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하이퐁 입성.
시작. 하이퐁 입성.
나는 40대 아재다.
아니, 그냥 아재라고 하기엔 뭔가 조금은 억울한 면이 있다.
분명 내가 봐도 나이에 비해 동안인데다, 결혼도 안 했고, 심지어 철도 없다.
철없는 아재인 나는 여행을 참 좋아한다.
왜 여행을 좋아하게 됐느냐고 물으면 딱히 대답할 말은 없다.
7년전 우연히 끌려가다시피 가게 된 라오스가 너무 좋았고, 우리나라와는 정말 많이 달랐다.
공항에 내리면 느끼는 습하고 더운 느낌도 좋았고,
동남아 특유의 오묘한 냄새도 새로웠으며,
이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신기했다.
호치민만 가본 적은 있지만 베트남에 대한 기억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하노이 맥주거리에서 맥주 한잔해요~"
"다낭에 놀러 왔는데 너무 좋아요!"
"역시 쌀국수는 베트남이죠!"
이런 종류의 문구를 여행카페에서 볼 때마다 베트남을 다시 가봐야 되겠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막연했던 베트남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는 것으로 대략적인 코스를 잡고, 비자를 신청했으며,
태국만 열심히 가봤다는 40대 후배 아재를 하나 포섭했다.
이 친구와 나는 여행 스타일이 너무도 많이 달랐지만 나에게 맞추기로 합의했다.
(다들 신붓감 구하러 가느냐고 놀려댔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쯤에서 간단히 내 스타일을 정리하자면,
기본적으로 고급스러운 여행보다는 배낭여행을 좋아한다.
물론 고급스러운 여행이란 것을 몇번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잘 모르지만, 내 생리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
어쩐지 맞지 않는 옷을 입고있는듯한 느낌이랄까?
비행기표를 고르는데 심혈을 기울이며, 숙소를 고를 때도 심사숙고한다.
하물며 로컬식당에서 쌀국수 하나 먹을때도 이리저리 재보기 일쑤다.
최대한 저렴하게 다니고 돈을 아끼되, 꼭 봐야 하는 유적지의 입장료라던가 일일투어에 대한 돈은 꼭 쓴다.
그리고 싼 술집을 찾되 술값을 아끼진 않는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마시는 것도 아니다. 라고 생각한다.
'기껏 여행 왔는데 뭘 그렇게 아껴?' 라고 많이들 얘기한다.
하지만 힘들게 번 돈을 굳이 나가서 마구 써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럴거면 왜 싼 항공권과 숙소를 검색하며, 쇼핑을 할 때도 뭐하러 가격비교를 하는 것인가? 라고 오히려 반문하고 싶다.
의외로 힘들게 돌아다니면서 찾아낸 식당에서 싸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가격대비 괜찮은 숙소를 발견하는 재미도 꽤나 괜찮다.
힘들지만 장거리 슬리핑 버스를 타는 것도 배낭여행의 즐거움이고,
허름한 로컬식당에서 먹는 쌀국수는 고급식당의 것과는 또 다른 맛이다.
하이퐁으로 들어간 것은 항공권이 하노이에 비해 무척 저렴했기 때문이었다.
총 26일로 일정이 정해졌고, 이제 떠나는 일만 남았다.
2월 26일, 아직은 꽤 추운 일요일 아침이었다.
좁고 불편하다고 소문난 비엣젯이었지만 생각보다 괜찮았다. 다만 물 한잔도 주지 않으니 참거나 사 먹거나.
별 탈 없이 숙소를 찾아 샤워도 한번 하고 조금 쉬었다가 환전을 해야돼서 밖으로 나왔다.
미리 봐 두었던 구글지도를 보며 대강 중심지일 것 같은 곳으로 걸어갔다.
문제는 몇 시간을 돌아다녀도 환전소는 보이지도 않았고,
금은방에서는 취급을 안 했으며,
은행은 일요일이라 문을 닫았고,
호텔에서는 100불에 200만동이라는 폭리(?)를 취하고 있었다.
환전하랴, 유심사랴, 호수 구경하랴, 말도 안 되는 시간과 거리를 걸었더니 녹초가 되었다.
그래도 현지인들에게 유명하다는 맥주집을 기어코 찾아내서 맥주를 한잔했다.
숙소까지는 10분 정도 걸어야 하는데 베트남은 인도가 따로 없다보니 걸어다니기가 상당히 불편하다.
나와 길거리와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한 몸이 되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베트남의 첫날이 그렇게 지나갔다.
왜 그렇게 미련했나 모르겠지만 둘째날도 참 많이 걸어다녔다.
여행객은 거의 보기 힘들었고, 호객행위 역시 보기 힘들었다.
큰 호수는 다 섭렵했고, 걸어서 40분 거리인 빅씨마트까지 걸어갔다 왔으며,
괜히 동네를 어슬렁 거리다 아무데서나 쌀국수를 먹었다.
카페쓰어다 (얼음넣은 연유커피)를 물먹듯이 마셔댄 것이 유일한 사치였나보다.
커피 때문인지 후배녀석의 우렁찬 코 고는 소리 때문인지 잠을 설쳤다.
내일은 깟바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