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천사를 만나고, 수호천사가 되기로 하다!
그를 만난 것은 1990년 스물다섯 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공주터미널에 승합차로 어떤 어르신을 모셔드리고, 사곡면 끝자락에 이르렀을 때였다. 유구 방향에서 과속으로 달려오던 11톤 트럭과 정면충돌하였다. 그날 아마 내 인생의 마지막이 그곳에 저무는 순간이었다.
트럭은 과속으로 차선을 넘어와서 가로수를 몇 개 부러뜨리고, 내 차와 정면으로 부딪친 후 나를 반대편 도로 쪽으로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트럭은 전봇대에 부딪치며 멈춰 섰다. 지입 기사였던 그분은 전날 술을 마시고, 늦잠을 잤던 모양이다. 시간에 쫓겨 과속으로 달리던 트럭은 100km에 가까운 속도로 달려왔다. 그곳은 60km 도로인데, 유구에서 사곡으로 들어오는 도로는 커브가 심해서 30km로 달려야 하는 곳이다. 그렇게 심한 커브인지 인지하지 못한 트럭 기사는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사고를 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린 순간은 그로부터 몇 분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너무나 큰 충돌 소리에 사람들이 저 사람 죽었을 거라고 수군거리는데, 멍한 상태로 앉아 있다 정신을 차린 후 차 문을 열고 내리는데, 사람들이 놀랜다. 나도 살아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11톤의 과속 트럭이 정면충돌로 나를 내동댕이 쳤는데, 앞 유리로 튀어나가거나 부딪치기는커녕 핸들에도 부딪치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안전벨트도 매지 않았다. 그 당시엔 규정이 심하지 않았던 때였다. 오히려 트럭 기사는 병원에 입원하였다.
죽음이 나를 비켜갔다.
또 한 번은 안동에서 의성으로 내려오는 5번 국도에서의 일이다. 4차선 국도이지만 편도 2차선이다. 일직면 가기 전에 상당히 긴 구간 둥그렇게 코너가 형성되어 있어서 앞 도로 상황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2차선으로 주행하고 있었는데, 1차선으로 역주행하는 승용차가 있었다. 바로 앞에 불쑥 나타나서 뒤로 사라지는데, 순간 오싹했다. 모르고 1차선으로 달렸다면 정면충돌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수 십 년 전 일이지만 지금까지도 그 오싹함은 잊히지 않는다.
20~30대를 지나면서 위험하거나 아찔했던 순간들 그리고 아주 힘들었던 몇 번의 순간들이 운명처럼 다가왔고, 또 다른 운명의 손길이 나를 건져 올렸다.
40대 중반의 어느 날 새벽 극심한 복통으로 잠에서 깼다. 참았다가 아침에 병원에 가려는데, 너무 아파서 아침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새벽 신촌에 있는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진료를 마치고 상담을 하는데, 암 같으니 더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한다. 세브란스 병원으로 갔다. 결과는 같다. 위암이다. 2기에서 3기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속히 수술 날짜를 받으라고 한다.
사업은 망하고, 빚과 세금은 쌓이고, 가중되는 스트레스에 암까지 겹쳤다. 그때는 합의 이혼 조정 기간이었다. 어차피 이혼 숙려 기간이기에 아내에게 암 걸린 것에 대해서는 말도 하지 않았다. 수술 후 다음 달에 이혼하였다. 하는 일마다 안 되었고, 무슨 귀신이 씐 것 마냥 일이 꼬이고 꼬였다. 그래서 암 걸린 것이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다. 어디론가 조용히 떠나 암과 함께 생을 마치고 싶었다. 그래서 제비뽑기를 하였다.
'수술할까요? 아니면 하지 말까요?' 하고,
종이에 O, X를 하고 접어 흔든 후 뽑았다. 그런데 O가 뽑혔다. 수술하란다. 죽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몇 시간의 수술 후 6명이 있는 입원실로 옮겼다. 무통 주사로 인하여 첫날은 견딜만했다. 하지만 2일째부터는 통증으로 인해 죽을 것 같았다. 아무리 무통 주사를 맞아도 너무 아팠다. 왜 사람들이 통증의 고통 때문에 사는 것보다 죽게 해달라고 하는지 그때 깨달았다. 며칠 통증도 이렇게 죽고 싶은데, 그 통증이 멈추지 않고 지속된다면 그 환자들이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며칠 지나니 통증도 멈췄다. 3기로 진행되고 있었지만 전이가 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기는 했다. 다만 항암치료에 대해서는 어중간한 상황이기에 환자의 선택에 의해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고 하였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시간도 번거로워서 항암치료는 포기했다. 지금은 완치되었다. 암에 걸리고, 제비뽑기를 하고, 죽음과 바꾸고 싶은 통증의 시간도 겪고, 완치되는 과정을 통해 운명은 또 한 번 다른 문을 열어주었다. 그 외에도 비염과 장티푸스로 고생했던 경험도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질병을 달고 살았던 것 같다.
그 당시엔 운이 좋은 줄 알았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사건들을 여러 번 겪은 후 깨달았다. 그건 운이 아니었다. 수호천사였다. 보일 듯 보이지 않게 그는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수호천사가 아니라면 말이 안 되었다. 안전벨트도 없이 11톤 트럭과 정면충돌에서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았던 사건, 역주행의 아찔한 순간 온몸에 소름 돋았던 사건, 그리고 암치료의 순간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는 다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운명의 끝자락에 마주했던 순간들은 삶을 마주함에 있어 숭고해야 함을 깨닫게 해 주었다. 지금을 살아가는 시간은 한 번도 아닌 여러 번 주어진 기회의 인생이다. 그렇기에 더 아름답게 살아가야 한다. 위기의 순간 보이지 않던 수호천사로부터 도움을 받았지만, 또 보이는 수호천사로부터도 도움을 받았다. 평생을 간직하며 보답해야 할 생명의 은인들이다. 세상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만큼 그 사랑을 돌려주는 시간을 만들어 가야 한다.
누군가의 수호천사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