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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민령 Dec 21. 2018

<송민령의 뇌과학 연구소>는 어떤 책인가

책이 처음 출간된 지 1년여가 지났고, 마침 4쇄도 찍는 김에 <송민령의 뇌과학 연구소>를 한 번 더 소개할까 합니다. 책이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 소개하기가 어려웠거든요.


1. 나에 대한 관심, 인간에 대한 관심

사람들은 왜 뇌과학에 관심을 가질까요? 아마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 주변 사람들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내가 이러이러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주변 사람들이 이러이러했으면 좋겠다'는 소망 때문이기도 할 테구요.


그런 소망과 관심이 뇌와 관련된 널리 퍼진 오해 속에 녹아있습니다. 이를테면,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사랑은 화학 작용일 뿐이다", "마음과 몸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다" 같은 것들이지요. 이 오해들은 수십년 전에 뇌과학자들도 믿었던, 최근 들어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시민들에게는 전해지지 않은 내용이기도 합니다.


<송민령의 뇌과학 연구소>는 이런 오해와 질문으로부터 출발해서, 각 질문에 관련된 뇌과학 지식을 차근차근 풀어갑니다. 단순히 지식만 제공하면 나와 지식을 연관짓기 어렵고, 나와 연관되지 않은 지식은 배우려는 동기가 부여되기 어려우며, 기껏 공부해도 잊혀지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널리 퍼져서 이미 삶과 사회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오해와 질문으로부터 시작하면, 앎을 삶과 연결하기가 한결 수월합니다.


이렇게 삶에서 비롯된 질문과 오해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송민령의 뇌과학 연구소>는 뇌과학 지식이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함께 다룹니다. 그렇다보니 흔히 인문학적이라고 여겨지는 소재인 윤리, 제도, 가치, 인식틀 등도 일부 다루게 되는데요, 이렇게 과학과 인문의 조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2. 과학은 인문학적인 언설을 해서는 안 되는가?

반면에 과학자가 과학 지식이나 설명할 일이지, 윤리나 가치 문제까지 언급했다고 불편해하는 분도 있어요. “사회, 윤리 등 인문학적인 부분은 모두 인문학자에게 맡기고 이공계인은 과학∙기술과 관련된 활동’만’ 해야 한다”는 믿음은 20세기 후반까지 제법 널리 퍼져있었습니다. 어느 정도는 핵무기 등 과학∙기술이 가져온 위험에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고, 어느 정도는 과학∙기술을 정치적인 이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이며, 또 어느 정도는 인문학과 이공계 사이의 밥그릇 싸움  때문이기도 했겠지요.


하지만 과학∙기술이 아무리 정치 중립적이려고 해도, 사회 속의 모든 것은 정치적인 맥락 속에 있고 정치적인 효과를 갖습니다. 과학/기술이라고 예외는 아니지요.


이런 상황에서 과학∙기술 전문가가 윤리, 제도, 가치에 대해서는 일체 입을 다물면, 과학∙기술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며 과학∙기술에 대한 무게감(**)이 덜한 사람들에 의해 진화를 진보로 오인하는 것 같은, 틀린 해석이 확산/양산될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에 얽힌 중요한 사항이 결정될 수도 있구요. 그런 결정은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정책일 수도 있고, 남녀/인종에 대한 차별을 옹호하는 법률일 수도 있고, 백신에 대한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과학/기술이 얽힌 정치/사회 문제는 갈수록 늘어나겠지요.
 (** 과학∙기술에서는 물리적 근거를 가진 사실을 정확하게 전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황우석이나 오보가타처럼 비양심적인 사람이 생기더라도 이들을 찾아 처벌하는 자정 과정이 내부에서 일어나며, 이러한 자정 과정이 과학∙기술이 지금만큼의 신뢰를 획득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공계인들은 이 자정 과정에 결벽증에 가까운 당연함(?무게감?)을 가지고 있는데 어째서인지 과학∙기술 외부에서는 이 무게감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듯 합니다.)  


이에 따라 최근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과학이 정치중립적"이라는 표현 자체가 대단히 정치적이며, 이 환상을 깨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지난달 Science에 추천된 신간 도서 중에는 <The myth of apolitical science>이 있었습니다 [1]. 과학과 대중의 소통 분야(Science communication)에서도 과학이 정치중립적일 수 없음을, 과학자가 이를 염두에 두고 활동해야 함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2-3].


과학∙기술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커짐에 따라, 과학∙기술의 윤리적인 사용을 도모하는 활동에 이공계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합니다. 내가 업으로 삼는 일이 내가 살아가는 사회에, 다른 누군가의 삶에 나쁜 영향을 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드물 테니까요. 뇌과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구성한 신경윤리학회, AI 드론의 군사적 이용에 반대하는 구글 개발자들의 저항 등이 그 예입니다 [4-5].


3. 뇌과학과 (한국)사회의 만남

특히 뇌과학은 나에 대한 이해, 너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이해에 깊이 관련된 학문입니다. 그렇다보니 교육, 법률, 철학, 윤리, 마케팅, 경제 등 여러 분야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새로운 뇌과학 발견이 기존의 상식을 흔들면서 혼란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알파고는 그저 저장된 데이터를 불러왔던 것 아닐까?" "알파고가 실수를 했던 게 아닐까?" "자아/자유의지/의식은 환상일까?" "약으로 학습 효율을 높일 수 있을까?" "뇌가 손상된 사람이 죄를 저지르면 무죄라고 볼 수 있을까?" 등이 그러한 예입니다.


