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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임차차 May 13. 2016

버스타고 제주여행

01 나홀로 제주

01

봄이었고 나는 그때에 스물여덟이 되던 해였다. 회색빛 뽀얀 먼지가 이제야 사라지는 듯한 4월이었다.

스물네살에 찾았던 제주도는 사실 잘 기억이 나지는 않았으므로 어쩌면 이때가 나의 첫 제주여행이라 칭해야하지 않을까 싶었다.


햇수로 5년을 몸 담고 있던 회사를 그만두고 처음으로 실행했던 과감한 행동이 제주도행 티켓을 끊는 것이었다. 혼자여행이야 늘상 다녔지만 제주도는, 그것도 비행기를 혼자 타고가다니 ! 아주 큰 결심이 아닐 수 없었다.



02

불과 2년 전이지만 난 이 순간 이 장면에 느꼈던 감정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정말 제주도에 도착했구나 - 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면허도 없었고 버스로 이동할 수 있는 곳들을 손바닥만한 수첩에 빼곡히도 적어왔었다. 제주국제공항에 착륙했다는 안내 멘트의 시작부터 머릿속엔 '2번게이트'만을 되뇌이고 있었다.

제주시외버스터미널로 갈 수 있는 100번 버스를 타기 위해서였다. 지금이야 '몇분 뒤 출발예정' 시간이 나오는 모니터가 있었으나 불과 2년전까지만 해도 버스는 물론 터미널 내에서도 출발시간은 내 손에 쥐어진 프린트 된 버스시간표를 확인하는 길 뿐이었다.


701번.

제주공항을 등지고 제주의 왼쪽 - 그러니까 동일주를 하는 말그대로 동일주 버스다.

나의 일정은 김녕성세기해변 - 월정리 - 종달리(숙소) - 김영갑갤러리 - 종달리(숙소) 이 쯤이었다. 버스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한정적이며 배차시간 또한 도시를 달리는 시내버스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이야기를 많이 봤기에 딱 저 루트가 첫날 일정의 끝이었다.


*제주국제공항 2번게이트에서 100번버스를 타면 약 10분정도 뒤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 701번(동일주) / 702번(서일주) 이 두 버스가 가장 보편적인 제주여행하기 좋은 버스이며 - 한라산이나 중산간으로 가는 버스노선도 다양하니 미리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03

어디를 가나 귀에 이어폰을 꽂고 순간에 어울리는 음악을 듣는것이 나의 습관이었으나, 제주에 도착하고선 당최 두 귀를 이어폰으로 틀어막을 수는 없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때엔 - 버스 내 모니터에 이번정류장과 다음정류장이 친절히 표기되지 않았었다. 오로지 머리 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안내방송만이 전부였기에 온 신경은 머리위 스피커였다.


'다음 정류장은 김녕성세기해변입니다.' 라는 안내방송에 부리나케 배낭을 둘러매고 기사님 바로 옆에서 대기를 했었다. 환승시스템의 도입전 - 그저 카드를 찍고 그냥 내리기만 하는 그 때였다. (물론 지금은 환승시스템이 적용되어있는 제주도이다.)



행복하다는 표현을 정말이지 오랜만에 - 아니 어쩌면 성인이 된 시기 중 진심이 우러나와 육성으로 나왔던 것은 김녕해변을 걷는 그 순간이 처음이지 않았을까.

하얀 백사장에 푸른것도 아닌 옥빛, 표현 할 수 없을만큼의 물 빛깔로 오랜세월 이렇게 그자리에 잘 있어준 제주의 모든 것들이 고마웠다.


* 701번을 타고 '김성세기해변'에 내리면 바로 해변을 마주할 수 있으며 - 해변을 따라 동네쪽으로 걸어보아도 좋을터이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월정리 해변 잘 익은 감귤빛 파라솔의자.
지금은 만날 수 없는 9,000원의 봉쉡 해물칼국수.
봉쉡 칼국수에서는 본인이 사용한 그릇은 설거지를 해야했다. 이런 풍경을 보면서 - 


04

제주도 하면 월정리가 가장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지금. 물론 나도 그랬기에 그곳을 여행 일정에 넣었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보다 조금 더 제주스러웠으며 조금 더 여유로웠었다.


사진설명에도 있듯이 저 사진들을 이제 월정리에서 만날 수 없는 풍경들이다.

가장 아쉬운 것은 '봉쉡칼국수' 제주에 도착해서 첫끼를 아주 거하고 든든하게 채울 수 있게 해주었던 그 칼국수집은 지금은 '봉쉡망고'로 이름을 바꾸어 운영중이다. 그러니까 칼국수는 하지 않을것이다.

사실 가보지 않았다. 차도 너무 많았고 그와 더불어 사람들도 너무 많았으며 손에는 빨대가 꽂힌 작은 페트병들만 들려있는 것으로 보아서 나를 든든하게 해준 그 풍경들은 없을 것 같았으므로.


월정리는 지금도 갈때마다 아쉬운 곳이다.

시세로 평당 얼마를 오가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을 떠나 적당한 상권과 제주의 바다풍경이 조화롭게 이루고있는 곳이라 생각했으나, 지금은 편의점까지 생기고 제주에선 꼭 와봐야하는 명소가 되어버렸으니 나는 사람들에게 흡사 밤이 되면 화려해지는 광안리해변의 느낌이 난다고 설명해주었다.


