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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레오 Mar 16. 2020

04. 캐나다의 사회적 거리두기?

캐나다 내 코로나19 확산을 보며

무엇 때문이었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이유가 선명하지 않다. 입사한 지 3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학자금 대출까지 받아 MBA에 진학하기로 한 것이다. 기억은 과거를 자주 바꾸기 마련인지라 정확하지 않지만 가장 강력한 퇴사 동기는 두 가지였을 것이다. 첫째는 석사 학위를 받는 것, 둘째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은 동경 때문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무작정 떠돌아다닐 수 없었다. MBA를 하면 학위를 받을 수 있어 경력 공백 위험에서 보다 자유로울 수 있고 교환학생이나 방학 때 단기 연수에 참여할 수 있다. 다분히 현실을 고려한 타협적인 선택이었다.


그 해 1월 회사를 그만두고 한 달 뒤 MBA에 입학했다. 치열한 한 학기를 보내고 여름방학을 맞았다. 3학점을 인정해주는 스페인 마드리드 IE 비즈니스 스쿨에서 2주짜리 여름학기를 핑계 삼아 방학 내내 스페인 곳곳을 누볐다. 마드리드뿐만 아니라 말라가, 그라나다, 톨레도, 세고비아, 세비아를 둘러봤고, 바르셀로나도 결코 빠질 수 없었다. 바르셀로나는 아직도 가장 아쉬움이 남는 곳이다. 축구광으로서 캄푸누(Camp Nou)를 못 가본 오점을 범했고, 전통시장이나 고딕지구 구석구석을 거닐지도 못했다. 가우디 일일투어의 감동 빼고는 특별한 기억이 없다.

바르셀로나 사그라다파밀리에 성당(2013)




아쉬움이 커서였을까? 바르셀로나는 다시 한번 가보고 싶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여유가 나지 않았는데 2020년을 맞이하여 특별한 기회를 얻었다. MWC(Mobile World Congress)라는 모바일 전시회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MWC는 매년 2월 세계 이동통신 사업자 협회 주관으로 바르셀로나에서 개최하는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전시회로 삼성, LG, 인텔, 에릭슨, 페이스북, 노키아, 소니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혁신 제품을 선보이는 글로벌 이벤트다.


좋다. 비록 출장으로 가는 거지만 시간을 쪼개 이번에야 말로 바르셀로나를 제대로 둘러보고 오겠다는 다짐을 했다. 행사 기간 직전 주말은 로마에서 하루 이틀 더 머물 요량이었다. 마음은 이미 로마와 바르셀로나에 와 있었다. 가슴에 품고 있던 도시에 다시 갈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즐거웠다. 그래서일까? 일도 힘들지 않았다. 의욕 관리도 충분히 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설렘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코로나라는 이름의 장막이......


행사를 3주 정도 앞두고 회사에서 출장 금지령이 떨어졌다. 미리 예약한 항공권을 취소해야 했다. 바르셀로나에 못 가는 건 무척 아쉬웠지만 혹시나 있을 수 있는 감염을 예방할 수 있었노라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그로부터 1주 정도가 지나자 상황은 더욱 꼬였다. 세계 이동통신사업자 존 호프먼 회장은 “코로나19에 따른 국제적 우려로 행사 개최가 불가능해졌다.”며 결국 MWC 취소를 선언한 것이다. MWC 역사 33년 만에 처음이었다. 코로나19 영향이 문턱까지 왔다는 걸 체감한 사건이었다.




아마 이 무렵부터 코로나19가 중국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한국은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캠페인을 내놓았다. 말 그대로 사회적 접촉을 제한하여 전염병을 자발적으로 예방하자는 것이다. 대규모 행사나 모임을 자제하고, 사람을 만나는 경우에도 악수나 포옹 같은 접촉을 자제하고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했다. 개인차원에서도 손 씻기, 마스크 착용 같은 위생을 철저히 하여 전염병 확산을 방지하자는 운동이 전개되었다.

버스 창문에 부착된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


의식을 못하는 사이 사회적 거리두기는 이미 실생활에 침투했다. 회사에서는 초기 불필요한 출장과 회식(코로나19로 술잔 돌리기도 멈췄다)을 금지하였다. 그다음 주에는 구성원에게 마스크를 지급하고 사무실에는 손 세정제를 비치하였다. 점차 확산이 심각해지자 열화상 감지기가 입구마다 설치되었고, 재택근무가 전면 시행되었다. 부득이 출근하는 경우도 사람들이 붐비는 출퇴근 시간대를 피하는 유연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문제만이 아니다 코로나 19 글로벌 확산이 심상치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월 12일 영국을 제외한 유럽 국가로부터 미국 여행을 30일 동안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유럽에서 코로나 19가 감염이 급증하고 있고, 미국 내 확진자가 1,200명을 넘어서자 전염병 확산 차단을 위한 조치를 실행한 것으로 보였다. 세계 보건기구(WHO)도 3월 11일 코로나 19에 팬데믹(Pandemic, 세계 대유행)을 전격 선언했다. 중국과 관계를 고려하고 전 세계적인 공포심리 확산을 방지하려 머뭇거린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심각한 확산에 결국 팬데믹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캐나다 상황도 더욱 암담해졌다. 캐나다 정부는 3월 12일 쥐스탱 트뤼도 총리의 부인인 소피 그레고어 여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총리 부부 모두 관저에서 14일 자가 격리에 들어간 것이다. 더군다나 최근 확진자도 급증하고 있다. 2월 29일 20명에 불과하던 확진자는 3월 15일 300명을 넘어섰다. 불과 보름 사이에 열다섯 배나 증가한 것이다. 남의 나라 일이라 강 건너 불구경 보듯 여기던 캐나다 언론들도 연일 코로나 관련된 소식을 헤드라인으로 보도하고 있다.


