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턴시 첫 번째 월말평가 온라인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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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글에 이어)
QWER과 함께 걸밴드 전성시대를 본격적으로 활짝 펼칠 밴드 가운데 하나인 '레이턴시'는 2025년 11월 17일 월요일 저녁, 홍대 소규모 라이브 하우스인 '롤링 홀'에서 첫 번째 평가 무대를 가졌습니다. 이름하여 '월말 평가.' 저는 레이턴시 유튜브 채널 구독자임에도 불구하고 신청 기회를 놓쳤습니다. QWER 팬들은 공식 팬카페 공지사항만 읽어 보면 되니, 제가 그동안 편하게 덕질했었네요.
레이턴시 멤버들에 따르면, 소속사인 오디너리 레코즈(Oddinary Records)에서는 말렸다고 합니다.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데다 멤버들이 상처를 입을까 염려했겠죠. 하지만 아이돌 경력 도합 42년의 레이턴시 멤버들은 확실히 보법이 달랐습니다. 밴드야말로 라이브 무대라는 실전 경험을 통해 급성장할 수 있으며,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커가는 것이 '성장형 서사'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죠.
레이턴시 멤버들은 QWER 멤버들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압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QWER의 경우, 4명의 멤버 모두가 케이팝 아이돌과는 관련이 없었습니다. 시요밍을 제외한 3명은 인플루언서였으며, 시요밍은 오사카 아이돌이었죠. 반면에 레이턴시는 리드 기타인 희연을 제외한 4명의 멤버가 모두 케이팝 아이돌 출신이죠. 지금까지 쌓아왔던 경력과 전혀 상관없이 새로 출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짜 연습생처럼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야말로 성장형 서사가 가능한 조건이죠. 만약 준비가 완벽히 되어 있다면, 이미 '성장형 걸밴드'가 아니니까요. 처음에는 미숙했지만 점차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팬들은 감정이 이입되어 진심으로 응원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성장형 걸밴드의 경우, 실력이 부족한 초창기 공연은 '흑역사'가 아니라 성장을 위한 밑거름입니다. 영상을 많이 찍으면 찍을수록 좋죠. 실제로 QWER 콘텐츠도 초창기 '우당탕탕'이 오히려 조회수가 높습니다.
한편 레이턴시 멤버들은 '보이지 않는 연습실에서 치열하게 훈련한 뒤, 가장 완벽한 결과물만을 관객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케이팝 아이돌의 마인드셋을 극복 중이라는 점이 느껴집니다. 물론 내면화한 압박을 극복해 내는 과정이 레이턴시만의 '성장형 서사'겠죠. 케이팝 아이돌로 오랜 세월을 살아온 여성 뮤지션이 이제 그 마인드셋 자체를 극복해 나가는 일대기. 아니, 대한민국 전체를 병들게 만드는 '완벽주의'를 제로 베이스에서부터 지워 나가는 서사시.
그리고 평일 그것도 월요일 저녁에 상수역 롤링 홀을 찾은 관객들은 레이턴시의 기를 죽이러 온 것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그녀들에게 애정이 있고 그녀들을 한껏 응원해 주기 위해 찾아온 귀한 손님들이죠. 그 자리에서 레이턴시의 기를 죽인다면, 사람이 아니죠. 아니나 다를까, 그날 롤링 홀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한파 속에서 장시간 대기했으면서도 입장 후에 따뜻한 응원으로 멤버들의 힘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uHJJdxGSTQ
레이턴시는 이 날 총 3곡의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오프닝은 데이식스의 <예뻤어> 커버 무대였습니다. 레이턴시는 [못쳐 도 락] 시리즈 1화에서 <예뻤어>로 오디션(?)을 봤죠. 그 당시에는 QWER 초창기 연습실 공연만큼이나 어설펐습니다. 전문 기타리스트인 희연이 들어오기 전이기도 했고요. 그러나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레이턴시는 <예뻤어> 무대를 멋지게 해냈습니다. 메인 보컬이 3명이나 되는 강점을 이용해, 가창력으로 승부를 보았죠. 악기 연주는 아직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았으나, 오랜 세월 트레이닝을 받은 보컬은 완벽했습니다. 특히 화음을 쌓아 나가는 부분이 매우 좋았네요.
