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지 않습니다-사노 요코 에세이
‘ 너무 애쓰지 않아도 즐겁고 여유로운 그녀의 삶과 추억’이라고 쓰여 있다. 애쓰고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대에 태어나서, 어려운 유년 시절에도 담담히 과거를 추억한다. 나도 나중에 이런 쿨한? 40대가 될 수 있을까?
어려운 시기를 버텨낸 그녀의 친구 중 하나는, 땅이 노는 것을 못 견뎌하고, ‘먹을 수 있는’ 작물을 키워놔야 직성이 풀린다. 이 대목에서 평생 농사일을 하셨던 시골의 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자식들을 건사하기 위해, 말년에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굽은 허리에도 힘들게 농사일을 하시고는 , 위암으로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몇 개월 전, 나는 두 살도 안된 아이를 데리고 만나 뵈러 갔었다. 항상 부엌엔 밥이 있었고, 새벽에 일어나 뭔가 일을 하고 계시던 부지런한 할머니는 이제 본인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자 무기력해 보이셨다. 증손주도 반가워하지 않으시고, 내가 너무 자식을 많이 낳았다며 때늦은 후회?를 하시기도 했다.
그 말이 계속 걸렸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니, 희생과 고생만이 있었던 걸까. 분명 행복한 순간들도 있었을 텐데, 행복은 너무 찰나로 지나가 버렸나 보다. 그 말씀이 당신 인생에 대한 회한 같아서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그 세월을 어떻게 보상받을까. 그저 지금은 어딘가에서 편안하게 계셨으면 한다. 자신만을 위한 여유로운 시간과 함께 말이다.
할머니의 허리가 휘신 건 자식들에 대한 평생의 책임감이 그만큼 무거웠기 때문일 것이다. 금전적인 든든한 지원은 어려우니, 그녀의 힘으로 농사를 짓고 메주를 만들고 된장과 미숫가루, 인절미와 고들빼기 깻잎지 김치 등을 부지런히 계절마다 담가서는 자식들 편에 바리바리 싸서 보내셨다. 받을 땐 너무나도 당연했고, 할머니께서 가득 보내신 짭짤한 된장은 엄마의 손길을 거쳐 보리된장으로, 심지어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뒤에도 몇 년씩이나 남아있었다. 평생을 자식들 뒷바라지로 애쓰셨던 손은 두껍고 거칠고 투박했다.
"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고, 특히 남자들은 여자를 좀 정중하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성이기에, 어떠한 과학을 가지고도 서로를 해명할 수 없는 신기한 생명체이기에, 서로를 얕잡아 봐서는 안 되는 거지요. “ -299p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아직도 가끔 잊히곤 한다. 나의 때 이른 결혼 생활의 종말, 그 원인 중 하나가 서로에 대한 ’ 존중‘이 소멸됐기 때문이다. 소멸은 경멸로 바뀌고, 나중에 난 그냥 체념으로 바뀌었는데 서류상 남인 그 사람은 가끔 아직도 분노와 격정이 나의 말 한마디에도 활활 타오른다. 나는 싸울 가치조차 느끼지 못한다.
사노 요코도 싱글맘으로 아들을 키워낸다. 에세이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어려운 상황을 불행하고 너무 진지하게 살아내는 느낌이 아니라, 서로 의지하지만 꽤 친구처럼 투닥이며 씩씩하게 그들만의 특별한 모자관계로 살아낸다. 나도 나중에 딸이 가진 특성이나 성격 등 여러 가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담백한 모녀?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을까?
“언니, 언니, 갑자기 생각이 났는데 말이야. 운전할 줄 알고 책 좋아하는 여자는 전부 이혼했어. ” -289p
왜 여자가 책을 읽으면 옛날엔 쓸데없는 것이라거니 허영이나 호사를 부린다거나, 나태하다고 여겨졌을까.
희생하지 않고 지적 허영과 욕망을 채우는 것이 금기이던 시절이 있었다. 아직도 희미하게 경계하는 사람도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겠다. 난 운전은 아직 못하지만-아이러니하게도 따로 살기 시작했을 때 명분은 운전면허였는데, 필기만 따놓곤 실기를 시작하지 못했다. 저 구절을 읽는 데 면허가 따고 싶어 진다.
혼자서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6살(만 4세)의 딸에게 목욕 후에 혼자 옷을 입으라고 실랑이를 한 시간쯤 하고 나자 진이 빠져서 일부러 빨래를 널고 딴청을 피웠다. 옷도 입지 않고서는 엄마를 보러 오려는 딸이. 그래도 이런 어설픈 나도 엄마라고 의지하는 내 딸이, 그 작은 아이가 언젠가는 혼자 살아가리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아이에겐 이제 넌 아기가 아니고 어린이니, 화가 나면 울지 않고 말로 표현해야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이는 엄마보다 자신이 더 화가 났고, 마음이 ‘깨졌고’, ‘딱딱해졌다’고 말했다. 상처를 그렇게 표현하는구나. 문득 그렇게 들으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그저 아이를 꼭 안아주고 엄마는 널 사랑한다고, 그렇지만 혼자 힘으로 조금씩 해내야 많은 걸 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 (미끄럼틀 타기, 범퍼카 등등)
갑자기 직장 문제로 멀리 이사를 가게 된 동생에게 엄마는 하나하나 걱정하고 마음을 쓴다. 나도 조금은 그 마음이 뭔지 알면서도 또 걱정한다고 엄마를 타박한다. 나조차도 아직 믿음직한 딸이라기 보단, 아직도 엄마에겐 두 딸 모두 자신의 손길이 필요한 아기처럼 느껴진다. 그 아기엔 같이 사는 나도 조금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떨어져 있어도 자식과 어떻게든 얽혀 있다. 물리적 독립과 정서적 독립, 그 둘 다 필요한 순간엔 극복해 내야 한다. 자식도 부모에게서 독립하지만, 부모도 자식에게서 독립해야 되는 순간들이 서로의 인생 변곡점에서 오기도 한다.
아이에겐 혼자도 해내야 된다고 말하지만, 나조차도 혼자 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듯한 기분이 든다. 세상은 계속 변하고 있고, 아이를 키워내려면 난 무언가를 또 해나가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현재 내가 처한 것이, 혹은 현재의 직장이 적성에 맞는지 잘 모르겠다.
방향을 잃어버린 기분, 그래서 휴일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다 출퇴근길에 읽으며 잠시나마 현실에서 벗아나지만- 오히려 현실을 더 깊숙이 바라보게
된다. 돋보기를 쓴 것처럼.
책을 읽고 또 읽다 보면,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아량과 더 넓은 이해심 같은 것들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언제나 어렵지만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것들이 늘어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사노 요코의 에세이는 젠체하지
않으면서 인생 선배의 현실적이고 담백한 조언을 듣는, 아는 언니, 든든한 센 언니랑 대화하는 듯한 기분이다.
글 내내 자신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걸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지만, 그녀만큼이나 개성 있게 글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아이와 함께 그녀가 쓴 동화책도 읽어봐야겠다. 내일은 아이의 어린이집 학부모 참여수업과 학부모 상담이 있는 날이다. 첫 학부모로서의 공식 행사라 뭘 입을지 고민도 되고,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조금 겁나기도 한다. 나도 부모로서, 지금의 내 인생은 처음이니까.
아이는 이런 나를 엄마로서 언제나 응원하고 사랑하고 있다. 이런 무조건적 사랑을 받을 때면 내가 이 아이에게 받는 게 더 많은 건가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좀 더 내가 단단해져야겠다. 사노 요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