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도깨비> 와 우리 신화
문화 보고로서의 전통 신화
드라마 <도깨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빨간 옷을 입은 삼신할매다. 미신이건 아니건 좋잖나? 나를 지켜주는 뭔가가 있단 건.
신동흔의 <살아있는 우리 신화>에 따르면 삼신할매는 출산의 경험이 없는 처녀라 한다. 그래서 출산이 힘들고 위험하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사산과 산모 사망이 많던 시절에 마음을 위로하고 화해할 통로가 되줬을 거다.
우리 신화
우리 신화에는 이런 측면이 많다. 선한 것과 악한 것, 합리적인 것과 불합리한 것들이 공존하는 것이 삶이다. 우리 신화는 그런 삶 속의 어떤 것도 제단하지 않고 포용한다. 내 생명이 일으키는 것, 내 인생길이 지나가는 것이 무엇이든 옳다거나 그르다고 분별하지 않고, 살 길을 찾아낸다.
예컨대 마마신 무리 안에는 억울하게 죽은 칠성이라는 아이가 있어서 다른 마마신들이 환자를 죽이지 않고 물러가게 달래준다고 한다. 마마신들 중에 저런 아이가 하나 있으면, 마마로 누군가가 죽었을 때 조금이나마 덜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인력으로 막기 힘들었던 마마를 두려워하기만 할게 아니라 정성껏 맞이하게도 되었을 것이다.
칠성이와 삼신할매가 자식잃은 부모를 위한 위로라면 오늘이는 부모를 여읜 고아에 대한 위로다. 오늘이는 허허벌판에서 학 한마리의 도움으로 자랐다.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저승의 부모를 상봉한 오늘이는 자신을 길러준 학이 부모가 보낸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오늘이는 자신을 도와준 이들에게 부탁받은 것을 해결해 주고자 훗날을 기약하고 삶으로 되돌아 온다. 부모가 없었기에 많은 부모를 두었던 오늘이는 나중에 사계절의 신이 된다. (영원을 관통해서 오고 가면서 새롭게 변하는 사계절의 또다른 의미는 시간, 영원이라고 한다. 재밌지 않나. 영원의 신의 이름이 오늘이라니)
원한에 사무쳐서 길을 떠났다가 복수를 끝내고 서천꽃밭의 주인이 된 한락궁이나, 어리석고 궁상맞기 짝이 없는 궁상이도 신화의 주인공이다.
굿: 신화를 전하는 종합예술
민간 신화의 제의인 굿 또한 화해의 측면이 강했다. 굿은 기복을 위한 미신적 제의이기도 했지만, 신화의 세계를 전하는 종합 예술이자, 풀어내고 용서하는 화해의 장이기도 했다.
예컨대 서울에서 매년 한번씩 했다는 어떤 굿에서는 굶어죽은 귀신, 처녀귀신 등 온갖 서러운 귀신들을 불러다 위로했다고 한다. 참 현명하고 따뜻해 보였다. 그런 굿을 하고 난 다음이면 거지들한테 욕이라도 한 마디 덜하고 밥이라도 한 숫갈 더 얹어주지 않았겠나.
한편 상이 났을 때 하는 굿에서는 망자가 가는 길을 시연하여 유족들이 망자를 떠나보낼 수 있게 돕는다. 망자의 못다한 이야기를 전하고, 유족이 못다한 이야기를 전하는 장면도 있다. 오늘날의 예술 치료나 싸이코 드라마같은 효과가 있었을 게다. 참으로 지혜롭지 않나. 어차피 검증도 못할 사후 미신이면 어떤가. 그것이 죽음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용서하게 하고 못다한 마음을 풀어내게 한다면.
마을 무당과 색동
지금의 우리한테야 무당이 섬뜩하다거나 사기꾼이라거나 멍청하다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예전에는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일제 시대에 한국을 다녀간 독일 선교사 베버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 나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를 보면 무당이나 서낭당의 색동과 비슷한 색채의 옷을 아이들에게 입혔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무당을 대할 때 느끼는 것과 같은 거부감을 그 시절의 사람들도 느꼈다면 아이들에게 무당과 같은 배색의 옷을 입히지는 않지 않았을까.
김금화 무당에 대한 다큐 <만신>의 마지막에는 애기 무당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무구를 만들 놋숫가락을 모으는 장면이 나온다. 재수없게 무당으로 타고 나서 무당으로 정해지는 게 아니라 온 마을의 참여로 마을 무당이 되어가는 것이었다.
우리 신화: 문화 컨텐츠의 보고
그리스 신화를 정말 좋아하는데 우리나라 신화는 그리스 신화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라는 느낌이다. 그리스 신화는 교양이라고 여기면서, 우리나라 신화는 천시하고 '미신이냐 과학이냐'는 논증 밖의 측면들까지 통째 내다버린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일본은 우리나라 민간 신앙을 강하게 탄압했지만, 정작 일본에서는 아직도 신사 참배를 하고, 온갖 미신이 성행한다. 모노노케, 여우신, 까마귀신 등 전통 신화의 주인공들은 문화 상품의 소재로 적극 활용되기도 한다. 포켓몬과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무것도 없는 데서 어느날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닌 것이다.
섹시 컨셉으로 일관하는 뱀파이어 보다야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은 도깨비와 저승사자가 정겨워서 좋다. 지은탁의 설정 때문인지 드라마 <도깨비>가 성장 동화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도깨비, 저승사자, 삼신할매만 갖고도 저런 드라마가 하나 만들어지고 조선왕조실톡도 그렇게 재미있던데, 기록의 민족이라는 우리나라, 그 온갖 기록들이 번역된다면 얼마나 다양한 소재가 펼쳐질까.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은 실제는 또 얼마나 흥미진진할 것인가. 하물며 그것이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일 때...
인공지능 번역기 어서 나와랏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