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관한 단상
<그린나이트>의 쿠키영상을 보고 <고스트 스토리>(2017)의 한 남자를 떠올렸다. 대머리 남자는 장황하게 우주적 죽음 아래 모든 기억과 유산은 사라질 것이라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린나이트> 역시 온기 없이 차가운, 그러나 로워리만이 가장 잘 보여줄 수있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만 같았다. (음. 그리고 배우의 연기력 큰 변수가 아닌 영화라서 특히 더 좋았다. 이건 내러티브에서 오는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지 않을까? 이건 다른 얘기지만 갑자기 기억나는게 '여자친구와의 안온함을 예상하게 하는 미래' 쇼트 다음 연결된 쇼트가 '갈림길 사이에서 선 가웨인이 해골을 바라보'는 쇼트인데 그런 완전히 다른 미래를 맞붙였던게 기억난다. 다른얘기네 어쨌건)
몇시간 전에 본 영화에 대해 간단 메모 정리 하려함. 인상적인건 다채로운 어둠의 매력과 빛의 상징적인 사용, 예를 들면 가웨인을 위해 기도할땐 생명의 빛이 깃든다던가, 독버섯을 먹고 환각을 볼때 빛이 그가 보는 거인의 기사가 환상임을 밝혀주는 식의. 인상적인 첫 시퀀스부터 동선을 강조하는 쇼트와 촉감을 자극하는 듯한 클로즈업이 기억에 남아서 이 아름다운 어둠 자체에 내용이 있을 것만 같았다. 다채로운 어둠...
아무래도 전작과 관련해서 로워리는 영화에 대한 영화,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라는 주제를 탁월하게(전작에선 경제적으로 아주 미니멀하게) 자기 방식대로 전달하고, 이를 대체할 동시대 메이저 감독은 거의 없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크리스마스, 그리스도에 대한 '농담'에서는 고난의 '여정'을 예상하게 하고, 왕이 '선물'로 '이야기'를 원하고, 여왈은 이야기가 없다는 말에 '아직 없을 뿐이다'라 대답하고,기사가 등장하고 메시지가 발화하면서 시작되는 게임까지...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이야기'라고 직감한다. 가웨인의 운명은 이 게임, 이야기를 매개함으로써만 재현된다. (너무 빠른 1년에서 좀 웃었다ㅋㅋ) 가웨인의 무용담은 인형극로 재현되고 가웨인의 얼굴은 인형에서 회화로, 술자리 이야기로, 이후엔 사진의 원리인 빛의 흔적으로 재현된다. 가웨인이란 인물은 여정의 '흔적'으로 드러나는데 마치 여러쌍의 거울이 한 인물을 난반사하듯 그를 재현한다.
몇가지 시험을 거치면서 만난 성주 부인이 '그린'에 대해 (<고스트 스토리>의 머머리 청년처럼) 일장연설을 한다. 초록색은 생명의 색이지만 부패의 색이기도 하고 붉은 욕망이 남긴 흔적이며 열정이 죽고 우리가 죽었을때 사라지고 남긴 흔적이다, 그것이 당신의 모든 것을 굴복시킬 것이라며 무상함을 공포로 강조한다. 그는 자신이 얻으려는 것이 명예라고 확신한다. 가웨인은 여정의 끝에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자신이 확신한 그 명예의 무상함을 깨닿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이 이야기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나는 듯 보인다. 어떤 우여곡절인지는 모르지만 가웨인은 이야기 속에서 사라진 인물들과 재회하거나 스치면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자신의 명예로운 인생을 산다. 그린나이트와 계약된 이야기 바깥의 생명과 삶을 택한 이의 명예로운 인생이, 실은 자식의 죽음을 지켜보고, 지난한 전쟁과 사람들의 비난과 야유를 견디며 옛 연인의 얼굴(카메라는 그저 그녀를 비추고 있지만 저주 섞인 원망 이상의 끔찍함을 엿보지 않았을까)을 마주하고, 결국 성주 부인의 일장연설처럼 명예로운 삶의 끝에선 생의 욕망이 남긴 흔적처럼, (과거 한때 그가 매료되었던 사진 상인) 빛이 남긴 가웨인의 얼굴 앞에, 명예를 쫓던 이야기는 모든 것이 절멸하고 무너지는 필연적 죽음이란 진실 앞에 무너진다. 그리고 녹색끈에 담긴 명예라는 허상을 버렸을 때, 진짜 죽음 앞에서 가웨인은 '용감한 기사'로 죽음을 받아들인다.
이야기와 이야기가 서로 굴절되고 반사되듯 이야기 속의 인물을 다시 만나고 삶으로 엮이거나 이별하고 전과는 전혀 다른 삶이 또다른 허상으로서의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생각에 데이빗 로워리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가장 잘 하는 주제를 다뤘구나 이거에 좀 진심이구나 싶은? 그런? 데이빗 로워리에 대해 좀 길고 깊게 생각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하지만 바쁘니까 여기서 이만 -끗- (로워리가 선택한 결말은 원작과 달리 이야기를 이야기하기 위한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함)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고, 끝을 향한 시작이 있는 것이고, 하나의 여정이 끝나고 나서야 이야기는 자신의 또다른 여정을 시작할 수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죽음은 어떤 조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덧붙인다.
종교적인 속성을 최대한 제거하고 에픽을 강조하기위해 예를 들면 중세 건물의 디테일 같은것들이 흐릿하게 제거하는 등의 여러 연출이 또 기억에 남음. 특정 시대, 특정 종교에 제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현대와 우화적으로ㅈ연결되고 (원작의 많은 의미를 반영하려면 상징을 포기하고 알레고리로, 흐릿해질수밖에 없는 운명) 보편적인 세계의 특수한 부분을 겨냥하며 펼처지기 위한 전략처럼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