이어서 그녀들은 두 번째 무대로 일본의 '오피셜 히게단디즘(Official髭男dism)' 밴드의 곡인 <프리텐더(Pretender)>를 연주했는데요. 저는 여기에서 키보드를 맡은 하은의 색다른 매력에 매우 놀랐습니다. 시그니처의 초창기 메인 보컬이었던 그녀는 서로 다른 두 종류의 키보드를 바쁘게 소화하면서도 보컬에 매우 여유가 있었습니다. 특히 제이팝 스타일의 곡에 무척이나 어울리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죠. 고음 파트에 강점이 있었으며, 목소리가 아주 시원하게 뻗어나갔습니다. 어느 밴드나 아이돌 그룹을 가도 메인이 될 수밖에 없는 보컬이었습니다.
세미 또한 케이팝 아이돌 특유의 맑고 아름다운 고음이 돋보였습니다. 밴드 신에서 케이팝 아이돌 창법으로 부르니 그야말로 독특한 창법이었죠. 리듬 기타를 연주하는 지원과 드럼을 맡은 현진 또한 탄탄한 보컬 기본기를 보여주며, 이 팀이 도합 42년 관록의 아이돌 팀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한편 리드 기타리스트인 '희연' 또한 보컬에 참여해서 객석을 놀라게 했는데요. 확실히 오랜 세월 트레이닝을 받은 여타 멤버들에 비해 발성이나 성량, 안정성 측면에서 많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멋진 중저음의 톤을 지니고 있어, 반드시 역할이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기타 실력이야 물론 발군이죠.
그리고 레이턴시에서 시그니처 지원을 전면에 세운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악기 실력과 상관없이 무대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즐거운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주역이 다름 아닌 지원이었기 때문이죠. QWER의 마젠타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흑발로 통일된 팀 내에서 유일하게 밝은 노랑머리를 고수했습니다. 그리고 시요밍처럼 부지런히 움직이며 멤버들의 에너지를 띄웠습니다. 물론 본인도 유명한 에너자이저죠.
악기 연주 실력과 무대 퍼포먼스는 정비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라이브 무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관객들을 만족시키느냐'겠지요. 레이턴시 멤버들의 아이돌 경력은 헛된 게 아니었습니다. 그녀들은 연습한 지 고작 3개월 만에 무대에 섰지만, 악기를 연주하면서 보컬을 소화했습니다.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죠. 예컨대 3, 4개월 기타를 배운 초짜는 첫 무대에서 고개도 들지 못합니다. 아니, 1년 이상 무대에 서도 고개를 처박고 기타만 보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3개월 초짜인 지원은 기타를 연주하면서 보컬을 소화하고, 리드 기타인 희연과 마주 보고 연주를 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항상 밝게 웃고 있습니다. 이건 정말 '본 투 비 퍼포머(born to be performer)'라고 할 수 있겠네요. 2024년 [카스쿨 페스티벌]에서 QWER 공연 이후에 시그니처가 나왔죠. 그 당시 '워터밤 여신'으로 주목받았던 지원이었지만, 무대 공연자로서 지닌 그녀의 능력은 오히려 밴드에서 돋보이네요. 향후 실력이 향상되고 무대가 익숙해짐에 따라 다른 멤버들도 스테이지에서 한껏 끼를 발산하겠죠. 하지만 당분간은 지원의 무대 장악력이 관객을 사로잡는 관건이 될 듯합니다.
