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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에타 May 18. 2023

딱 한 번의 플레이밖에 허용되지 않는 희귀한 음반

상관없는 거 아닌가? - 장기하 산문 읽어보기

 개인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기, 우연히 도서관에서 마주한 장기하의 책. 장기하를 생각하면 내 대학 시절과 친구가 떠오른다. <싸구려 커피>의 하이퍼 리얼리즘? 도 충격적이었지만, <달이 차오른다>에서 그의 무심한 표정과 양쪽에 선글라스를 쓴 미미시스터즈와 함께 양팔을 흐느적거리는 그 모습은 이질적인데도 왠지 카타르시스 같은 게 느껴졌다. 신기한데 궁금하고, 저 사람 뭐지 하면서도 계속 듣고 싶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일상의 파도, 아니 폭풍 속에서 내 페이스를 찾으려고 달리기 하듯, 서핑하듯(해본 적은 없지만) 쉬어가는 기분으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책으로 잠시나마 장기하라는 장르를 이해하고, 하루키의 에세이나 잡문집을 읽을 때 느꼈던 편안한 친밀감을 오랜만에 맛봤다. 에세이나 산문의 장점은 좀 더 현실적이면서도 쓰는 사람의 개성과 감성이 묻어나서 그와 편안한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 된다.


 사막에서 혼자 느꼈던 대내외적? 자유로움과 낭만, 말미에 나타나는 반전? 같은 것들이 조용한 내적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쉬지 않고 단숨에 책 한 권을 읽어냈는데, 이상하게 살아갈 용기가 생겼다. 인생을 한 번밖에 재생되지 않는 음반의 비유한 그는 이 시대의 진정한 시인 중 하나다. 난 음악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의 담백한 문체와 음악은 또 닮아 있다. 나는 나만의 음반, 아니 나의 인생의 뭔가를 그냥 살아나가고 있다. 한 번뿐인 플레이지만 나름의 의미를 찾으면서.


 모두가 잠든 새벽, 책을 읽고 글을 쓰다 점점 해가 뜬다. 왠지 희망이 차오르고, 난 출근 전 다시 눈을 붙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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