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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민령 Jan 05. 2017

차이와 우열

다양성을 대하는 자세

미국서 석사를 다닐 때, 미국인 친구들과 화장, 왁싱 같은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농담으로 "어쨌든 내 피부는 노랗다"고 말했더니 친구들이 엄청 당황했다. 마치 racism이라는 단어를 들은 것처럼 당황하면서 "네 피부는 노랗지 않아"라고 말해줬다.


그 아이들이 나를 생각해준 친절은 고마웠지만 나는 나대로 놀랐다. 나는 내 피부가 참 좋고, 백인처럼 하앟게 되기를 원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 걔들의 반응은 마치 피부가 희지 않다는 '차이'를 인정하는 게 '차별'이나 '열등'을 암시한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미국 있을 때, Women In Science and Engineering (WISE) 대학원 멘토로 잠시 활동했었는데 그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WISE 티셔츠에는 주먹을 불끈 쥔 팔이 엄청 파워풀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여자도 남자처럼 강하다" 뭐 이런 느낌의 멘트도 브로셔에 나와있었는데 이건 아니지 싶었다. 거기서 샤방샤방한 원피스를 입었다가는 맞아죽을 거 같은 느낌?


이런 방식의 접근은 여성의 이공계 진출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남녀차별을 간접적으로 강화시킨다. 여성성이라는 차이가 가지는 강점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심지어 남자들의 내면에도) 여성성이라고 하는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아니마와 아니무스). 이런 차이가 가진 강점을 통해 포용되고 협력할 길을 찾아야 할 텐데, 이래서야 여성성은 나약함으로 대표되는 반면, 남성성은 우월과 승리의 특성인 것처럼 보이잖아.


인종과 남녀가 아니라도 차이를 대하는 이런 방식은 제법 흔하다. 사자는 동물의 왕이라고 하면서, 사자가 먹고 남은 시체를 먹는 하이에나는 얕잡아보고 "하이에나 같은 것들"이라고 욕을 할 때 써먹는다. 사자건 하이에나건 각자의 차이를 활용해서 자기만의 위치를 확보하고, 생태계에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을 뿐인데도...


이처럼 차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차이를 우열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이 집단의 차이라고 여겨지는 경계를 넘으려할 때 (e.g. 흑인과 여성이 선거권을 얻고자 할 때, 백인 남성의 직업영역에 진출할 때) 배척의 근거로 (우열로 해석된) 차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건 "어디 하이에나 주제에 직접 사냥한 고기를 먹으려 들어!" (cf. 여자가 어디! or 저건 여자도 아니야) 랑 비슷하다.


아니, 하이에나도 직접 사냥하거나, 사냥감을 먹고 있는 사자를 집단으로 공격해서 뺏을 수 있지. 그건 남들이 뭐라고 평가하거나 못하게 할 게 아니라 하이에나 마음인 거다. 그러다 보면 종이 분화되기도 할테고... 그러면서 생명의 다양성이 증가해왔고, 생명의 끈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거잖아.


이렇게 차이를 포용하는 방법을 모르니, 차이가 곧 우열과 배척으로 읽힌다. 같지 않아도 대등할 수 있는데, 다르면 곧 동등하지 않다고 한다. 이러니 입으로는 다양성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계급간의 갈등, 인종간의 갈등, 남녀간의 갈등에 시달린다. 미국이건, 한국이건.


차이가 있더라도 서로 친해지는 방법은 없는 걸까?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뱀을 참 싫어한다. 뱀 혐오의 보편성은 진화적 설명까지도 있다. 그런데 동물을 아주 좋아하는 친구한테서 자기는 뱀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뱀의 알록달록한 색깔이 예쁘고, 뱀이 팔을 감고 올라올 때의 서늘함이나 근육의 느낌도 좋단다. 물리면 화나지 않냐고 했더니, 뱀이 어떨 때 왜 무는지 알기 때문에 아프긴 해도 밉거나 화나지는 않는다고 했다.


내가 뱀을 싫어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징그럽다, 위험하다, 다른 사람들도 대체로 싫어한다, 진화적 근거가 있다 등... 그런데 이 친구를 보고나서, 내가 이유로 들었던 사실의 어떤 것도 미워하거나 싫어할 충분한 근거가 되지는 못함을 깨달았다. 특징은 그저 특징일 뿐, 그 특징을 가졌다 해서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건 나의 판단의 문제였다.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이해한다면 좋아할 수 있고, 친해질 수 있고, 더불어 살 수 있지 않을까. (1) "쟤들은 왜 저럴까, 쟤들은 우리랑 이렇게 많이 달라" 처럼 차이에 집중하거나, (2) "너희랑 우리는 다르지 않아"처럼 있는 차이를 부정하는게 아니라, (3) "이렇게 같고도 다른 우리가 어떻게 하면 같이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면 다른 길이 열리지 않을까? 심지어 뱀도 좋아하고 친해질 수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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