마지막 곡은 깜짝 발표된 그녀들의 신곡인 <사랑이었는데>입니다. 레이턴시 멤버들은 "아이돌 때에는 사랑 노래만 불렀는데, 밴드가 되어서는 사람들에게 힐링이 되는 음악을 하고 싶다!"라고 포부를 밝혔었죠. 그런데 첫 번째 곡이 <사랑이었는데>라서 저는 그만 웃고 말았습니다. 이런 게 바로 한 치 앞도 예상이 안 되는 인생의 매력 아니겠습니까!
<사랑이었는데> 무대에서 저는 드럼을 맡은 현진을 계속 주목했습니다. 아니, 콩나물(음표)이 넘쳐나는 <프리텐더> 무대에서부터 쭉 그랬죠. 사실 드럼은 밴드의 등뼈이자 골수입니다. 드럼이 무너지면 다른 악기 파트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게다가 드럼은 익혀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아 배우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경력직을 쓰는 게 일반적입니다. 이 때문에 드럼 전공자인 쵸단으로 QWER을 시작한 것은 정말 신의 한 수였습니다.
그런데 걸그룹 '이달의 소녀' 출신의 현진은 드럼 경력이 없습니다(중학교 연습생 때 잠깐 배운 적이 있기는 하지만). 3개월 연습만으로 그녀는 홍대 라이브 클럽 무대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촬영되어 향후에 영상으로 업로드될 무대에 말이죠. 하지만 화면상의 그녀는 배짱과 자존감이 대단했습니다. "<프리텐더>는 3개월 연습한 드러머가 해낼 수 있는 곡이 아니라는데 제가 해냈으니, 더욱 자신감이 생겨요!" 언니, 너무 멋지잖아! 이게 진짜 걸크러시잖아!
듣자 하니, 현진은 MBTI가 E이며 운동 신경이 뛰어나고 평소에도 도전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이라 합니다. 무대에서 돋보이지도 않고 무척이나 어려운 위치인 드러머를 현진이 자청한 것 또한 레이턴시의 행운입니다. 또한 그녀는 가장 여리고 맑은 소녀 스타일의 목소리를 지녔는데요. 세미와 하은의 크고 강한 목소리와 대비되어, 또 다른 매력을 주었습니다. QWER과 마찬가지로, 이 팀 또한 보컬의 목소리가 다양해서 여러 스타일의 곡이 가능할 듯했습니다. 전반적으로 제이팝에 어울리는 보이스를 지녔네요.
그녀들의 첫 번째 월말평가 무대를 본 제 총평은 "레이턴시는 무대를 할 줄 안다."입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악기 연주 실력과 무대 퍼포먼스는 정비례하지 않습니다. 그녀들은 수많은 대형 무대 경험이 있으며, 무대에서 어떻게 해야 관객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비록 악기 경력이 많이 부족하지만, 악기를 잘 다룬다고 해서 관객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게 아니죠. 레이턴시는 기본적으로 멤버들의 무대 퍼포먼스가 뛰어납니다. 여기에는 표정과 눈빛, 관객과의 소통, 무대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동작과 외침 하나하나가 모두 포함됩니다.
아이돌 경력 도합 42년의 중고 신인이 밴드라는 새로운 장르에서 늦깎이 데뷔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녀들의 결기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이 때문에 그녀들의 워크 에씩(work ethics)은 전혀 걱정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수많은 댓글이 지적하듯이) 그녀들의 소속사인 '오디너리 레코즈'에게 아쉬운 점이 다소 있습니다. 물론 레이턴시의 데뷔를 가능케 해 주었다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일입니다. 지원 또한 "오디너리 레코즈, 최고! YEAH!"라고 말했으니까요. 그러나 가수와 소속사가 모두 잘 되라는 노파심에, 제 견해를 정리해서 여기에 남겨 봅니다.
