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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a Dec 23. 2021

<드라이브 마이 카>(2021)_메모

오늘 낮에 본 <드라이브 마이 카>에 대한 짧은 메모


음... 짐오쿠르 음악이었던 거에 조금 놀랐고, 일본영화에서 부산 사투리를 듣게된 것도 놀랐고, 쿵하는 예상치 못한 소리가 반복되는데 이게 상영관 탓(옆 상영관 소리)인지 작품 내 소리인지 좀 긴가민가 한 부분이 기억난다.


  <해피아워>를 거울상이 반사되는 듯 여러 상이 공명하던 영화로 기억한다. <드마카>도 그랬다. 해피아워보다는 좀 명확하고 단순 선명한 느낌. 나는 타인과 교류하는 이야기와 기억으로, 서로의 기억을 떼어 나누어 나의 일부가 된 내부와 끝없이 대화한다. 오토가 언급했던 칠성장어처럼 누군가의 메시지와 기억에 빨판을 붙이고 그 흐름에 몸을 맡기며 동요하며 살아간다. 자신의 이야기와 연극의 대사가 뒤섞인 낡고 오래된 차는 가후쿠 같다. 일상에서 알아채기 힘든 녹내장처럼 어딘가의 구멍, 결여를 알지못한다.

  영화는 영화가 시작하고 40분? 후 그 결여를 중심으로 새롭게 시작한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모호함으로...(조금 놀람) 나의 이야기와 대본의 이야기가 뒤섞인 차라는 내밀한 공간은 운전수라는 관찰자에게 자리를 내어주면서 서서히 변화한다. 꽉 입다문 내면에 들어온 타자랄까 관객이랄까... 존재감조차 없던 운전수지만 타자가 자리를 차지하면서 내부는 어떤 변화를 맞이한다. 영화는 그 변화를 몇마디 센스있는 대사나 효율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보여준다. 보여준다. 영리하고 아름다운 방식으로(감탄)...

  칠성장어 여고생 이야기는 그들에게서 변화한다. 그들은 칠성장어 여고생 이야기를 닮아 변화한다. 오토에게서 시작된 이야기는 가후쿠의 이야기로, 다카츠키의 기억으로 반복되고 이야기는 가후쿠의 기억과 다른, 자신의 방식대로 흘러간다. 세계가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내면에 뭔가가 일어나버린 칠성장어 여고생의 이야기는 내면의 변화라는 전체의 변화를 진솔하게 받아들이고 수긍하는 인물들의 상으로 상맺힌다.

  기억 속에서 죽음과 이별하듯, 또는 그 기억을 불러오듯 각자의 기억 앞에 가후쿠와 미사키는 각자의 담배를 향처럼 치켜올린다. 아무것도 남겨진 것 없이 폐허가 되어 자연의 일부가 되어버린 장소에 과거를 한 송이씩 던져 버리듯 진실을 꺼낸다. 결국 아픔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단순한 사실에는 어떠한 논리도 해석도 감정도 필요없이,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받아들이고 살아가야한다는 현실이 남는다. 칠성장어 여고생의 이야기가 끝이 난건지 이어지는지 알 수 없었던 것처럼 그들의 이야기도 알 수 없다. 유나의 개, 가후쿠의 차, 한국... 어떤 현실인지 명확하진 않지만 흐릿하게 그들의 흔적을 간직하며... 끝, 이후를 살아가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방법을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보았다.


* 무수한 슬픔 이별 위에 지금의 모습으로 서있음을 잊지 않길...


* 곱씹을수록 관찰과 개입, 관객의 영화같다. 원작이 불필요한 원작에 발걸친 독립된 이야기라는 점도... 어떤 부분이 보는이를 밀쳐냈는지를 다시 본다면 알수있을까? 사실 그건 유일무이한 일회적 감각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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