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는 어느 계절, 어느 빛깔의 사람일까?

여름과 바다, 그리고 심플 라이프와 미니멀 라이프 

며칠 전, 찰리 호은(Charlie Hoehn)의  <Play It Away: A Workaholic's Cure for Anxiety>를 읽었습니다. 그는 <나는 (일주일에) 4시간만 일한다>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자기계발 연설가인 팀 패리스를 도와 수많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나, 그 과정에서 일중독자가 되어 번아웃 상태에서 모든 일들을 접어 버리고 침체기에 들어갑니다. 그는 완전히 무기력해지고 삶의 의미를 상실한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명상이나 요가, 운동이나 치유 프로그램 등 해볼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시도해 보았으나 실패합니다. 그리고 "삶은 원래 이렇게 구역질나는 것이 분명하니, 이런 삶을 끝낸들 무엇이 잘못되겠는가?"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되지요. 그러던 그가 어느날 친구의 집을 방문했다가 서재에서 발견한 책 한 권이 그의 삶을 통째로 바꿉니다. 바로 스튜어트 브라운의 <놀이, 즐거움의 발견>입니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결여된 것이 바로 놀이(play) 그리고 그것에서 비롯되어야 하는 즐거움(joy)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 때부터 그는 코메디 클럽에 가입해서 시시껄렁한 코메디를 하면서 배꼽이 떨어져라 웃고, 친구들을 만날 때면 술을 마시거나 커피를 한 잔 들이키는 대신 캐치볼 놀이를 하면서 놉니다. 그는 놀랍게도 짧은 기간에 다시 활달하고 긍정적인 그의 본래 자아를 회복하게 됩니다. 그런 과정을 좀 더 세심하고 체계적으로 다루어서 내놓은 책이 바로 위에 언급한 <Play It Away>입니다. 단순히 "놀자"가 아니라, "놀아서 부정적인 모든 것들을 떨쳐내자"가 이 책의 핵심 주제이겠지요. 물론 직장을 팽개치고 어린아이처럼 놀이터에서 시간을 때우자는 주장이 아닙니다. 삶의 균형을 회복하자는 뜻이겠지요.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책입니다만, 핵심 주제는 이미 TED 강연에서 잘 드러났습니다. 아래에 링크를 공유하겠으니, 관심있는 분들께서는 시청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MP8h7fPpoY 

하지만 오늘 글의 주제는 놀이가 아닙니다. 물론 놀이와 깊이 관련되어 있지만 말이죠. 찰스 호은은 책의 후반부에서 "자신의 타고난 기질에 맞게끔 즐겁게 살 수 있는 곳을 찾아서 보금자리로 삼으라"고 권합니다. 실제로 시골 출신이었던 그는 뉴욕이라는 대도시가 맞지 않아 고통을 겪다가, 결국 텍사스 오스틴으로 이사갑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자신의 타고난 기질에 어울리는 평온하고 자연친화적인 삶터를 찾았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독자들에게도, 당장 직장을 때려치고 이사가지 않아도 좋으니 주말에 시간을 내서라도 살고 싶은 동네를 끊임없이 물색해보라고 주문합니다.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요구를 실천하는 데에는 현재 삶의 전체를 걸 수 있을 만큼 큰 도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죠. 부산 해운대 출신인 저는 고향에 내려가 살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순간도 접은 적이 없지만, 제 직장은 엄연히 서울에 있고 당분간은 이런 현실에 변화가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단 자신의 진정한 기질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 기질에 따라 살 수 있는 장소와 현재 직장을 조화시키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나쁠 것이 없겠지요. 그러려면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진정 좋아하고 즐기는지를 분명히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저는 부산 해운대 출신입니다. 물론 부산 해운대에서 태어나고 자랐다고 해서, 모두가 바다와 여름을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저는 누가 봐도 분명한 아이덴티티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이 나이 마흔이 넘도록 단 한 순간도 변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네 개의 계절 가운데 여름을 가장 사랑하며, 여름 바다를 좋아하고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마음껏 뛰놀고 지쳐 쓰러질 때까지 춤추고 노는 것을 좋아합니다. 돌이켜 보면, 저는 삭막한 현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이런 야만적인(?) 기질을 끊임없이 부정하며 살아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이 기질에 이겨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일단 여름 기질을 타고났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여름을 싫어합니다. 덥고 땀나고 뭔가 싫다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제 주변에 여름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수리가 탈 듯 뜨거운 태양을 매우 사랑합니다. 타고난 기질로 말하면, 저는 더위를 타지 않습니다. 그냥 타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체온에 가까운 땡볕에서 몇 시간을 걸어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피부가 지글지글 타들어가는 그 기분을 즐깁니다. 물론 껍데기가 벗겨질 정도로 자외선에 노출되어서는 안되지만 말이지요. 이야기를 보태자면, 피부도 잘 벗겨지지 않습니다. 아토피 피부염으로 인해 한 때 사회생활을 포기하고 산 속에 기어들어갔으며 지금도 피부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그리고 저는 땀 흘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건강하게 땀 흘린 뒤 시원하게 샤워하고 깔끔하게 옷을 갈아입는 것을 좋아합니다. 땀내를 풍기면서 대중 장소에 갈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말이죠. 