저는 지난 몇 달 동안 레이턴시의 영상을 보면서, QWER의 소속사인 3Y코프레이션과 김계란이 얼마나 엄청난 역량을 지니고 있는가를 실감했습니다. 확실히 QWER의 성공에는 소속사인 3Y의 콘텐츠 제작 능력이 결정적 요인이라고 봐도 될 듯합니다. 과거에도 그렇게 느꼈지만, 지금 와서 보니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레이턴시는 '성장형 걸밴드'를 표방하고 있고,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게다가 QWER과는 전혀 다른 성장 패턴을 보이고 있습니다. QWER은 음악과 전혀 상관없는 분야에서 일하던 멤버 및 일본 아이돌로 활약하던 보컬이 만나 팀을 구성했습니다. 반면에 레이턴시는 전문 기타리스트인 뚱치땅치(희연)를 제외하면 모두 국내에서 아이돌 생활을 7년 이상 한 베테랑들입니다. 케이팝 아이돌이 밴드 아이돌, 더 나아가 걸밴드로 거듭나는 과정은 QWER과는 전혀 다른 서사이며, QWER 못지않게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QWER의 소속사가 멤버들의 데뷔 과정을 [최애의 아이들], [민머리극장] 등의 다큐멘터리로 상세히 묘사했던 반면, 레이턴시의 소속사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물론 '오디너리 레코즈'는 [못쳐 도 락!]이라는 6개의 에피소드를 지금까지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레이턴시 멤버 개개인이 연습 과정에서 겪는 고통스럽고도 희망적인 서사가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시그니처 지원 등의 멤버는 매우 유명하기에, 새로운 도전 자체가 굉장한 서사입니다. 공식 데뷔 전까지 레이턴시 멤버들의 고뇌 및 노력이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방영되며 차근차근 빌드업이 되어야만, 레이턴시는 데뷔 때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성장형 밴드의 초창기는 '실력'이 아닌 '서사'가 핵심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레이턴시 멤버 개개인 및 팀의 서사를 쌓아 올리는 과정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소속사의 행보가 매우 아쉽습니다.
하지만 저는 3Y코프레이션보다 서사를 잘 쌓는 연예기획사는 현재 대한민국에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게다가 레이턴시는 아직 공식 데뷔 전이기도 합니다. [못쳐 도 락!] 다큐멘터리가 6회로 끝났으니, 향후 공식 데뷔 때까지는 5명의 멤버 및 팀의 서사를 꾸준히 쌓는 편이 좋습니다. 물론 여기서 쌓는다는 것은 영상 등의 구체적인 결과물이 꾸준히 업데이트된다는 것을 의미하죠.
한편 레이턴시의 멤버들 대부분은 하나 이상의 걸그룹에서 활동했습니다. 분명히 기존 팬들이 적지 않을텐데, 그들을 레이턴시의 팬으로 묶는 노력이 부족합니다. 따라서 레이턴시에게 조금이라도 호기심이 있는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구심점을 한시바삐 마련하고 홍보해야만 합니다. 뭐라도 구심점을 만들어 놓아야, 능력자 팬들이 등장해서 소속사의 미숙함을 메꿔줄 가능성이 생기거든요. QWER 유니버스(QWER+바위게+3Y코프레이션)가 정확히 그런 케이스죠. 소속사의 경험이 부족하다면, 3Y코프레이션의 행보를 참조하면 됩니다. 후발주자의 장점이 바로 이런 것이죠. 선발주자가 고생하며 만들어놓은 패턴을 참고할 수 있으니까요.
QWER의 소속사인 3Y코프레이션은 연예기획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QWER이 급속성장하는 바람에 코가 깨지면서 배웠습니다. 팬들보다 늦게 공지를 올리는 등 욕도 많이 먹었죠. 인지도가 있는 아이돌들을 모아 밴드로 데뷔시켰으니, 오디너리 레코즈도 이제 정신 바짝 차리고 영혼을 갈아넣어야 합니다. 죽어라 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기존 팬들에게 미운 털이 박혀, 오히려 손해만 볼 것입니다. 되돌아가는 선택지는 없으니, 오직 최선을 다해야 할 뿐입니다.
