당나귀 eo> 그리고 <군다>


인간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정말 갖가지 종류의 소란을 피운다. 


서커스! 박수갈채와 웃음소리. 잠깐 죽은 척 연기를 해. 관객들이 좋아할 거야. 여자는 당나귀를 사랑하고 당나귀도 여자에게 애착을 느낀다. 무엇 때문에 난리들인지 알 수 없지만 여자의 사랑에 훈련이 잘 되어 있는 당나귀. 


저들이 원인이 된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선의로 가득한 구원자인양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한다. 눈가리고 아웅에 불과하다는 걸 알지 못하는 그들은 정의감에 고양되어 행복하다. 눈앞에서 고통받던 동물이 눈밖으로 사라져 그들의 양심에 더 이상 해를 가하지 않으니까. 


하루의 노고를 잊고자 고안했던 다른 종류의 육체노동을 자신이 원했던 방식으로 이루어내지 못했다고 동족상잔을 일으킨다. 분노는 양심에 면죄부를 부여한다. 풀을 뜯던 순수한 자연물의 나약함은 그 분노에 기름을 끼얹는다. 내 분노의 원인은 나보다 나약한 것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해소될 수 있다.


실망스런 아들이 집에 돌아왔다. 신 앞에서 회개하길. 우리에게 지은 죄를. 왜 돌아왔지? 밥만 먹고 돌아가. 돈을 뜯어낼 셈인가? 어림도 없지. 한 가지 소원쯤은 들어줄게.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을 테니까. 의붓아들의 키스라면, 나도 환영이야. 


인간들의 진지함과 최선을 다해 주어진 상황에 임하기. ‘이오’는 이들에게 끌려다니며 혹은 가만히 서서 우적이며 이 모든 것을 지켜본다(혹은 지켜보는 듯하다). 이오의 시선 속에서 인간은 사물화된다. ‘보는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다. 충분하다 여겨지면, 적당한 곳에 방치된 틈을 찾아 다시 여행을 재개한다. 이오 자신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어디에도 묶이지 않은 채. 스스로 그러한 채로. 


그리고 어딘가 다른 곳에, 스스로 그러한 채로 살아가는 어떤 돼지들이 있다. 암퇘지 군다와 그녀의 아이들. 풀밭을 거닐고 나무판자 뒤 안식처로 돌아가 잠을 잔다. 돼지의 눈높이만큼의 세상. 딱 그만큼만 필요한 세상이다. 하루종일 살 비비며 꽥꽥대는 새끼돼지들은 자연의 속도에 맞추어 성장해간다. 퍼덕이는 닭들과 거센 발걸음의 소들처럼. 그런데, 저 나무판자들은 뭐지? 닭들이 빽빽이 붙어 선 저 철장 달린 상자는? 소들이 들어가는 저 건물은? 돼지와 닭과 소들이 자연의 삶을 보내는 곳은 자연이 아니었다. 


이 불일치를 깨닫는 건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며, 그 깨달음은 항상 지연 또는 중단된다. 그것이 품고 있는 섬뜩함과 불안감 때문에. 자연이 인간마냥 자유를 누릴 때, 그리고 그 자유가 사물처럼 박탈당할 때 느껴지는 감정이다. 즉, 익숙한 것이 낯설어졌다가 그 낯섦이 다시 익숙함으로 환원되는, 이 불일치의 전개가 주는 묘하고 으스스한 감정을 우린 내쫓고 싶다. 이러한 감정을 찰나의 순간 이상으로 허락하면 “그의 돼지를 사랑하고 돼지고기를 소금에 절이는”[1] 농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오의 끝없는 방랑과 군다의 끝없는 헤맴은 우리 시선을 끈다. 여기서 다시, 존 버거의 물음 : “왜 동물을 보는가?”(“Why Look At Animals?”)


이오가 바라보는 인간의 경계를 넘은 야단법석. 인간이 바라보는 군다와 아이들의 한정된 세계. 이오에게 인간이 부려놓는 혼란은 흐르는 강물처럼 단조로울지도 모른다. 인간들에게 군다의 세계는 지루하리만치 고요하고 무의미할 정도로 고정된 것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서로를 향한 “몰이해의 좁지만 깊은 심연”[2]을 들여다보는 동물과 인간의 시선은 저마다의 무지 혹은 (본능적인 혹은 지능적인) 판단을 품고 있는데, 이를 연결코자 하는 시도는 오직 인간의 입장만 담고 있을 뿐이다. 애써 그러한 시도를 거듭하는 인간은 동물을 “고기 또는 가죽 또는 뿔로”[3]만 간주하는 19세기 이후 사고방식 이전에 자신이 오래도록 품어온 상상력을 떠올리고 그리워하는 것이다. 동물들이 인간 사회를 위한 “전령이자 징조”였던 시절, 우리는 동물들로부터 “초대장”[4]을 받곤 했다. 





[1] 존 버거(John Berger)의 에세이 “Why Look at Animals?”


[2] 같은곳


[3] 같은곳


[4] 같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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