혼란의 상당 부분은 네트워크인 뇌를 '독립적인 부분들의 합'이라고 잘못 이해하는 데서 생깁니다. 최신 인공지능은 인공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work)을 활용하고 있는데요, 인공신경망을 이해하면 최신 인공지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뇌가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생기는 특징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송민령의 뇌과학 연구소>의 중간 부분은 인공지능을 소개하면서, 뇌가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생기는 특징들, 뇌과학과 사회가 만나면서 생긴 혼란들을 짚어갈 수 있게 구성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뇌과학 지식이 가진 함의, 관련된 제도, 윤리, 철학적인 문제들을 함께 다루었습니다. 뇌과학을 잘못 이해해서 생긴 사례들, 뇌과학을 확대/왜곡한 사례들도 소개했구요.


또 미국/유럽 등지에서 이루어졌던 논의들 중에서 한국 사람들이 특히 공감하기 쉬운, 한국의 상황에 맞는 주제들을 선별했습니다. 예컨대 신경윤리학을 다룬 16장에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관심을 가질만한 교육과 경쟁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맥락을 함께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탁월한 fast follower인 우리 나라는 흔히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이 중요시하는 문제에 관심을 갖곤 합니다. 하지만 문제란 실제의 사실이 아니라 누군가의 인식틀을 거쳐 구성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문제를 따라가다 보면, 다른 맥락과 다른 인식틀을 가진 우리로서는 영문을 모르기 쉽습니다.


나의 필요에서 비롯되지 않았고 맥락을 이해하지도 못한 질문에 대한 답은, 아무리 훌륭한 답이어도 삶을 바꿔내는 원동력을 갖지 못합니다. 루이비통 핸드백처럼 사치품에 그치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그들의 문제와 그들의 답을 그대로 가져오기 보다는, 우리의 시선으로 그들의 맥락과 그들의 문제를 분석하려고 했습니다 (예: 10, 11, 13 장).  이것이 외국에서 출간된 과학 서적은 하기 어려운, 한국에서 출간된 과학 서적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4. 시민 과학

다수의 시민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과학 연구가 늘어남에 따라, 과학을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는 활동인 과학 대중화를 넘어,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public engagement)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과학∙기술을 시민들이 몰라서도, 그래서 과학∙기술에 관련된 일에 시민들이 아무 주장도 못해서도 안될 테니까요.


최근 국내외에서 시민 사회와 과학의 상호작용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이런 맥락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과학∙기술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이공계인이 늘어났고, 과학∙기술에 흥미를 느끼는 시민들이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요.) 그래서 <송민령의 뇌과학 연구소>의 끝 부분은 의도적으로 시민 참여(public engagement)에 집중했습니다.


사회에서 과학과 관련된 어떤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시민들의 과학 지식이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과학의 특성을 오인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과학은100% 확실하고 절대 불변하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지요. 그래서 과학의 과정을 설명하고, 책임있는 과학 연구를 위해 중요한 사항들을 안내했습니다. 이 중에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통해 한국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이해 상충(conflict of interest)도 포함됩니다.


인공지능의 빠른 발전을 지켜보며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았기에, 시민들이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서 피동적인 관객이 아니며,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고 그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음도 안내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과학/기술 용어의 번역이 중요한 이유, 번역이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지식의 생산 과정인 이유도 소개했구요.


'장님 코끼리 만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만, 사회란 장님들이 코끼리를 함께 타고가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각자 자기 분야만 아는 장님들이 왁자지껄 자기가 옳다고 떠들면서, 그러다가 우생학처럼 위험한 주장에는 적당히 제동도 걸고, 어쩌다 한번씩은 맞는 소리도 해가면서 어찌저찌 코끼리를 타고가는 거지요. 저도 제 전공이 아닌 분야에서는 장님이기에, 두려워만 하지 말고 자신있게, 그리고 함께 살아갈 방법을 나누고자 했습니다.


5. 마무리

대단히 감사하게도 <송민령의 뇌과학 연구소>는 2017년 아태이론물리센터(APCTP) 올해의 과학 도서에 선정되었고, 58회 한국출판문화상 본심에 올랐습니다. '과학책'하면 '문송한 사람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쉬운가요?'에만 방점을 두는 경우가 많은데요, <송민령의 뇌과학 연구소>가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과학적인 내용을 쉽게 설명했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과학∙기술의 연구와 적용에서 시민 사회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시점에, 가짜 과학이 갈수록 문제가 되는 시점에, 이런 요구들에 부응하려고 조금이나마 노력한 흔적이 담겨있기에  (그러기 위해서 뇌과학뿐만 아니라 가치, 윤리 등 흔히 인문학적이라 여겨지는 내용도 담아냈기에) 감사하게도 상을 받을 수 있었고, 책을 좋아하는 독자님들도 생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과학이 문화이자 라이프 스타일이 되어가기를 바랍니다.


* 관련 자료

[1] http://science.sciencemag.org/content/362/6418/1006.1.summary
[2] https://www.pnas.org/content/110/Supplement_3/14040
[3] https://www.nap.edu/catalog/23674/communicating-science-effectively-a-research-agenda
[4] http://www.thedrive.com/tech/21281/google-halts-a-i-drone-deal-with-pentagon-following-staff-protests
[5] https://www.neuroethicssociet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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