향후 세계적으로 걸밴드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걸밴드 애니메이션에 익숙해질 것이기 때문이죠. 실제로 <봇치 더 록!>과 <뱅드림> 애니메이션의 성우들이 만든 밴드의 경우, 2025년 12월에 내한 공연을 가집니다. 어느 정도의 수요가 예측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행보지요. 이런 분위기는 분명히 QWER과 레이턴시에게 유리합니다. 이들이 글로벌 댄스 아이돌을 넘어서는 초대박을 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과 일본, 아시아 각국을 넘나들며 지속가능하게 음악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익을 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이죠. 이 때문에 저는 QWER 팬덤인 바위게의 한 사람으로서, 레이턴시의 성장 및 성공을 적극적으로 응원할 것입니다.
사실 레이턴시가 홍대 소극장인 '롤링 홀'에서 월말 평가를 진행한 것은 어쩌면 바위게들이 QWER에게서 보고 싶었던 성장 단계 중 하나였을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제게는 그렇습니다. 길거리 버스킹과 소규모 라이브하우스에서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성장해 '무도관'을 정복하는 것이 왕도물의 정석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QWER 콘텐츠 프로듀서인 '빙빙'도 말했듯이, QWER은 어찌 보면 너무 빨리 성장했습니다. 당연히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지만, 3Y코프레이션이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성장형 밴드의 단계들이 많이 생략되었죠.
레이턴시는 이런 면에서 볼 때 오히려 왕도물의 정석을 따라가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재미를 줍니다. 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가는 일본 걸밴드 애니메이션의 여러 성장 단계를 레이턴시가 보여줄 수도 있죠. 레이턴시 멤버 개개인의 역량 및 노력과 간절함은 전혀 의심하지 않습니다. 일단 아이돌 계약의 기본 기간인 7년을 넘긴 분들이기 때문에, 분명히 '독종'일 것입니다. 그녀들의 '워크 에씩(work ethics)'은 의문의 여지가 없죠. 오직 그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QWER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녀들에게 맞는 음악을 만드는 이동혁 PD, 그리고 QWER의 매력을 최대한으로 뽑아내는 재주를 지닌 빙빙 PD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확보한 오디너리 레코즈의 분발이 더욱 절실한 이유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12월 6일 토요일 저녁, 창문 밖으로는 겨울비가 내리고 있으며 QWER은 대만에서 열리는 [2025 AAA(Asia Artist Awards)]에서 '베스트밴드 상'을 수상했습니다. 베이시스트 마젠타는 수상 소감에서 중국어로 "바위게들, 사랑해!"를 외쳤습니다. QWER에 관한 책을 2권 내놓은 작가인 제 입장에서, 오늘은 축제일이죠. 그리고 저는 QWER의 성장을 지켜보는 '아픈 기쁨'을 잘 알기에, 레이턴시의 행보도 꾸준히 응원하고자 합니다.
레이턴시의 성공은 다소 더딜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음악에 진심인 다섯 명인만큼, 데이식스처럼 꾸준한 노력을 통해 진정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JYP의 간판 밴드인 데이식스는 2015년 9월 11일에 '롤링 홀'에서 데뷔 후 첫 라이브 무대를 가졌죠. 유서 깊은 '롤링 홀'이 데이식스에 이은 대형 인기 밴드를 낳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레이턴시가 성공할수록 대한민국 걸밴드 시장은 더욱 확장할 것이며, 이는 QWER에게도 무조건 좋은 일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QWER과 레이턴시는 결코 경쟁자가 아닙니다. 이들은 상대방의 파이를 갉아먹지 않습니다. 어느 한쪽이 성공하면 할수록 다른 편도 동반성장하게 되죠. 선발주자 QWER과 후발주자 레이턴시는 걸밴드 시장이 전 세계에 자리 잡는데 없어서는 안 될 동료들입니다. 내년 4월 대학 축제 때부터 레이턴시가 QWER과 함께 대학 캠퍼스를 누빌 그날을 꿈꾸며, 오늘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