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유지북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영 Apr 15. 2024

야간비행


생텍쥐페리가 아르헨티나 야간비행 항로 개척에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는 소설 <야간비행>. '인간의 행복은 자유 속에 있지 않고 의무를 받아들이는 데 있음을 밝혀준 작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라고 적은 '앙드레 지드'의 감상에 따라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은 주인공 '리비에르'가 보여주는 삶의 태도에 초점을 맞춘다. 현실판 리비에르를 만난다면 나 역시 그를 '제법 근사한 사람'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사람에게 빠지는 것은 늘 예상을 빗나간 순간 어처구니없이 막무가내로 벌어지는 일이므로, 책임으로 가득 찬 그의 인생에 나도 좀 끼워 달라고 조를지 누가 알겠는가. 실제로 그가 내뱉은 말 중에는 듣는 이로 하여금 '일시 정지' 상태가 되어 갑자기 삶의 중심부로 치닫게 하는 '근사한 무언가'가 있긴 하다. 


가령, "자네는 부하들을 사랑해야 하지만 그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서는 안 되네."와 같은 말. 가령, "우리는 항상 무언가가 인간의 목숨보다 더 값진 것처럼 행동하죠.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요?"라는 질문. 가령, "책임이란 개인에게 있지 않다. 그것은 모든 이에게 적용되지 않으면 아무에게도 적용되지 못하는 막연한 힘과 같다."는 집단적 선택의 준거. 가령, "미지의 세계와 어깨너비 정도의 거리만을 두어야 한다."는 야간 비행사에 대한 직업관 같은 것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본다면 충분히 멋있고 충분히 존경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내게 이 책은, 무엇보다 '빛의 이야기'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허공을 비행하다 어느 정도 고도가 낮아져야 보이기 시작하는 밤 풍경. 야간 비행 항로를 개척하는 임무라는 것이 어느 정도의 무게를 짊어져야 가능할지 2024년의 나로서는 가늠할 수 없지만, 천근만근인 몸과 곳곳의 근육통마저 음미하고 싶다는 파비앵의 소박한 바람에서 그의 일이 얼마나 위험 특수한 상황에 놓인 것인가를 어설프래 짐작한다. 



이제 그는 밤의 한복판에서 불침번처럼, 밤이 인간을 보여준다는 것을 깨닫는다. (...) 농부들은 자신들의 불빛이 소박한 식탁을 밝히기 위해 빛난다고 생각하지만, 그들로부터 팔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은 그 불빛 신호에 감동을 느낀다. 마치 그들이 바다 한가운데 무인도에서 절망에 빠져 구조의 불빛을 흔들기라도 하는 양 말이다.  
<야간비행> pp. 19, 20




아무리 야간 비행이라 하더라도 빛이 전무한 건 아니다. 하늘에는 태양과 달, 여기에 작지만 존재감 넘치는 별이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파비앵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어둠 속의 별 하나'를 '고립된 집 한 채'로 비유하는 것에서 지상에 펼쳐진 인간에 대한 그리움이 뚝뚝 묻어날 지경이다. 이와 반대로 지상에서 야간 비행사들이 안전하게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리비에르에게는 작은 별 하나가 뿜어내는 빛이 위로가 된다. 




오늘 저녁 내 우편기 두 대가 비행 중이니, 나는 하늘 전체를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저 별은 군중 속에서 나를 찾다가 발견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어. (...) 그 음악의 메시지는 보잘것없는 평범한 사람들 중에서 유독 그에게만 은밀한 따스함을 전해주었다. 별의 신호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사람들의 어깨너머로, 그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을 걸어오곤 했다. 
<야간비행> p.52




하늘에 있는 사람은 인간이 만들어낸 지상의 빛에,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사람은 자연이 만들어낸 하늘의 빛에 감화되는 것. 내가 속한 자리에서 빛을 발견할 수는 없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일다가도, 빛의 속성 상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야만 그것을 '빛'으로 인식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어설픈 이유를 댄다. 



#치앙마이 #도이수텝 #야경



언제부턴가 야경을 보면 나 역시 위로를 받는다. 야경은 치열한 삶에서 떨어져 나와 내가 뿜어내던 빛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실감하게 한다. 김형경 작가의 소설 <성에>에 나오는 '좋은 풍경 앞에 섰을 때 생각나는 사람이 바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구절처럼, 떨어져 나온 내 현실의 자리에서 온기를 주고받는 소중한 이들이 여전히 나와 이어져 있음을 실감하는 것. 그 연결감이 가슴을 벅차게 만들기도 하고,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위태로운 순간들을 떠받치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이렇게 풍경 속에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요가 다녀왔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