이건 내가 제주에 살게 되면서 더 크게 느꼈던 부분이다. (제주살이는 또 글을 쓰겠지)


* 701번을 타고 '월정리' 혹은 '구좌중앙초등학교' 에 하차하면 월정리를 만날 수 있다. 내가 추천하고 싶은 정류소는 '구좌중앙초등학교' (초등학교를 지나 월정리로 들어가는 동네 풍경이 예쁘다)



05

종달리. 이름도 예쁜 동네이다.

월정리에서 다시 같은방향에서 701번을 타면 갈 수 있는 동네이다.

지금까지도 내가 제주에서 좋아하는 동네 중 한곳이다. 종달리. 종달리. 어쩜이렇게도 이쁠까.


처음 혼자가는 제주도의 숙소는 당연히 게스트하우스였고, 조금 감성적이고 예뻤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래서 찾았던 조용한 동네의 숙소 수상한소금밭 이었다. 생각보다 너무나도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숙소였다.

그때 알게 된 귀여운 동갑 동화작가 스테프는 한동안 연락도 하며 지냈었다. (그녀는 이제 연남동인가에 있을테지만)


이제야 말하지만, 난 여행 내내 날씨가 너무 사랑스러워 꼭 안아주고 싶을 만큼 너무나도 좋았었다. 더불어 노오란 유채꽃들은 한창이었고, 바람도 살랑살랑이었으며 - 더이상 잠못이룰 만큼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에 가장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었던 것 같다.


이틀을 연달아 묵게 된 이곳에 잠시 배낭을 내려두고, 부지런히 움직여 삼달리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지금보다 인스타그램이 활발하지 않을 시기 - 나와 비슷한 디자인계열에 일했다가 비슷한 시기에 백수가 되었으며- 심지어 같이 백수가 되어버린 소위말하는 '인친'을 만나기로 한 장소가 김영갑갤러리었다.


나는 성격이 꽤나 왈가닥에 털털한 성격이지만 어쩐지 온라인에서는 여성스럽고 소녀스럽게 비춰지고 있었다. 음 - 나는 소주에 곱창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렇게 보여지지 않았나보다. 블로그에는 엄청 잘 표현했지만 인스타그램 특성상 예쁜사진만 골라올리다보니 의도와 상관없이 작위적 사진들만 즐비하게 되었던 것 같다. 여하튼 ! 김영갑갤러리는 버스를 두번타야한다.



06

꼭 와보고싶던 곳- 사실 수요일 휴관이라는 소식을 이 언니(인친)에게 듣고 급히 일정을 바꾼것이었다.

사람도 없었고, 새소리 바람소리 나뭇잎끼리 부딪히는 소리만이 전부였다. 마음이 편해지는 이곳을 난 꼭 와보고싶었다.


* 701번을 타고 '삼달2리'에 하차 후 택시를 타고 이동하거나 읍면순환버스를 이용하여 김영갑갤러리를 갈 수 있다. 내가 추천하는 방법은 택시 :) 하하. 읍면순환은 너무 오랫동안 오지 않는다. 난 다행이 운이 좋아 바로 타고, 좋은 분들 만나 안내받으며 내렸지만 ! 


이곳역시 이제는 볼 수 없는 풍경. 김영갑갤러리 무인카페. 지금은 새 건물로 이전하였다.


그녀다.

인친 - 나보다 한살 많은 언니었고 우린 서로 비슷한 취향과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더랬다. 서울로 올라가는 비행기표를 어찌해야할까 고민하던 그녀의 일정은 나와 정 반대인 서쪽행이었다. 나는 언니가 돌아간 뒤에나 그쪽으로 넘어가는 일정이었으므로 짧고도 아쉬운 시간을 보내었다.




둘이 데님자켓을 입고왔으며 비슷한 키를 가지고 있으며, 비슷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같이 제주를 좋아했고 - 그래서 넓은 제주의 땅에서 인연의 끈으로 한 장소에서 만나게 되었다. 물론 지금까지도 관계는 유지되는 중이다. 


제주는 모든것을 가능케하는, 그러니까 - 사람과 사람이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게 만들어주는 큰 힘을 지닌 곳이라 생각한다. 공기가 달랐고, 햇살이 바람이 달랐다. 오가는 이야기들은 봄바람을 덧입고 더욱 힘이 있었고 행복했었다. 




07

제주에서 첫날밤.

4인 도미토리실에 나 혼자 뿐이었다. 입실하려는 사람들이 비행기 지연에 또 지연으로 오늘 들어올 수 없다는이야기를 듣고 조금은 우울해졌다. 온전히 혼자였다. 도시에서 혼자인 것과 분명히 달랐다. 내가 그토록 혼자 오고싶던 제주에서의 오롯이 혼자가 되는 시간이 어쩐지 고독했다.


고독을 즐기기엔 어렸다.

그래도 여긴 제주잖아. 눈을 뜨면 봄날 제주의 햇살로 아침을 맞이 할 것이고 내일은 우도를 갈 것이고, 또 다음날까지 그 다음날까지 난 제주에 있을것인데 무엇이 문제일까.

그토록 힘들고 버겁게 지내온 이십대의 위로를 제주에서 조금씩 받고있는데- 

그냥 이런저런 생각에 맥주 한병 마시고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아주 잘잤고, 아주 개운했고, 행복하게 아침을 맞이했던 기억이난다. 


글을 쓰는 지금의 나는 서른이다.

앞자리가 바뀌고 그때보다 아주 조금은 성숙해진 편이다. 그때를 회상하니 마음이 몽글거린다. 제주에 가고싶다. 너무많이 - 


다음 이야기도 알차게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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