그리고 이런 여름 사나이 체질은 자연스럽게 여름 바다와 여름 축제, 그리고 춤과 음악을 사랑하는 데로 귀결됩니다. 저는 여름과 바다를 떼놓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일본 영화와 드라마를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일본 문화를 즐기시는 분들은 잘 아시지만, 일본에는 유독 여름(나츠)과 바다(우미), 청춘(세슌), 축제(마츠리) 등을 연결한 만화나 소설, 영화나 드라마가 많습니다. 제게도 이런 단어들의 연결은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름 해운대에서 어린아이처럼 뛰놀며 술을 마시고 수영하며, 밤에는 음악과 춤을 즐기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씹선비'들이 차고 넘치는 동양철학 그 가운데에서도 유학(Confucianism) 분야를 제 일터로 삼으면서부터, 저도 모르게 제 기질을 억누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나이도 있으니 철이 들어야 하며, 여름이나 바다, 춤과 노래, 음악과 술을 즐기는 것은 한 떄의 추억으로 돌려야 한다는 생각이 제 인식의 전반에 자리잡았습니다. 저는 찰리 호은처럼, 갈수록 삶의 의미를 상실했고 무엇보다 인생이 지루하고 따분해졌습니다. 삶은 무엇보다도 지루하거나 따분하지 않아야 합니다. 물론 모든 이들의 삶은 힘듭니다. 하지만 힘들다고 해서 따분하거나 무의미해서는 안 됩니다. 삶의 8/10이 힘들고 지루하더라도, 적어도 2/10만큼은 가슴이 뛰고 내일 눈뜨더라도 기대되는 바가 있어야만 합니다. 삶에는 제가 통제할 수 없는 면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나 가족의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 예기치 못한 사업 파산, 의도치 않은 인간 관계 상실, 피치 못할 자연 재해 등이 제가 통제할 수 없는 불행을 가져다 줍니다. 하지만 제가 통제할 수 있는 인생의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앞선 여러 불행들 또한 그것들을 대하는 제 태도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다만, 삶의 모든 면에서 긍정적이기 위해서는 우선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분명히 파악해야만 합니다. 자기 자신을 부정해서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으니까요. 찰스 호은의 조언에 힘 입어, 저는 제게 어울리는 계절과 빛깔을 다시금 확정했습니다. 사실 너무나 오랫동안 알고 있었던 사실이라, 단 몇 초도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저는 여름 사나이이며, 여름에 어울리는 파란 색을 가장 좋아합니다. 저는 바닷가 근처에서 살고 싶으며, 여름 해변을 상징하는 레게 음악과 칵테일을 함께 하며 밤새도록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그것들과 관련된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런 기본적인 체질은 심플 라이프(simple life) 및 슬로 라이프(slow life)와도 연결됩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진정으로 바닷가에서 "어린애처럼" 뛰어놀고 싶은 사람은 비싼 요트나 간지 나는 해변 레스토랑 또는 눈이 번쩍 뜨이는 파이브 스타 호텔이 필요 없습니다. 저는 이십 대때부터 이미 배낭 여행을 좋아했으며, 지금도 배낭 여행 스타일로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는 것을 선호합니다. 게임에는 잼병이지만,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과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하는 것은 좋아합니다. 기본적으로 단순한 삶을 즐기는 사람만이 진정 "어린이" 또는 "어른이"로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삶을 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철부지들은 필연적으로 쳇바퀴 돌듯 사는 fast life를 견뎌낼 수 없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정신 없이 돌아가는 삶에 지쳐 살아갑니다. 하지만 체질상 유달리 그런 라이프 스타일을 못 견디는 사람들이 따로 있습니다. 그들의 의지력이 부족하다거나 정신이 미숙해서가 아닙니다. 그냥 체질상, 남달리 못 견디는 것 뿐이지요. 이런 튀는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은 세상을 비난하거나 탓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이번 생애에서는 이렇게 생겨먹었으니, 단 한 번 사는 인생을 경제적으로 소박하게 살지라도 기질에 맞게 신나게 살아야겠다고 스스로 다독여야만 합니다. 절대 자신을 포함한 누구도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저도 그래봤는데, 달라지는 것은 없었고 제 삶만 더욱 피폐해지고 비참해졌으며, 남달리 밝았던 제 성품 또한 꼬질꼬질해졌습니다. 물론 지금 제 라이프 스타일이나 삶의 터전을 당장 뜯어고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미 사람의 상당한 영역에서 제 기질에 따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삶의 나머지 부분 또한 "제게 맞는 놀이"로 바꾸는 것이 제게 남은 일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2023년 5월 16일, 반팔을 입지 않고서는 걸어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기온이 한껏 올라갔습니다. "나를 위해" 기쁨의 철학, 즐거움의 철학을 연구해서 내면화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오늘 하루를 시작해봅니다. 요즘 일본과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후지이 카제의 <축제(마츠리)>를 링크하며 오늘 글을 마무리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En7_BkpMII

매거진의 이전글 230430 원통시외터미널에서 속초시외터미널까지 걷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