캐나다 코로나19 확진자 추이 (캐나다 정부 홈페이지 참고, 3/15 기준)


코로나19가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캐나다가 주목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대한민국이다. 캐나다 주력 일간지인 <The Globe and Mail>의 의료 전문 기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안드레 피카드는 3월 12일 기고에서 캐나다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가 되었다고 언급했다. 탁아소에서 대학교까지 모든 학교시설을 일시적으로 폐쇄하고, 병원과 양로원 접근을 제한하여야 하며, 스포츠 이벤트나 불필요한 여행 같은 대규모 모임을 금지하고, 회사에서는 종업원들의 재택근무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캐나다에서 전염병 확산을 더 이상 막을 수 없다는 건 기정사실이며,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조치는 지연시키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열린 사회로써 캐나다는 한국에서 배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은 자발적인 '사회적 거리두기'를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대규모 검사를 시행해오고 있고 투명한 정보를 제공하며 현명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The Globe and Mail


캐나다 공영방송 CBC도 연일 한국의 대응을 칭찬하고 있다. 한국이 코로나19를 다루는 방식을 상세히 보도하였고, 이탈리아와 비교하며 한국의 투명한 대응 방식과 선진화된 의료 시스템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지역사회 감염 우려가 증폭되는 상황에서 캐나다는 관망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팔을 걷어붙이고 적극적으로 실행에 나서야 할 시기로 한국에서 대응방식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CBC News


최근 캐나다의 코로나19 상황과 한국을 배우자는 언론보도는 적잖은 인상을 남긴다. 외국 시선에서 우리나라 시민의식과 의료 대응체계는 귀감이 되고 있는 듯 보인다. 우리나라가 일찍 코로나19 영향권에 들어간 이유도 있겠지만 한국의 의료 시스템과 대응체계와 비교하였을 때 열악한 자국 상황을 꼬집고 있는 것이다.  




2019년 여름 밴쿠버에 머물렀을 때, 캐나다 시민의식과 성숙한 개인주의 문화가 부러웠다. 밴쿠버 버나비 지역에 에어비앤비에서 숙소를 예약하여 머물 때였다. 밴쿠버에 머무는 지인들을 초청하여 숙소에서 바비큐를 먹었다. 밴쿠버에서 가장 맛있고 즐거운 식사를 했다. 집 뒷마당의 새소리, 물소리, 산들바람과 함께할 수 있어 좋았다. 소중한 사람들과 도란도란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니 흥이 절로 났다. 무엇보다도 고기 맛이 좋았다. 육질은 부드러웠고, 방금 구워 내어 온기를 잃지 않았다. 와인은 고기와 절묘하게 어울려 맛을 돋우었다.

밴쿠버 버나비 바비큐 파티(2019년 여름)


와인 때문인지 분위기 때문인지 모를 묘한 매력에 흠뻑 취했다.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유혹했다. 지인들은 밴쿠버 생활에 흡족해하며 말했다. "밴쿠버에서 살면서 시간이 많아졌다. 특히, 가족들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그렇다. 하루에 거의 모든 시간을 회사 생활과 잠자는 데 쓰는데 익숙한 내게 지인의 말은 가슴 깊이 박힌다. "내 동료는 키우는 강아지가 아프다고 1시에 퇴근했어." ‘한국에서는 아이가 아프다고 해도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강아지가 아프다고 일찍 퇴근한다고?’ 다른 문화에 다소 충격을 받았다.


그랬던 캐나다가 전염병 앞에서 무력해 보인다. 한국의 대응체계를 배워야 한다고 연일 목소리를 키운다. 더 나아가 외국에서 캐나다로 오는 입국 제한 또는 금지 같은 강력한 조치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만지작거리고 있다. 외국에 머무는 캐나다인들에게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빨리 귀국할 것을 권고하기도 한다. 위기를 반영하듯 캐나다 국민들은 대형마트에서 휴지와 생필품을 앞다투어 구매하기도 한다. (실제 3/16 외국인의 캐나다 입국 금지 조치를 시행했다.)


캐나다는 직장인으로서 삶의 탈출구이자 어떤 동경의 대상이었다. 가끔 지치거나 버거운 일에 힘들 때, 의지할 곳이 없어 외로울 때 두 팔 벌려 포근하게 토닥거려주는 상징같은 나라였다. 캐나다가 연일 한국을 칭찬하니 묘한 기분이 든다. 올해 당장 이민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코로나19로 시점을 고민하게 된다. 부디 코로나19가 곧 종식되어 캐나다가 아름다운 나라로 계속 남아있을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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