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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민령 Aug 28. 2016

매월당 김시습

세상 맛은 여러 갈래지만
나는 그대로 있어,
이 몸은 천지간에 하나의 병신이구나.
산속 서재엔 해가 한낮인데
일도 없이 고요해서,
누운 채로 뱃속에 든 일천 권 책을 볕에 말린다네.


매월당 김시습의 시다. 김시습이 어찌 살다갔는지 혹시 아는가? 금오신화의 이야기들이 신비로운 탓인지, 김시습의 말년은 최치원처럼 알려진 바 없다고 여겼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김시습이 죽은지 89년 되던 해 (1582년)에 선조가 이율곡에게 김시습전을 지어 바치라 명했다. 김시습전에 따르면, 재판하는 마당에 들어가 굽은 것이 곧다고 궤변을 늘어놓고는 재판에 이겨 판결문이 나오면 너털웃음을 지으며 판결문을 찢어버리기도 하고, 장바닥 아이들과 어울려 거리를 쏘다니다 술에 취하여 쓰러지기도 하고, 지나가는 영의정을 보며 큰 소리로 "이놈아, 그만 물러나라." 외치는 등 기행을 일삼았다 한다.


문장이 빼어났고, 유교와 불교의 깊은 이해에 통달하였으나 배움을 청하여 오는 이가 있으면 쫓아버렸고, 그림이나 시를 지어 놓고는 통곡을 하면서 태워버리곤 했다 한다. 매월당이 타계한 것이 1494년이니 제법 훌륭한 군주로 일컬어지는 예종과 성종 (재위: 1469-1494) 시대까지 살았다는 이야기인데, 무엇이 그토록 괴로웠던지 그는 끝내 세상에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


5살난 아이에게 늙을 로자로 시를 지어 보라는 짖궂은 요청에 "늙은 나무에 꽃이 피었으니 마음만은 늙지 않으셨네요" 하던 그 예쁜 아이는, 비단 50필을 내린 세종이 "재주를 감춰두고 부지런히 교양을 닦게 하라"던 신동은, 김시습의 말년 속에서 찾을 수 없다. 유교에서는 나서야 할 때와 물러나야 할 때를 알라고도 가르친다마는, 하다 못해 그는 공자처럼 제자를 길러내지도 못했다. 어딘지 현실과는 거리가 먼 금오신화처럼, 세상에 발딛지 못해 떠다니고, 가누지 못한 마음을 술주정인양 비난인양 늘어놓다가 갔다.


김시습과 동시대를 산 이들 중에 사육신이 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왕이 된 세조에게 맞서는 일은, 목숨을 걸지 않고는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게다. 그러나 아무도 사육신이 자살을 했다고는 하지 않는다. 목숨걸고 극지를 탐험한 아문센도, 처자식까지 죽이고 나선 계백도 자살을 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차라리 나에게는 김시습이 산 채로 자살한 걸로 보였다.


지난 2월인가.. "세상 맛은 여러 갈래지만 나는 그대로 있어... 뱃속에 든 천권의 책을 볕에 말린다네" 하는 저 시를 보고 얼마나 무서웠던가 모르겠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면서도 시선을 땔 수 없어 여러번 읽었었다. 벌써 몇년이 지나도록 준비해오면서도 머뭇거리기만 해온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절대로, 저렇게는 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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